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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_ 숭례문 사태, 장인 기술과 정신 홀대가 문제다
세평_ 숭례문 사태, 장인 기술과 정신 홀대가 문제다
  • 안병찬 고려대 연구교수
  • 승인 2013.11.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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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고려대 연구교수

숭례문 단청 곳곳이 탈락되고 있다는 내용이 요즈음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되면서 온 국민들에게 크나큰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2008년 2월 10일 밤, 실로 어처구니없는 한 행인의 맹목적인 방화로 서울의 상징이며 우리나라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우리 눈앞에서 한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밤새 엄청난 불길에 휩싸여 목조 건물의 60%가 燒失되는 현장을 우리는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숭례문은 곧 복원으로 이어졌고 5년여 공사기간을 거쳐 금년 5월에 완공식을 가졌다. 하지만 복원된 지 채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단청 곳곳이 탈락하며 부실공사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숭례문 복원 계획과 방침은 훌륭했다. 소실되기 전 모습을 복원하되 조선시대 전통재료와 기술을 활용,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겠다는 그야말로 야심찬 방침을 세웠다. 화마 속에서 살아남은 기존 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역사적 건축물의 가치를 유지하고 중요 무형문화재 등 오늘날 최고 기량의 기술자를 총동원한다는 기본 원칙도 수립됐다. 복원공사는 끝났고 산뜻하게 새 단장한 숭례문이 우리 눈앞에 공개됐다. 대통령을 비롯한 온 국민들과 매스컴 등 모두가 노고를 치하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곧 비난의 대상이 돼 버렸다. 문화재 보존전문가의 한사람으로서 필자는 우선 우리가 간과한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화마를 이겨낸 기존 부재 뿐 아니라 남은 단청 또한 보존했어야 했다. 없애버린 단청이 비록 근래의 것이라지만 화재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증거물로서 이 또한 우리의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상태가 열악해 재활용은 어려웠겠지만 적절한 조치로 최대한 살려냈어야 했다.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둘째, 조선시대 단청의 실체에 대한 연구나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건물 전체를 단청했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기술을 축적한 뒤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전통단청에는 이러한 경우에 적합한 방법이 존재한다. 가칠단청과 긋기단청, 모로단청 등이 그것으로 새로 복원한 부분에 이 정도 단청만 했다면 어땠을까. 복원한 부분은 원래 부분과 차이가 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 현대 문화재 복원의 세계적인 기준이기도 하다.

셋째, 단청의 탈락 원인을 단순히 재료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채색에는 안료와 아교가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과거 사용한 천연 안료는 재료별 특성 차이가 커 많은 경험이 있지 않고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반면 현대 인공 안료는 채색하기가 쉽다. 숭례문 복원 안료가 천연은 아닌 것 같으니 결국 아교가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아교를 다룰 장인의 경험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노련한 장인은 결코 한 두 해만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며 그 보유기술 또한 수요가 있어야 제대로 전수되는 것이다. 갑자기 필요해서 계획만 세운다고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기술이 되살아나겠는가. 우리에게 훌륭한 장인을 길러내려는 노력과 제도는 과연 있었는가. 숭례문 복원단청은 우리에게 이것을 묻고 있다.

덧붙여 우리나라 단청복원 방법이 기존의 낡은 단청은 모두 제거하고 새 단청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지만 그 폐해는 의외로 심각하다. 오늘날 조선시대의 단청이 남아있는 궁궐, 사찰건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말끔하게 새 단장된 숭례문의 현재 모습과 조금은 얼룩덜룩해도 기존 단청과 새 단청이 어우러져 화마를 딛고 일어선 모습도 함께 볼 수 있는 숭례문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후자의 숭례문을 통해 더 큰 자부심을 느끼고 그 진정성에 감탄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중요 목조 건물 복원 시 깊이 생각하고 논의할 화두다.

안병찬 고려대 연구교수
동국대에서 불교미술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재 보존처리를 맡아 20여 년을 근무했다.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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