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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에릭 J. 카셀 지음/강신익 옮김, ?
[책들의 풍경] :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에릭 J. 카셀 지음/강신익 옮김, ?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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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들
 
요즘 책들의 제목을 보면 ‘고통’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고통받는 몸의 역사’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사회적 고통’ 등이 그 면면들이다. 뒤의 두권은 고통을 직접적으로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고통이 문학의 주요 소재로 다뤄진 적은 있어도, 이처럼 인문사회과학에서 본격적으로 접근되긴 거의 처음이다.

그 가운데 ‘사회적 고통’은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고통을 조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고문, 기아, 성폭력, 의료와 질병, 억압 등 전세계적으로 만연한 우리 시대의 고통 문제에 대해 문화인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의료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한 결과물이다. 지은이들은 사회적 고통이 전쟁과 질병, 고문 등을 비롯해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모든 문제점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며, 그러한 형태의 권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고통의 범주를 너무 넓혀 놓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맑시즘적 관점에서 고통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새롭게 다가온다.

지배집단이 만들고 통제해 온 고통

그동안 고통의 문제가 의료현장에서만 협소하게 다뤄져 온 것은 사실이다.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를 보면 질병의 정복을 맹신한 근대의학에서 고통은 괄호 속에 묶인 존재에 불과했다. 코넬대학 공중보건학 교실의 임상의인 저자는 ‘고통의 본질’이라는 장에서 “현대의 의학교육과 의학연구, 의료의 실천과정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고통은 질병을 앓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질병의 치료결과로도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개인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질병중심의 의학이 갖는 폐혜를 비판하고 있다.

이 두 책은 모두 인간이 그동안 고통에 대해 인간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몸과 마음, 개인과 사회, 표현과 경험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고통을 단일한 주제, 혹은 획일적인 경험으로 검토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의사들은 진료실에 들어선 환자들에게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묻는다. 이는 현대의학의 관심사가 오직 아픔의 ‘위치? 즉 질병의 원인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적 고통’은 고통에도 ‘사회적 효용’이 있다고 말한다. 권력자들은 원주민 공동체의 파괴, 전쟁, 인공 청소 등 집단적 고통을 조장하면서 동시에 상품화시킨다는 것이다. 일례로 텔레비전을 통해 한 지역이나 종족의 고통은 세계적인 볼거리가 된다. 또한 국가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는 집단들은 사람의 몸과 네트워크를 조절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의료화를 강제해왔다고 분석한다. “몸과 행동을 조절하는 제도화된 관습이나 규범을 통해 나타나는 정상성이 관료주의적 국가의 목표인 질서와 통제, 효율성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을 효율적으로 훈육시키는 감옥, 병원, 공장, 군대의 존재를 최초로 제기한 푸코의 방법이 옮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고통이라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발생되기도 하며 또한 적정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생각 말이다.
 
자크 르 고프 등 아날학파 22인이 질병의 역사화를 위해 집필한 ‘고통 받는 몸의 역사’는 고통의 인간적이고 풍부한 표정을 전해준다.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위엄을 유지해야 했던 왕에 대한 묘사, 18세기에 바페르가 심각한 질병이 된 이유는 귀족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이라는 지적 등 사료를 통해 복원한 고통 받는 인간들의 역사는 차라리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불과 몇 세기 전만 하더라도 ‘고통’은 그 자체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고통의 배면에 드리우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들을 더욱 공포스러워했다는 점이다. 고통 그 자체가 두렵고 괴로운 대상이 된 지는 불과 2세기 저쪽의 일이다. 과학은 인간의 몸을 해부해 모든 질병을 한자리에 붙들어 매고 그것에 이름을 부여하면서 질병과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오직 ‘고통스럽고’ ‘차가운’ 것으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광대한 이미지로 고통을 보여주는 매스미디어는 고통에 인간의 상상력이 침투할 수 있는 틈을 막아버렸다.

수많은 위험요소가 도사린 오늘날은 자아의 병리학에 좀더 많은 고뇌와 경제력이 동원되는 시대다. 1~2년 전부터 출판가에는 이런 자아의 병리학에 성의있는 관심을 표명한 책들이 늘고 있다.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 ‘의학의 과학적 한계’ 등 대체의학서 출간붐, ‘의료의 문화사회학’ 등 의료파동 이후 의학의 비인간적 패러다임을 반성하는 책들이 나오는 등 인간을 생각하는 의료계의 변방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근대 의학계가 괄호 속에 묶어뒀던 ‘고통’이라는 주제가 인문과학의 주요한 연구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사회의학계의 자기반성과 위기의식 반영

이를 두고 의학계가 고통을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경제적 가치로 파악했다고 보는 것은 좀 무례한 발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인간적 개념화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노력에는 일종의 위기감과 함께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고통이 개인적 차원으로 귀속되지 않고, 사회적 현상으로 미만한 상황에서 사회적 고통에 관한 문제 분석은 이들 사회학과 의학에 단단한 도덕적 토대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책들이 비록 인간학적으로 고통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현재의 관료화된 사회 전반에 흡수될 경우 오히려 고통의 상품화만 초래하게 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아무튼 이 책들은 그동안 고통을 회피해온 우리에게 정면으로 그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고통’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고통을 단순히 정상적인 자아에서 내몰아야 할 비정상적인 타자로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그것 자체를 삶의 과정 속에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서 제대로 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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