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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법인화 정책의 실상
국립대 법인화 정책의 실상
  • 김용민 인천대 교수협의회장·불어불문학과
  • 승인 2013.10.28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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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국립대를 법인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교육부가 처음 표명한 때는 2006년경이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간 신자유주의가 아직 맹위를 떨쳤던 시절이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앞 다퉈 쫓아갔던 일본이 모든 국립대를 일거에 법인화했던 터라, 정부는 더욱 초조했을 것이다. 그리고 7년 가량이 흘렀다. 국공립대학 두 곳(서울대와 인천대)이 법인화됐고, 다른 국립대들은 아직 그대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선진화와 자율성 강화란 미명 아래 추진된 이 졸속적 교육정책 때문에 모든 대학이 후유증을 앓거나 극심한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법인화를 거부한 국립대가 치르는 대가는 혹독하다. 교육부는 지난해에 총장직선제 폐지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교육공무원법은 총장 선출방식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돈줄을 쥐고 있는 교육부는 묘안을 찾아냈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에‘총장직선제 개선’이란 기발한 평가항목을 신설해, 구성원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학이 백기를 들게 만들었다.

교육부가 지침으로 제정한‘누적식 성과연봉제’또한 법인화 정책의 변형된 제도라 할 수 있다. ‘국립대학 교원사회에 발전적 경쟁풍토’를 조성한다는 이 제도는 실상 유례가 없는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보수체계이다. 아랫돌 빼 윗돌에 얹는, 그것도 누진적으로, 상호약탈식 연봉제가 교수사회를 어떻게 황폐화시킬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총장직선제 폐지와 무자비한 경쟁체제 도입은 모두 법인제도의 기본 취지에 속한다. 교육부는 전면적 법인화에 실패하자 단계적ㆍ선별적 공략으로 전략을 바꾼 듯하다.

정작 법인으로 정체가 바뀐 서울대와 인천대는 어떠한가. 서울대 법인화 법률안은 제대로 된 공청회조차 갖지 못한 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4대강 사업 예산안들과 함께 날치기로 통과됐다. 그렇게 서울대가 법인으로 출범한지 이제 2년이 돼 간다. 그러나 최근에 서울대 민교협이 법인화와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파행적 법안 통과의 후유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응답자 중 43.5%는 법인화 이후 “퇴보했다”고 답했으며, 40.6%는“달라진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의 법인체제를 반대하는 교수가 70.8%에 이르렀고 찬성은 고작 7.3%에 불과했다. 설문조사의 신뢰도를 감안해야겠지만, 법인화가 교육 및 연구 여건의 개선에 기여한 바가 없음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다. 오히려 내부에서는 재원 확보의 불확실성, 대학운영의 민주성과 자율성의 위축 때문에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시립대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한 인천대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례다. 정부는 인천시와 맺은 양해각서를 내세워 5년 동안 국비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부족한 운영비 200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아야 한다. 법인체제에선 빚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음을 정부는 인천대를 통해 보여준 셈이다.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국가는 인천대에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사와 감사 추천, 관리와 감독 등 모든 권리를 행사한다. 법인이란 경우에 따라 정부가 의무는 저버리고 권리만 행사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 또한 인천대 법인화의 교훈이다. 법인화 정책을 추진하며 교육부가 내걸었던 대학의 선진화와 자율성의 신장이 공허한 구호임을 이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법인이든 아니든 모든 국공립대학이 지금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에 실망하고 있다. 아니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이 정도 수위라면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 법인화 정책이 빚어낸 일련의 결과를 보며 우리에게 고등교육 발전의 장기적 비전과 의지가 있는지, 교육의 공공성과 자율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지 다시금 되묻게 된다.

김용민 인천대 교수협의회장·불어불문학과
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 「루소의 호수 또는 선택된 몽상의 공간」, 역서로 『개인주의의 역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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