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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삶의 상처를 보듬고 창조적일 수 있도록 돕죠”
“음악은 삶의 상처를 보듬고 창조적일 수 있도록 돕죠”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12.03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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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한 기적의 1년 기록한 영화,「 안녕?! 오케스트라」

지난해 7월 1일,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문제아 혹은 잠재적 문제아로 살던 다문화가정의 아이 24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주를 한 것. 악기라곤 잡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을 하나로 모은 구심점은 세계적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다. 지난해 MBC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을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했다는 그는 영화 속에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가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 스스로도 미국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으며 자랐기에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 그가 아이들과 함께 한 1년의 시간은 지난해 가을 MBC 대기획 4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송됐고 지난달 26일 에미상 아트 프로그램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TV 다큐멘터리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인터뷰를 보강해 지난달 28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는「안녕?! 오케스트라」(감독 이철하). 영화 수익금은 앞으로도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장학재단 설립에 후원된다. 영화 개봉에 맞춰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리처드 용재 오닐을 서면으로 만나봤다.

△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근황이 궁금하다.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지난 10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후에는 뉴욕에 와서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시즌 오프닝 공연에 참석했고, 오랜만에 뉴욕에 있는 친구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최근에는 12월 공연과 내년 예정인 한국 공연들을 준비하면서 분주하게 지내고 있어요.”

△ 지난달 28일, 당신이 1년간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영화로 개봉됐다. TV 다큐멘터리는 에미상 대상도 수상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이어져서 정말 놀랍고, 기뻐요. 지난해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만해도 영화는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이 영화로 인해서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 초청돼 아이들과 함께 행사에도 참여하게 됐죠. 지난달 26일에 TV 다큐멘터리는 에미상 아트 프로그램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어요!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했으니,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 좋겠어요.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답니다. 제 인터뷰도 더 많이 들어있고요.”

△ 이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매니저를 통해서 이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연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 MBC의 이보영 국장과 만났죠. 아마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앉은 자리에서 바로‘오케이’라고 대답했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결정은 아주 쉬웠어요.”

△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주변에 도움 준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안다. 당신이 해외에 연주를 갈 동안에도 교습을 해준 음악선생님들이나 아이들에게 악기를 무상으로 제공한 외국의 악기제작자 등 수많은 이들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아이들이 변한 것도 있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도 변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말 그래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몇 번 언급했었는데요, 사실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영웅은 바로 1년 내내 아이들을 가르쳐 준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희생과 수고가 프로젝트를 1년간 이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죠.”

△ 조금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겪었던 아픔을 털어놓을 때 가슴이 너무 아팠다. 남다른 가정사가 아이들을 더 깊게 이해하게 했을 것 같은데.
“아이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처음에는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당황스러웠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게 된 것은 사실이에요. 그것이 내게 치유라면 치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24명의 아이들과 1년을 함께 했죠. 지금도 아이들과 연락하고 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부산국제영화제에 함께 초청받기도 했고, 또 영화 덕분에 공식적으로 만날 기회가 계속 있었어요. 평소에는 아이들이 내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하니까 그 만남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더 서로를 이해해가고 있죠.”

△ 영화에서 당신은 되풀이해서 말한다. 음악은 힘이 세다고, 또 먼저 말한다고. 실제로 첫만남에서 당신을 반쪽사람, 몽키티처라고 놀리던 아이들도 당신의 비올라 연주로 인해 관계가 급반전됐다. 음악의 힘은 어디서 온다고 보는가.
“영화에서도 말했지만 음악은 말이 필요 없어요. 설명도 묘사도 필요 없죠. 누구나 음악에 다가갈 수 있고, 음악 자체가 완전하기에 소통만 하면 되는 거죠. 음악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음악을 하는 기쁨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죠. 음악의 힘은 여기에 있다고 믿어요.”

△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엘 시스테마’가 떠올랐다. 당신 한 사람으로 인해 다문화가정의 24명 아이들이 현실을 극복하는 도구로‘음악’을 선물 받은 셈이다. 이 프로젝트를 좀 더 확장해볼 계획이 있는가.
“지난해에 가장 걱정했던 것이 촬영 후에도 아이들이 계속적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어요. 다행히 안산시의 도움으로 올해부터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게 됐죠. 우선 그 점이 가장 만족스러워요.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면 좋겠고요. 그저 한 사람인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아이들에게‘음악’이라는 창의적인 도구를 주는 것뿐이죠. 음악은 우리가 살면서 겪었던 안 좋은 기억이 우리 삶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면서 창조적일 수 있도록 돕죠. 음악이 아이들의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해 줄 거예요. 이 아이들 중 몇 명이라도 음악을 계속한다면, 음악의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겠죠.”

△ 최고의 비올리스트가 되기까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교수신문 독자들에게 말해달라.
“지난 여름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였고, 장례식에서 들었던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와 관 위로 꽃이 툭 떨어지던 소리들이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요즘도 무대에 오를 때면 마치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나와 그 친구가 그 소리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 처럼요.”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오는 25일에는 유키 구라모토와 함께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열거든요. 그리고 내년 3월 저의 한국 데뷔 10주년 공연과 투어 그리고 6월의 디토 페스티벌을 한창 준비 중이고요. 아이들과 곧 만날 수 있을테니 직접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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