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體露金風, 가을바람에 드러나는 본래 모습
體露金風, 가을바람에 드러나는 본래 모습
  • 김풍기 강원대·국어교육과
  • 승인 2013.11.05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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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이즈막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은 ‘바쁘다’는 말이다. 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내가 무엇 때문에 바쁜가를 돌아보게 된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면 마음이 무겁다. 미안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며 민망하기도 하다. 그런 사정을 벗어나기 위해 때로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가야만 하는 자리에 못가면 바빴기 때문이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바빴노라고 변명한다. 실제로 바쁘기도 하겠지만, 곰곰이 자신의 생활을 되짚어보면 바쁘다기보다는 바쁜 척할 뿐인 경우가 더 많다. 충분치는 않지만 시간을 잘 쓰면 해낼 수 있는 일도 바쁘다면서 그냥 넘어간다. 자신의 할 일을 회피하거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바쁘다는 핑계와 변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정말 바쁜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바쁜 것이 일상생활이 돼버리고 나면 그런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게다가 자꾸 바쁜 척 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이 정말 바쁜 줄 착각하게 되는 사태도 일어난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도 눈을 들어보니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교정의 나뭇잎들이 짙은 단풍 빛을 이기지 못해 잎을 떨구고 있다. 선연하던 가을 단풍이 빛을 잃더니 올해의 시간을 안고 서서히 지고 있다. ‘無邊落木蕭蕭下’라더니, 杜甫도 끝없는 저 낙엽이 쓸쓸하게 떨어지는 가을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었다. 하늘도 어쩐지 가을의 공활함을 넘어서 겨울 기운을 띤 듯하고, 옷깃 사이로 스미는 바람도 제법 날카롭다. 여름이 어제런 듯 했는데 눈길 한 번 돌리니 벌써 겨울이 코앞이다. 너무 바빴던 탓에 계절이 오가는 것도 몰랐노라고, 그게 다 바쁜 탓이라고 되뇌인다. 공자는 열심히 배우느라고 자신이 언제 이렇게 늙었는지 몰랐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딱히 무언가에 몰두해서 배운 것도 아닌데 그냥 바빴기 때문에 시간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고 있었음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문득 내가 정말 바쁜가를 돌아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대학 시절 은사님을 뵈었다. 다른 분과 점심을 먹고 차를 한 잔 마시려고 들른 길가 카페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마주친 것이다. 불현듯 죄송한 마음이 일었다. 예전에는 선생님 댁을 무시로 드나들며 이런저런 말씀을 들었는데 최근에는 전화 연락도 못 드렸던 터였다. 바쁘게 사느라고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담담하게 웃으시면서, 젊은 사람이 바쁜 게 당연한 일이지, 하신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품이 너무도 담담하셔서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다. 길가에 서서 잠시 몇 마디를 나눈 뒤, 자주 연락을 올리겠노라고 다짐을 한 뒤 헤어졌다.


이상하게도 여러 날이 지나도록 선생님의 야윈 모습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대학시절, 선생님은 멋진 풍채와 해박한 강의로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세월이 흘러 그 풍채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몇 개의 뼈만으로 온몸을 지탱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슬픔 같은 것이 가슴에 스몄다. 그 슬픔은 노쇠함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든지 연민 같은 감정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도대체 슬픔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어쩌면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 속에 들어있는 몸체를 엿본 것에서 온 것은 아니었을까.


송나라의 선사인 雲門文偃에게 어떤 수행자가 물었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질 때는 어떠합니까?” 운문이 이렇게 대답했다. “가을바람에 몸체가 드러나지.” 『碧巖錄』에 나오는 일화다.
體露金風. 가을바람에 몸체가 드러난다는 이 말은, 가을이 돼 찬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떨어져서 나무의 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본래의 면목이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무성했던 여름이 치장하고 있던 나뭇잎과 온갖 꽃들, 그곳을 찾아와 노래하던 새들과 그늘을 즐기던 사람들은 가을바람이 불어오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새들이 날아가고 사람들도 떠나면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었던 잎들이 떨어진다. 그예 남는 것은 줄기들뿐이다. 더 이상 떨굴 것도 없는 저 줄기들의 튼실한 몸을 보면서도, 어느 순간 우리는 가슴 속 깊이 짠하게 다가오는 어떤 슬픔 같은 것을 느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노부모를 봉양하면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던 한 사람의 청장년 시절은, 그의 직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아름답고 풍성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머물고, 그 자신도 누군가를 찾아서 함께 무리를 이뤄 살아간다. 빛나는 청춘 시절을 거쳐서 힘찬 장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는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바쁘기 한량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새 그에게도 바쁜 것이 생활이 되고 만다. 바쁘다는 말이 입에 익고,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거나 난감한 것들을 회피하며, 바쁘다는 말로 예전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잊고 살아간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여름의 무성한 잎들은 청년 시절의 싱그러운 열정일 터이고, 가을의 멋진 단풍은 장년 시절의 원숙한 아름다움일 터이다. 싱그럽고 멋진 나무는 숲을 꾸미는 역할을 한다. 그런 나무에는 자연히 새들이 찾아와 깃들고 향기로운 꽃과 달콤한 과일이 달린다. 그러나 잎과 꽃과 과일과 새들이 어찌 나무의 본 모습이겠는가. 가을이 돼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남는 줄기들, 그리하여 겨울을 견디며 꿋꿋이 서있는 저 줄기들이야말로 나무가 힘든 겨울을 넘어서게 하는 몸체가 아니겠는가.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바쁘다는 말이 어찌 나의 몸체겠는가. 그것은 내 몸체를 포장해서 감추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 것들을 놓아버리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바쁠 것이며 바쁜 척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연히 만난 우리 선생님의 저 담담한 표정과 말씀이야말로 모든 장식과 수식을 걷어낸 뒤에 보여주는 몸체의 한 부면이리라. 그렇게 세상은 늙어가겠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깊은 슬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장식을 벗어버리고 원래의 몸체를 돌아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바쁜 일상을 벗어나 내 몸체를 드러내는 가을바람에 온몸을 맡긴다.

□ 다음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의 필자는 홍승직 순천향대 교수입니다.


김풍기 강원대·국어교육과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교산·난설헌 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고전산문의 깊이를 남다르게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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