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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지적 유산, ‘완역판’으로 만나다
20세기 최고의 지적 유산, ‘완역판’으로 만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11.11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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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_ 『돈의 철학』 게오르그 짐멜 지음 | 김덕영 옮김 | 도서출판 길 | 1,092쪽 | 55,000원



1990년 8월 한길사 ‘오늘의 사상신서 053’으로 국내에 소개됐던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의 『돈의 철학』이 그로부터 23년이 지나 짐멜과 베버 전문 연구자인 김덕영 박사에 의해 완역됐다. 이 책은 1900년에 제1판이 나온 뒤 1907년에 개정 증보판, 짐멜 사후에 제3판(1920), 제4판(1922), 제5판(1930), 제6판(1958)이 나왔다. 제5판을 번역 저본으로 했다.


번역 작업은 8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김덕영 박사는 ‘옮긴이의 말’에서 “『게오르그 짐멜 선집』 1차분(제1~3권)이 출간되고 『게오그르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첫 번째 교정이 끝난 시점인 2007년 1월러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이들 네 권의 책에 이어서 『돈의 철학』, 『렘브란트』, 『역사철학의 문제들』의 번역을 끝냄으로써 짐멜 해석과 수용의 1단계를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제법 호기롭게 작업을 시작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런 ‘호기로운 작업’은 역자의 관심축이 짐멜에게서 베버에게로 옮겨가면서, 그리고 용어 문제로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용어 문제는 번역 작업을 중간에서 가로막기까지 했다. 책의 제목(Philosophie des Geld)을 우리말로 옮기면 『돈의 철학』과 『화폐철학』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학술적 논의에서라면 ‘화폐’를 채택해야 했지만 김 박사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이 책은 일상적 삶에서 인간의 영혼과 인격적 자유를 각인하는 하나의 개별적인 현상을 인식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흔히 생각하는 학술서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이 현상을 ‘화폐’라고 하는 것보다 ‘돈’이라고 하는 것이 짐멜의 의도를 훨씬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제목은 그렇더라도, 본문에서 무수히 튀어나오는 ‘화폐가치’, ‘화폐경제’, ‘화폐량’, ‘화폐유통’ 등 ‘Geld-’의 형태로 된 합성어들이 그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결국 1/3 되는 지점에서 작업을 멈춰야 했고 그게 2011년 10월까지 공백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용어 때문에 중단된 번역 작업에 숨을 틔워준 것은 독일 카셀대 강의 준비였다. 세미나 주제가 ‘게오르그 짐멜의 이론’이었는데, 학생들에게 짐멜의 『돈의 철학』 제2부 ‘종합편’을 읽고 토론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말대로 이 수업은 번역 작업에 커다란 자극제와 추진력이 됐다. 2012년 7월 초에 초고를 완성했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게 그해 10월 말이었다.

물론 이 때는 다시 ‘Geld’를 돈이 아닌 ‘화폐’로 통일했다. 그렇지만 고민은 계속됐다. “용어의 통일성은 기했지만, ‘화폐’라는 단어는 인간의 삶, 문화, 역사를 담아내기에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용어의 복병과 씨름하면서 번역 2/3가 되는 지점에서 다시 ‘Geld’는 ‘돈’으로, ‘Geld-’는 ‘화폐-’로 옮기는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갔다. 통일성을 잃는 대신, “짐멜의 『돈의 철학』에서 의도하는 바를 가장 적합하게” 잡는 걸 택했다.


자, 짐멜의 『돈의 철학』을 우리말로 번역되기까지 과정은 이 정도로 이해하자. 중요한 것은 완역본에 걸맞게 역자가 기울인 엄정한 노력이다. 일단 짐멜의 『돈의 철학』 원전에는 각주가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 달린 621개의 각주는 전적으로 옮긴이 ‘김덕영’의 각주다. 뿐만 아니다. 123쪽에 걸친 꼼꼼한 ‘해제’에도 역시 181개의 각주가 붙어 있다. 각주 아래에 자신을 숨기는 게 아니라, 각주를 통해 짐멜의 철학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김덕영 박사는 번역을 勺水成河라고 표현한다. “나는 번역을 고전 중의 고전을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완벽한 한글화를 이루는 일련의 지적·정신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어떤 이들은 다른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서에 상세한 주석을 다는 것이 오히려 원문을 훼손하고 독서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이다. 옮긴이는 상세한 주를 다는 게 원문을 훼손하지 않고 정반대로 원문을 보강한다고 보았다. 이건 그의 학문적 신념에 가깝다. “고전은 대중서처럼 읽을 수 없다. 곱씹고 되씹어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고전이다. 게다가 중요한 개념이나 이론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두 마디로 건드리고 지나가면 읽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옮긴이도 지적했지만,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만만히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돈의 철학』의 전체 총론 격으로서, 짐멜의 지적 세계의 개념적·이론적 토대인 상호작용, 상대주의적 세계상, 교환, 가치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제1장 ‘가치와 돈’은 특히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어렵다고 해서 제1장 몇 쪽을 넘기다 포기해야 할까.

“탁월한 근현대 세계에 대한 메타과학적 담론이기 때문에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강조하는 번역자는 이 책의 포인트를 세 가지 점에서 찾았다. 첫째, 현대 문화의 본질적인 구조와 특성 그리고 이것이 현대인과 그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 대해 지니는 심층적인 의미를 전체적으로 해석한다.

둘째, 현대 경제에 대해 말해야 하는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이 현상들의 중심인 돈을 축으로 배열한다. 셋째, 돈을 축으로 해 인류 역사 전체와 인간 삶의 전 영역을 가로지르는 인식의 모험을 한다. 넷째, 철학적 인식과 관심을 추구하면서 다양한 인식 영역을 포괄하는 메타과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 1천92쪽 분량의 방대한 『돈의 철학』이 ‘돈에 기반하는 문화와 경제적 개인주의’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지는, 이제부터 이 책을 펼쳐나갈 미래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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