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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성찰의 공간그대 無等이여, 사랑이여!
침묵과 성찰의 공간그대 無等이여, 사랑이여!
  • 장세용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 승인 2013.12.09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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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35_ 금남로와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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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공원, 명동·충무로 일대, 남산, 서울시의회 건물, 경복궁(광화문)일대, 덕수궁(정동),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 천도교 중앙대교당, 군산항, 부산근대역사관, 광주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만주, 서울역, 경무대·청와대, 경교장(현 강북삼성병원), 이화장, 서울대(동숭동·관악), 부산 항구, 목포항, 소록도, 인천항, 제주도, 판문점·휴전선, 부산 국제시장, 거창, 지리산, 용산, 매향리(경기도), 여의도광장(공원), 마산(현 창원) 바다, 4·19국립묘지·기념관, 명동성당, 광주 금남로·전남도청, 울산 공단,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청계천·평화시장, 구로공단

꽃들의 죽음: 지금은 공단도시로 변해버린 경상북도 시골, 같은 성씨들이 주로 다니던 중학교 문예반에 남학생은 딱 둘 뿐. 어느 날 지도선생님이 시를 한편씩 써내라는 과제를 냈고, 각자 ‘바위’와 ‘꽃’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받아든 선생님은 ‘바위’가 뜻은 좋지만 의미가 과잉상태라고 지적하시더니, ‘꽃’을 읽으며 감탄과 칭찬을 거듭하셨다. ‘바위’가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동안 ‘꽃’은 사관학교에 가서 장교가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 뜻밖에도 언론에 오른 ‘꽃’의 이름을 듣고 나서 동창회에서 만났다. 바싹 야윈 얼굴에 이미 백발이 돼버린 ‘꽃’은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제대하고 싶은데 시켜주지 않아.” “왜 무슨 이유로?” “내가 5·18 때 사격을 개시한 부대의 대대참모였어.” 그날 21일 ‘화려한 휴가’를 나온 ‘꽃’은 금남로에서 ‘온갖 꽃들’을 향한 일제사격 명령을 전달했다.

‘바위’와 ‘꽃’의 기억
금남로의 역사: 금남로는 인조2년(1624) 張晩 도원수를 도와 이괄의 난을 진압하고 진무1등공신 錦南君에 봉해진 ‘충무공’ 晩雲 鄭忠信을 기려 붙인 이름이다. 바로 연결된 의병장 金德齡의 시호를 딴 충장로와 함께 광주의 중심로 금남로가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항쟁의 거리이며 無等의 공간인 것은 아전의 서얼출신 장군의 봉호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가 투개표부정으로 얼룩지자 가톨릭 센터 앞에서 시민 1천여명이 ‘哭, 민주주의’라는 펼침막을 들고 葬送시위를 벌였고 유혈진압 당했다. 전국 최초의 3·15부정선거 규탄 대회는 4·19혁명의 출발점이 됐고 경찰은 광주일고를 비롯한 고등학생 중심의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으로 7명을 희생시켰다.

 


1980년 5월 14일 신군부에 맞서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열린 ‘교수 학생들의 민족·민주화 성회’, 16일 금남로 ‘횃불 대행진’은 다가오는 희생제를 알리는 고유제였다. 19일~21일 사이에 전남도청 앞 광장은 무장군인에 맞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는 사회계약을 준수하라고 30만이 함성을 울린 만민공동회 장소였다. 21일 계엄군 발포로 50명이 넘게 사망하고 500여명이 총상을 입는 피와 눈물의 희생제가 열렸다. 그날 오후 분노한 시민들의 결사항전에 밀려 무장군인들이 철수하자, 전남도청은 항쟁지도부와 시민수습대책위가 활동한 大同 세상 광주시민공동체의 중심이었고 27일 새벽 무력진압에 맞선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시민군의 최후 결사항전지이다.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은 87년 6월항쟁 당시 시민들의 최종집결지이며 군부독재체제에 맞서다 희생된 이한열, 강경대, 박승희 등 망월동 묘지에 잠든 수많은 민주열사 노제가 열려 피와 눈물이 스며든 장소이다. 이 금남로와 민주광장이 침묵과 성찰의 공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억투쟁 공간: 수많은 왜곡과 매도를 뚫고 ‘5·18 민중항쟁’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인됐다. 희생자들에게 일정한 보상을 거치면서 기념일로 제도화되고 금남로와 전남도청과 분수대광장은 한국민주주의의 성지로 ‘공인’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공간의 성격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에서 분화가 일어났다. 그날을 직접 겪은 이들에게 금남로와 분수대 광장은 너무나 생생한 경험공간이다. 그러나 「꽃잎」, 「화려한 휴가」, 「26년」 등의 영화를 통해 그곳은 재현공간으로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특히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로 인식될 때 추상적인 상징공간이 된다.

