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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의 인식론적 반성이 필요한 까닭
신경과학의 인식론적 반성이 필요한 까닭
  • 이을상 부산대 강사·철학
  • 승인 2013.11.2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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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신경 과학의 철학』 맥스웰 베넷·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 지음 | 이을상·하일호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944쪽 | 40,000원

두 저자는 마음과 몸의 이원성으로 표현되다가 최근 뇌와 몸의 이원성으로 표현되는 ‘데카르트적 혼동의 유산’을 떨쳐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가장 근원적이고 개념적인 문제를 인식할 것을 촉구한다.

이 책은 신경 과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의 권위자가 협력해 철학적 함의를 간과한 신경 과학을 비판한 책이다. 이 일은 무척 어렵고 지루한 작업이지만, 생리학자인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의 맥스웰 베넷(Maxwell R. Bennett) 교수와 인지 철학자인 영국 옥스퍼드대의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Peter Michael Stephan Hacker) 교수가 마침내 해냈다. 두 사람은 인간의 심적 속성이 뇌의 부분이 아닌 인간 전체의 속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심적 속성을 뇌의 부분으로 돌린 것은 신경 과학자들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뇌가 곧 마음’이라는 신경 과학의 전제도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뇌와 몸의 이원론’으로 바꿔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신경 과학자들은 ‘신경 과학이 이룩한 과학적 성과를 철학이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반발할 것이다. 철학자들이 과학자들을 쓸데없이 헐뜯는다는 소문도 또한 공공연하게 떠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의 진원이 오늘날 과학 공동체 내에서 광범위하게 지지받고 있는 ‘환원주의’ 방식에 대한 철학의 비판에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저명한 과학자(데니스 노블)의 입을 빌려 확인해줬다. 과학적 탐구의 공동체에서 환원주의는 특히 방법론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고, 사물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유일한 패러다임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환원주의에 대한 철학의 비판이 일련의 과학자들에게 공연한 트집으로 비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철학의 본령은 공연한 생트집을 잡는 것에 있지 않다.

환원주의의 사회적 함의와 논쟁
이 책은 매우 ‘논쟁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뤄지는 논쟁의 핵심은 환원주의가 개념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거나 전혀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환원주의적 주장이 갖는 사회적 함의에 관해 논쟁한다. 이러한 논쟁은 특히 생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분자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DNA 염기서열로 환원해 설명하지만, 염기서열은 보다 높은 수준의 다른 기능, 즉 ‘유전학’에 의해 가장 잘 이해된다.

그 결과 오늘날 분자생물학이 유전학의 하위 학문인 것처럼 비춰지게 됐다. 마찬가지로 認知(cognition)를 다루는 신경 과학이 ‘심리학’의 하위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환원주의의 병폐임에 틀림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심리학적 언어와 과학적 발견은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신경 과학은 한 번도 인식론적 반성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렇다면 신경 과학의 인식론적 반성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그것은 인간의 인지적·정서적·의지적 능력의 신경적 기반을 탐구하는 것에 수반되는 심리학적 개념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밝히는 일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각하고, 사고하며, 기억하고, 정서적·지향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학의 신경적 ‘구조’와 ‘동학’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를 정초하는 개념과 범주의 해명이 중요하다. 이 점은 신경 과학의 인식론적 반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 책의 두 저자인 베넷과 해커는 전혀 다른 두 방향(즉 신경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이 연구에 접근했고, 그러던 중 심리학적 개념 때문에 신경 과학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음을 간파했다. 이로부터 심리학적 개념을 너무 쉽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쉽게 의견 일치를 봤다. 여기서 뇌와 마음에 관해 신경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고, 신경 과학자들은 왜 자신이 수행한 실험이 심리학적 능력을 밝혀줬다고 생각하는지가 인식론적 반성의 주요 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해 철학은 신경 과학의 개념이 잘못 이해되거나 잘못 적용된 것은 없는지, 개념의 적용을 제한하는 조건을 넘어서 버린 것은 없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신경 과학의 성과는 의외로 철학과 잘 조화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나고, 이에 대한 철학의 비판은 자연스럽게 혼란이 일어나는 원인과 오류의 원천을 분석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혼란은 심리학적 속성을 뇌에 귀속시키려 할 때 일어나고, 이에 따라 신경 과학은 마음과 뇌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이 오류인 까닭은 인간 전체를 부분(뇌)으로 환원시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신경 과학자들은 심리학적 술어를 뇌에 귀속시키는 것이 단순히 ‘말하기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역설적으로 신경 과학의 언어적 불충분성을 확인해 줄 따름이다. 그렇게 되면 신경 과학은 독자적인 연구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심리학에 종속된 지위로 전락되고 만다.

다른 책들과 차별되는 점
나아가 신경 과학이 오늘날 아무리 번성하는 과학이라 하더라도, 인식론적 반성이 없다면 언제든지 개념적 착종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개념적 착종이 일어나는 이유가 신경 과학의 개념적 불명료함, 즉 관련 개념의 구조에 신경 과학이 적절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탓이라고 이 책은 결론 내린다.

물론 이러한 결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종래에도 신경 과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있었다. 대니엘 데닛(Daniel Dennett), 존 설(John Searle),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gio), 처치랜드 부부(Paul and Patrisa Churchland)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신경 과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신경 과학의 철학적 성찰을 촉구하는 많은 책들 중의 하나로 치부돼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20세기 후반에 이룩한 신경 과학의 성취에 찬사를 보내면서 신경 과학 분야의 진전된 연구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 부류의 다른 책들과 분명히 차별화된다.


끝으로 번역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었다. 또한 공동 번역에서 오는 부담감도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책 내용의 심오함과 논의의 풍부함으로 인해 번역하는 내내 지적 풍요를 만끽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보람도 그만큼 컸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



이을상 부산대 강사·철학
필자는 동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치와 인격』 등의 저서와 『지식의 형태와 사회』 등의 번역서가 있다. 사회생물학, 신경윤리학, 인지철학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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