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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수집·편찬 등 본연의 과제 충실해야 … 역사는 정치도구 아니다 ”
“사료 수집·편찬 등 본연의 과제 충실해야 … 역사는 정치도구 아니다 ”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10.28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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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국사편찬위원회, 어디로 가나

 

국사편찬위원회의 전신은 1946년 경복궁에 설치됐던 국사관이다. 이후 1987년 과천에 신청사를 건축,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23일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위) 12대 위원장으로 유영익 연세대 명예교수가 임명됐다. 그러나 유 위원장을 바라보는 학계의 시선은 ‘우려’ 일색이다. 그런 우려를 하는 이유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교학사 집필진 중 다수가 속한 한국현대사학회(회장 이명희)의 고문을 맡고 있다는 점과 이승만 초대대통령을 마치 성경의 요셉처럼 평가하는 역사학자로 기본자세 결여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논란의 주인공 유 위원장이 부임한 국편위는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일까. 국편위는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 필요한 각종 사료를 체계적으로 조사·수집·보존·편찬·보급함으로써 한국사 연구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 기구이다. 한국 역사를 총괄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국편위의 시작은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6년 3월 국사관설치규정이 제정·공포되면서 경복궁 집경당에 처음 설치됐던 국사관이 현 국편위의 전신이다.

방대한 한국사 자료로 학계 자양분 제공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국사관은 1949년에 문교부 직속 국편위로 개편됐다. 1955년 이후 국편위는 『조선왕조실록』등의 영인 간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료간행 사업을 전개해 왔다. 한국사 연구에 필요한 기초사료를 대량으로 보급하는 일 그리고 자료를 조사 발굴해 학계에 제공하는 것이 국편위의 자료편찬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961년 이후 직제개편을 통해 기구와 석·박사급 연구 인력을 확충했고 1964년에는 전임 위원장 직제가 마련됐다. 초대 국사관장이었던 신석호 이후 1, 2대 위원장을 역임한 김성균부터 최영희, 이현종, 박영석, 이원순, 이성무, 이만열, 유영렬, 정옥자 그리고 11대 이태진까지 국편위 위원장 자리를 거쳐갔다.

사료의 수집·편찬·제공이라는 측면에서 국편위의 활동은 시기별로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1960년대 초서로 된 원본『승정원일기』를 탈초해 편찬하는 대규모 사업을 비롯해『고종시대사』,『 한국독립운동사』,『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자료대한민국사』등을 편찬함으로써 한국사 연구영역을 넓혀 갔다. 1970년대에는『한국사』와『한국사론』등을 편찬·간행함으로써 한국사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고 한국사 미개척분야 연구도 진행했다. 현재의 과천 청사로 이전한 1987년 이후에는 ‘사료의 수집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한국사 사료수집·편찬기관으로서의 법률적 근거도 마련했다.

시대적 추세에 맞춰 사료와 연구 자료의 정보화에 국편위의 역량이 집중된 건 1990년대부터다. 2000년대 들어서며 해외소재 한국사자료 수집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근현대 지역사자료와 구술자료를 비롯해 그야말로 방대한 양의 근현대사자료를 수집했고, 이는 학계에 제공돼 고스란히 연구의 자양분이 됐다. 국편위는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한국사 교육 및 보급 활동 강화의 일환으로‘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주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 2008년 기존의 사료수집법을 전면 개정한 ‘사료의 수집·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했다. 이로써 국편위의 활동 영역은 사료의 수집·편찬·제공을 넘어 한국사의 정보화·세계화·대중화에 이르게 됐다.

현재 국편위의 주요 사업은 △한국사 진흥 △사료의수집 및 관리(국내와 국외) △연구 및 편찬 △한국사 정보화 등 크게 다섯 가지 범주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편위는 위 발전목표를 통해 국내와 세계 각국에 산재한 한국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복원·정리해 전자사료관, 전자도서관을 통해 학계와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간행된 편찬물은 모두 81종 1천601책에 이른다(2012년 12월 기준). 또한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사 관련 자료를 전산화해 학계와 일반에 제공하고,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용 콘텐츠가 담긴 사이트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한국사 진흥’분야다. 교원 연수와 사료 번역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은 무리 없이 진행됐지만, 역사교과서 검정,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은 사료 수집·편찬·제공이라는 국편위 본연의 성격에서 비껴나 있기 때문이다. 유 위원장의 부임으로 이 사업은 더욱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위원장 자리는 역사학계 원로에 대한 명예직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한 <역사비평> 편집주간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부터 말문을 열었다. “교과서는 역사편찬과 성격이 다르다. 독자적 기관이 담당해야 할 것을, 교과부가 이전에 교육과정평가원에 맡겼다가 국편위에 떠넘긴 거다. 사료편찬·연구와 교과서 검정을 연관시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보탰다. “국편위 내부에서 발의해 대중들이 흥미롭게 국사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시작한 시험이, 교육열풍에서 서열화 도구로 전락했다. 행시나 사시처럼 공무원 시험의 스펙처럼 돼 버린 상황이다.”

결국 정 교수는 국편위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료를수집·편찬해제공하는국편위의 무료공개시스템은 일본, 중국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현재 한국의 역사문화콘텐츠가 매우 풍부해진 것은 전적으로 국편위가 지금까지 해 온 작업 덕분이다. 본연의 업무만으로도 벅차다.” 새로 취임한 유 위원장에 대해서도 그는 “국편위원장은 일종의 역사학계 원로에 대한 명예직이다. 공적인 사료를 담당하려면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반반으로 갈라진 분위기에서 정권이 바뀐다고 위원장이 바뀌면, 위원장 자리가 역사를 정치의 도구로 쓰는 세력이 이용하는 하나의 포스트가 될 뿐이다”라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역사학계 중진 교수도 유 위원장에 대한 의견을 보탰다. “학문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나름의 연구 성과를 가진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국편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떠나 다른 학자들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학자 100명이면 100개의 의견이 나오는 곳이 교수사회다. 유 위원장의 지난 발언이나 국감 발언을 보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려된다.”

국편위가 2000년대 들어서 중국지역의 독립운동사 자료, 영국국립문서보관서의 한국현대사 자료, 대만 장제스 정부의 한국근현대사 자료를 수집했고 일본에서는 1년간 연구원을 상주시키면서까지 자료를 확보해왔다. 이렇게 수집한 해외자료는 그야말로 학계의 소중한 연구자료가 됐다. 한 연구자는 “일본에 가지 않고도 연구할 자료를 국편위에서 찾을 수 있었다”며 국편위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교과서 문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그리고 새로 취임한 12대 유영익 위원장의 학자로서의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지금 국편위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사 자료의 수집·제공·편찬에 있어 국편위만큼의 일을 해 줄 다른 기관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인정 투쟁으로 업무를 확장하고, 그러면서 정치적 요구를 껴안게 되기보다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것, 정부기관이지만 엄정한 학문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위원장의 선임이 학계가 국편위에 바라는 것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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