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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virtu’는 맹자의 ‘仁’과 通한다”
“마키아벨리의 ‘virtu’는 맹자의 ‘仁’과 通한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12.0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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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 사회과학연구원, 마키아벨리『군주론』출간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열어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치질서가 급변하면서 한층 냉철한 국제정치의 균형 감각이 요청되는 지금, 마키아벨리를 새롭게 조명한 학술대회가 열려 화제다. 지난달 22일 조선대 사회과학연구원(원장 박선희)과 정치외교학부(학부장 공진성)가 함께 개최한  ‘마키아벨리『군주론』5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그것. 그간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강력한 리더십과 현실주의로 이해되는 점에서 동양의 ‘한비자’와 비교돼 왔다.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에서 안외순 한서대 교수(국제관계학과)는 마키아벨리를 맹자와 비교한 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안 교수의「마키아벨리와 맹자의 군주론 비교 이해: 『군주론』과 『맹자』를 중심으로」의 일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정치행위가 윤리나 종교로부터 독립된 원칙에 따라 지배된다는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군주의 처신에 대한 이런 조언 이외에도『군주론』에 나타난 그의 용어, 곧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요구하는 ‘비르투’의 개념상의 혁신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기독교적인 의미의 덕, 곧 ‘겸손’, ‘자선’, ‘경건’, ‘정직’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런 기독교적인 덕의 개념에 반기를 들면서 군주에게 요구되는 덕으로, 고대 로마 공화정 당시의 비르투에 해당하는 ‘남성다움’, ‘용맹함’, ‘단호함’, ‘민첩성’ 등을 강조했다. 원래 라틴어의 ‘비르’는 남성을 의미하며 ‘비르투’는 남성다움, 정력적인 활동 및 군사 활동과 연관된 탁월함을 지칭했다.

하지만 이런 로마적인 덕의 개념은 로마가 기독교화 됨에 따라 기독교적인 덕의 의미로 바뀌게 됐다. 그리하며 오늘날 영어의 덕은 통상 도덕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마키아벨리가 사용하는 비르투라는 단어는 아주 드물게만 기독교적인 것을 의미하며 대부분 초기 로마공화정 시기의 비르투에 해당하는 남성적인 속성을 지칭했던 것이다.

『군주론』의 속내가 처절히 드러나는 18장에 이르면 이전까지 마키아벨리가 책의 앞부분에서 “군주는 ‘위선’을 행할 수도, ‘악덕’을 행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숱한 구절들의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마키아벨리는 ‘악덕’이나 ‘위선’을 허용할 경우에도 항상 전제를 잊지 않았다. ‘필요한 경우’라고. 그‘필요한 경우’의 실체는 바로 ‘조국의 영광’, ‘정의로운 조국의 과업’을 공동체적 과제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인 것이다. 요컨대 이런 영광된 조국에는 ‘정의’와 ‘인민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다. 따라서 앞에서 말했던 ‘위선’이나 ‘악덕’은 이른바 비정치적인 분야, 곧 신 혹은 종교영역을 염두에 둔 진술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마키아벨리는 다른 한편 도덕 특히 정치적인 도덕에 해당하는 덕성에 대해서는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마키아벨리는 선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나 선이라고 간주되는 것으로 하는 것은 ‘선’아니고 ‘불선’일 수 있기에 고집할 절대선은 없다는 것이었다. 곧 선이라는 것은 절대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므로 상황에 맞춰서 더 큰 선을 행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맹자가 군주에게 요구하는 덕성 역시 기존의 덕성과는 구분되는 ‘덕’을 요구했다. 물론 맹자의 덕성에는 도덕적 덕성이 강하게 요구된다. 그런데 이때 요구되는 도덕적 덕성은 곧 정치도 덕에 적합한 덕성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신분의 존귀, 총명의 현부, 나이의 장유, 과거의 공적 여부, 출신지역 등은 결코 정치주체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진심」상). 작위의 높고 낮음은 신분서열에서나 기준이 돼야 하고, 나이의 많고 적음은 사회에서나 기준이 돼야지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정치세계 이것들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정치에서는 오직 양민과 교민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덕성이 절대 기준이 돼야 한다(「공손추」하). 맹자는 정치세계에서 요구되는 덕목을 한 가지로 대표할 때‘仁’으로 집약한다. 인은 타인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질 줄 아는‘포용심’이다. 그것은 소극적으로는“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남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논어』정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는 인을 “남을 사랑하는 것”(「이루」하)이기도 하고“仁은 사람 그 자체”(「양혜왕」하)로 표현하기도 한 것이다.

결국 맹자는 필연적으로 관계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 남을 소외시키지 않고 배려해 공존하려는 노력 자체가 곧 자신을 배려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래서『맹자』에서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인을 떠나는 행위는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는 自暴自棄와 동일시했던 것이다(「이루」상). 그런데 이러한 인이 정치가에 의해 정치세계에서 실천될 때는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신하가 지닌 장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수용할 줄 아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전자는 ‘백성의 부모됨’으로 실천되는 마음이고, 후자는 ‘현자의 등용’으로 실천되는 마음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실천될 때 양민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仁政이다.

맹자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이것을 두 덕목, 네 덕목으로 세분화시켜 나갔다. 왕도정치에서 요구하는 덕목을 두 가지로 대표할 때『맹자』는‘仁’과‘義’를 제시한다. 이것은 곧 ‘포용’과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맹자의 직접적인 표현에 따르면 남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인 인은 사람들의 편안한 집이고, 不仁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인 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맹자』「고자」상) 이러한 맹자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실로 혁명적이지 아니하다 할 수 없다. 신분사회인 당시에 정치참여와 주체를 선정함에 있어서 신분이 아니라 ‘덕성으로 표현되는 능력’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정리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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