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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출사표
청바지 출사표
  • 류영하 백석대·중국문학
  • 승인 2013.11.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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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정장 입고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 졸업반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4학 년 무렵으로 돌아간다. 졸업 사진 찍는 당일 청바지에 잠바입고 나타난 나의 모습에 학우들 은 경악했다. 그리고 나를 종용했다. 양복으로 갈아입고 오라고. 학교 다니는 내내 청바지 입고 다닌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왜 양복 입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를. 그리 고 내 자유와 선택을 구속하고자 공동으로 대응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양복으로 바꿔 입고 다시 촬영현장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2학기 중간고사가 다가오면 교정에서 학생들은 예쁜 옷이나 정장 등을 갖춰 입고, 특히 많 은 여학생은 신부화장을 하고 화려한 액세서리 등을 걸치고 사진을 찍는다. 평소 학교를 다 닐 때에는 분명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 텐데. 우선 자연스럽지 못하다. 다수가 주도하는 분 위기에 압도당했거나 편승하는 것이다. 졸업사진조차 자신의 개성대로 찍을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아마 이런 장면은 여전히 우리 대학가에서 보편적일 것이다.


누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님의 압력이나 주변의 의식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 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자신의 모습이 있고 개성이 있고 자신만의 특징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억압을 받아가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게 된다. 그렇게 한국사회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집단적 정체성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채 살아간다. 나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진정한 근대가 아닐까.
지금도 중·고등학교의 교문에서는 두발검사를 하고 복장을 단속한단다. 그러고도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두발이나 교복 규제는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 는 도그마로 강요되고 있다.

최근 방문했던 어떤 고교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30년 전 내 가 다닐 때의 분위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 모두가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실내화를 신고 벗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철이 들면서 접하기 시작한 실내화는 나를 무던히도 괴롭혔다. 항상 챙겨야 하는 것, 가방 의 부피를 현저히 늘이던 요물, 잊어버리고 갈 경우 당하는 핍박과 모멸감, 학교에 두면서 부터는 누군가에 의해 수시로 바뀌던 내 소유물이 내가 가진 실내화에 대한 추억이다.


실내화 착용은 아마도 실내 정화가 주된 목적일 게다. 확실히 실내를 좀 더 정결하게 유지 할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외적 청결을 위한 내적 부담은 너무 크다. 교실의 정결 유지를 위해 학생인 내가 지불해야하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심적 부담 감은 어디 가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그냥 실내 실외 구분 없이 신고 다니면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어차피 청소는 누가 하더라도 방과 후에 꼭 하지 않는가. 학생들은 30년 전 과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때를 기억한다.

5공화국의 정책 중 하나로 시작된 것이었지만, 시행과 더불어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을 옥죄어 온 일본식 교복의 종말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복 차 림의 학생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일부 형성됐고, 경제성이나 효율성이 지상의 장점으로 강조됐다. 그래서 다시 교복으로 환원된 것이다. 복장은 반드시 통일돼야만 하는가.

통일은 쉬운 통제를 위한 사전의 필수 전제 조건이다. 쉬운 통제는 자율적 사고력 배양의 최대 적 이다. 교복을 입고 싶은 자 교복을 입고, 사복을 입고 싶은 자 사복을 입으면 왜 안 되는가 . 그리고 교복을 입고 싶은 날 교복을 입고, 사복을 입고 싶은 날 사복을 입으면 왜 안 되 는가. 한국의 아줌마들은 왜 똑같은 파마를 할까. 다른 나라의 아줌마들은 수수한 머리에 화장도 잘 안하는데, 왜 한국의 주부는 파마머리에 화장을 하는 걸까. 왜 중년 남녀는 모두 들 비슷한 등산복을 입고 공항에 나타나는 것일까. 나는 이것 역시 한국 사회의 정신적 폭 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본다. 주변과 대중매체로부터 지속적으로 주입되고 요구돼 온 결과다. 자신과 조금 다른 모습의 사람을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흐름 속에서 성립돼 온 것이다. 나와 다른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간혹 튀는 사람 이 나오기도 하는데, 한국인들은 쉽게 인정해 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재미있게 꾸미고 나온 사람 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강요와 무언의 협박에 자신의 모습을 양복으로 바꾸게 된다. 원래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름대로 자신의 지향이 있고 개성이 있고 자신만의 특징이 있을 텐데, 통일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자신의 지향과 개성과 특징을 잃게 된다. 학교가 통일된 두발 과 복장을 강요하니, 학교를 멀리하고 싶은 것이다.

선택의 자유와 개성의 존중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마음이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몰개성의 비창조적인 한국인들 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렇게 파마를 그리고 정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학기부터 나는 청바지 차림으로 강의실에 들어간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학생들과 우 리 학교 그리고 한국 사회에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다음호 추천릴레이 에세이의 필자는 김동규 동명대 교수입니다.


류영하 백석대·중국문학
류영하 교수는 대만 私立新亞硏究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동아시아학 통섭 포럼 공동대
표로 있으며 지은책으로『이미지로 읽는 중국인민공화국』, 『포스트 문화대혁명』(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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