‘한국민주주의 성지’그 추상적 상징성을 넘어
상징공간으로서 금남로는 성지이며 지성소다. 지성소는 순결한 자를 불태우는 희생제의를 올리는 장소이며 그 불꽃의 연기는 슬픔의 눈물을 요구한다. 이곳은 지금도 기약 없는 투쟁이 전개된다. 여전히 민중의 자유와 평등 구현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금남로와 민주광장을 인권과 민주주의의 상징공간으로 지키려는 이들과, 이념을 동원해 종북과 폭동으로 매도하고 지역주의를 가동시켜 전라남도 광주의 한 장소로 축소시키며 성지를 모독하는 자들 사이에 건곤일척의 첨예한 투쟁, 한국현대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억투쟁이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금남로가 ‘공인 성지’로 위상이 승격되자 유공자 단체들의 각축이 벌어지고, 시민들의 기억을 이용해 ‘이름과 명예’를 알리는 자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제도권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지 않게 된 것은 현실의 반영일 뿐, 우리가 방심하고 위축돼 ‘오월의 노래’를 잊은 날, 「광주출정가」를 작곡한 범능 스님이 입적했다.


협상하는 공간: 현재 금남로는 한국민주주의의 성지로 공인됐지만 5·18민주화운동을 직간접으로 표상하는 건축시설과 장소가 증가하면서 장소학적 위상이 약화되고 심지어 소외가 진행되는 역설의 공간이다. 도청 이전으로 도심공동화가 심화되자 ‘사적지’라는 명칭만으로는 시민들의 당면한 생존 욕구를 충당할 수 없기에 재개발과 도심재생이 논의됨에 따라 금남로와 민주광장 공간을 재구성하는 협상 전략의 선택이 불가피해졌다. ‘한국의 문화수도’ 광주라는 이름 아래 2004년부터 20년간 추진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국책사업이 금남로와 민주광장을 적극 포섭하게 된 배경도 여기 있다.

아시아 도시들의 문화적 연대와 교류로서 광주 곧 금남로의 정신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 사업은 지역주의의 벽에 가로막혀 확산을 멈춘 ‘민중항쟁’의 정신을 아시아라는 더 큰 공간에서 우회적으로 다시 발언하고자 하는 긴 호흡으로 이해한다. 여기에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도시경쟁이 광주로 하여금 5·18민주화운동을 경쟁력으로 호출해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에 동원하는 기획을 도모하게 만든 역학 관계가 작용한다.
신개념의 문화도시를 조성하는 문화프로젝트에서 민주광장 북쪽에 2014년 준공예정으로 지하 4층 지상 1층으로 건축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문화발전소 역할을 부여받은 핵심적인 거점시설이다. 문화전당이 지하건물이 된 이유는 광주의 무등산을 조망하고, 구 전남도청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는데 있다. 현재 금남로와 도청 앞 광장은 5월 광주 민주주의 정신과 신자유주의 도시경쟁이 협상하며 공간 재구성을 모색하고 있다.


장세용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ㆍ서양사
필자는 영남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사형제도 비판론의 전개(1760-1795)」, 「1990년대 이후 영국 노동당 정부의 로컬거버넌스 정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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