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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위협받는 세계평화
[신문로 세평] 위협받는 세계평화
  • 박영근 교수신문 주간
  • 승인 2002.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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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3 01:20:11
박영근
주간·중앙대

예전부터 미국은 세계정의와 평화를 구현한다는 뱁새 속임수를 써 왔다. 하지만 미국의 궁국적 밑그림은 세계질서를 재편함으로써 자국 이익을 확대-심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세계안정을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세계안보를 위한 협력의 틀에 참여하기를 거부해왔다. 또한, 전세계 무기수출의 43%를 차지하면서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17명이 공동으로 제안한 ‘무기이전에 관한 국제 윤리규범’에 코웃음만 쳤다. 2001년 불법소형무기의 국제거래를 규제하려는 유엔합의를 거부한 유일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게다가 미국 의회는 아직도 생화학무기 금지협정, 지뢰제거 협정,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등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다. 미국은 국제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 86년 유엔 안보리가 “모든 국가는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거부권을 행사했다. 더군다나 지금 남아공에서 열리는 ‘지속가능개발 세계정상회의’마저 마다한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유엔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 국제기구와 국제법을 아예 무시하겠다는 심보다.

과거에도 미국은 국익에 걸림돌이 된 수많은 나라들을 가혹하게 징벌했다. 미공군사령관은 한국전쟁 때 “북한에는 파괴할 구조물이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91년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사막의 폭풍’이라는 전자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 총사령관은 “이제 이라크는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대통령이 미국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변을 당한 나라가 부지기수다. 한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트루히요, 모부투, 두발리에, 노리에가, 후세인 등은 독재자였다. 하지만 이들이 독자노선의 낌새를 내비치자마자 미국은 이들을 혹심하게 족대겼다.

미국 기업 중 절반 이상이 군수산업과 관련돼 있다. 이는 미국이 크고 작은 전쟁을 연이어 치룰 수밖에 없는 ‘전쟁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석유산업과 군사복합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역대 미국정권은, 세계 여러 곳에서 ‘마음껏’ 엄청난 무기를 재고털이하고 ‘무차별적으로’ 첨단 신무기를 실험해 왔다. 1801년 트리폴리에서 시작된 미국의 전쟁역사는 2001년 아프간에서 1백40번째를 기록했다. 아프간 보복전쟁은 맛배기에 불과하다. 전 세계를 향해 서슬퍼런 어름장을 놓고 있는 미국은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전포고했고 전세계로 확전하려고 한다.

새천년 들머리부터 공존과 화해의 문화가 벼랑 끝에 몰리고, 오만과 광기의 악마가 용트림하고 있다. 우리는 테러를 옹호할 생각이 털끝만치도 없다. 다만 “제눈에 들보는 놔두고 남의 티눈만 들추는” 미국의 막가는 대응으로 말미암아 전지구적인 재앙이 야기될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그 후폭풍으로 말미암아 미국과 ‘파우스트적 거래’를 하고 깨춤까지 춘 지원국들이 경제 침체와 피의 악순환에 노출될 가능성도 녹록치 않다.

앞으로 일방주의에 걸귀가 들린 미국은 보복전쟁을 빌미로 나라 안팎을 감시와 통제 속에 묶어 두려 할 터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일본 세우기-중국 견제하기-러시아 묶어두기-유럽연합 껴안기-친미아랍정권 봐주기-이슬람 근본주의 죽이기-한국 길들이기-북한 손봐주기를 차별적으로 전개할 것으로 셈쳐진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클린턴정부의 접촉정책도 부시정부의 ‘미국식 국제주의’의 어깃장 앞에서 맥을 못추는 현실이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보낸 강경 발언은 단순한 엄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남북끼리의 ‘주체적’ 대응이 긴요한 시점이다.

다자간협력체제를 마다해온 미국, 그 일극적 헤게모니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세계질서의 재구축은 모두에게 불행하다.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폭력을 일상화해 왔던 미국은, 더이상 세계질서를 쥐락펴락하는 공통분모가 될 수 없고 결코 돼서도 안된다. 따라서 앞으로 지식인이 할 일은 종전의 직수굿한 태도를 떨치고 미국의 광기와 오만이야말로 ‘진짜 테러’이자 ‘악의 축’이며 그 폐해가 전지구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세계질서를 수순에 따라 탈바꿈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헌걸차게 깨뜨릴 국제적 연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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