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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非世說_「낙화유수」와 조영출
是非世說_「낙화유수」와 조영출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11.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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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가운데 「낙화유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로시작되는 이 노래는 南인수의 절창으로 70년 가까이 우리들 곁에서 불리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사람은 많아도 가사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노래방엘 가도 가사가 헷갈린다.

이 노래의 글을 쓴 사람은 조영출이다. 우리에게는 월북 작가 조명암으로 더 잘 알려진, 1930~40년대 일세를 풍미한 걸출한 작가다. 월북 작가란 이유 때문에 수없이 많이 쓴 그의 노래 글 가요는 오래 동안 금지곡이었다가 1990년대 초에 해금됐다. 그 가운데 「아주까리 등불」, 「울며 헤진 부산항」, 「진주라 천리 길」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다.

조영출의 모든 글을 수록한 전집이 최근 출간됐다. 그는 대중가요 글만 쓴 게 아니다. 21세 때인 1934년 <동아일보> 신춘현상문예에 「東方의 太陽을 쏘라」는 詩로 당선된 시인이다. 이 현상문예에 그는 또 유행가 부분에 「서울의 노래」로 동시 입상한 탁월한 글쟁이였다. 보성고보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그는 이밖에도 희곡도 즐겨 쓰면서 문예잡지 활동에도 참가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인 작가다. 이번에 발간된 그의 전집에는 그의 시와 산문, 희곡, 그리고 대중가요 가사를 총 망라하고 있다.

『조영출 전집』의 출간 배경도 눈물겹다. 북한에서 사망한 조영출의 이 책은 남한에서 살고있는 그의 사위가 맡았다. 조영출이 1948년 월북하고 이어 그의 부인마저 1950년 따라간 후 남한에 홀로 남겨진 다섯 살 배기 딸 조혜령 여사의 남편인 주경환 씨다. 그는 북에 있는 장인을 무척 그리워했다고 서문에 쓰고 있다. 그는 장인 조영출이 1990년 12월 방북한 남측예술단을 환영하는 평양 옥류관 만찬장에서 그의 <동아일보> 신춘현상문예 당선 시인 「동방의 태양」을 낭독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생존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들은 게 1993년 조영출이 지병으로 평양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사위는 장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이번에 발간한 책으로 대신하고 있다. 1997년 운영하던 공장을 정리하고 이 일에 뛰어든 지 16년 만에 만든 책이다. 마침 올해가 조영출 출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 그 의미가 더 각별하다. 전집의 내용은 방대하다. 조영출이 16세 때 발표한 시「가을」을 비롯해 「산으로 간 나의 아들아」 등 북한에서 쓴 시와 수필, 가요 글들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대중가요 글의 경우 전국의 모든 자료를 다 뒤져 모두 640편의 글을 밝혀냈으며, 이 가운데 364편의 노래 글을 게재하고 있다. 조영출은 필명을 여럿 썼다. 대표적인 게 조명암이고 이밖에도 금운탄, 이가실, 김다인, 그리고 북한에서 쓴 조령출 등이다. 책은 그가 쓴 대중가요 글을 필명 별로 구분해 게재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간 여러 갈래로 개사돼 불리던 「낙화유수」의 원본 노래 글을 정확히 알게 됐다. 그 가운데 “한 많은 인생살이 꿈 같이 갔네”로 불리어지던 1절 4소절은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이고, 2절 3소절 “봄버들 하늘하늘 춤을 추노니”로 부르던 가사는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무에서”이다. 특히 “오며는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 시들은 내 청춘은 언제 또 피냐”로 부르던 3절 2, 3, 4소절은 노래의 전반적인 내용이 그렇듯 봄의 상실감의 의미로 느껴지는 내용이다. 그러나 원본은 이렇게 부르고 있다.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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