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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사회와 이론』 창간호와 『트랜스토리아』 창간호 엿보기
[책산책] : 『사회와 이론』 창간호와 『트랜스토리아』 창간호 엿보기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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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아닌 ‘결사체’로... 새로운 개념 제안
‘사회와 이론’(이학사 刊)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베버, 짐멜, 맑스를 연구해온 ‘베버 연구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새롭게 탄생한 ‘한국이론사회학회’(회장 김성국 부산대 사회학과)의 야심찬 첫 성과물이다.

창간사를 쓴 이병혁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과)는 학회의 지향점을 元·亨·利·貞이라는 4원소로 정리하고 있다. ‘원’은 한국사회야말로 “달려들어 씨름해볼만한 좋은 노다지”라는 것을, ‘형’은 과학의 객관성을 위협하지 않고 인접학문과 소통할 수 있는 상상력을, ‘이’는 한국사회의 특이한 권력 현상을 설명할 이론을, ‘정’은 평범한 문화적 사실들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공허하지 않은 이론 모델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가 아닌 ‘결사체’로

그래선지 특집 ‘공동체와 사회이론’은 야심만만한 기획으로 다가온다. 그 중 김필동 충남대 교수(사회학과)의 ‘한국 전통사회의 공동체와 개인’, 전병재 연세대 교수(사회학과)의 ‘공동체와 결사체’는 경청할 만하다. 김교수는 조선시대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조직이 개인의 자율성과 어떤 매커니즘으로 얽혀 있었는지 역사적으로 살폈고, 전교수는 “과거의 공동체적 사회는 현재의 조직체 못지않게 문제적이며, 현대 사회가 비판 합리성에 입각한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결사체 위주의 사회로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난무하는 현실을 역사적·이론적으로 돌파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어 시사적이다. 하지만, 자본제 공동체에 포섭되지 않고 개인들이 서로 결속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들은 거의 얘기되지 않고 있어서 아쉬운 감도 든다.

자생적 사회학 이론의 수립은 우리 학문의 태생적 한계로 지적되고 있는 학문의 식민지성을 타개하는 것으로 초점이 모아지기도 한다. 이런 학문의 식민지성 극복은 최근 역사학계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역사유물론을 함께 공부해온 소장 역사학자들인 김택현 성균관대 교수(사학과), 유제분 부산대 교수(영어교육과) 등이 모여 창간호를 낸 ‘트랜스토리아’(박종철출판사 刊)가 그렇다. 트랜스토리아는 전환·혁신을 의미하는 ‘트랜스(trans)’와 역사를 뜻하는 라틴어 ‘이스토리아(istoria)’의 합성어로, 역사인식의 전환, 지식·권력으로서의 근대 역사학 담론들에 대한 메타적 비판과 이를 발판으로 역사(학) 이론의 새로운 혁신을 모색하는 반년간지다.

근대사학의 개념적 도구 전면 반성

특집 ‘포스트식민주의와 서발턴(subaltern) 연구’는 인도의 서발턴 연구 집단이 이룬 성과들을 확인하고 동시에 그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하는 글들로 구성됐다. 한국에서는 낯선 용어인 ‘서발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발턴 연구 20년사의 공과를 정리한 김택현 교수의 글을 먼저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백색 신화(White Mythology)’의 저자 로버트 영과 최근 국내에도 번역된 ‘제국’을 안토니오 네그리와 함께 쓴 마이클 하트가 각각 비판적 입장에서 서발턴 연구를 다룬 논문도 싣고 있다.

‘서발턴(subaltern)’은 번역하면 ‘하위집단(주체)’이지만 이 번역어는 서발턴의 역사적 함의를 다 담지 못한다. 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서발턴 연구는 인도의 식민사학과 이에 대항한 민족사학이 엘리트주의로 구성된 동전의 양면관계라며 각성된 민중주체의 존재를 내세운다. 이들은 그 둘의 담론체계를 전복하면서 변화하는 인도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현실비판이론을 개발해왔다.

편집위원들은 “서발턴 연구를 거울삼아, 근대 역사학을 비롯한 여러 지식 형태들이 민족·젠더·인종 차원에서 사용하는 근대성·주체성·총체성의 이데올로기적 기능들을 심문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이런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식민지라는 역사적 상황이 과연 얼만큼의 현실적 규제력을 갖고 있을까. 그래서 ‘트랜스토리아’ 창간호의 특집에 ‘한국에서의 탈식민주의 이론의 전개’와 같은 논문이 빠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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