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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은 불꽃무늬와 새[鳥] … 관식화한 이유 밝혀야 고대문화 원리 풀려
공통점은 불꽃무늬와 새[鳥] … 관식화한 이유 밝혀야 고대문화 원리 풀려
  •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 승인 2013.10.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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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12. 삼국 冠飾의 비교

연재순서

1)‘神’의 해석
2~3)‘神’의 순수고유어와 고대 상징의 세계
4)한국 최초의 문양 - 빗살무늬
5) 巴形銅器의 기원과 상징
6) 청동기시대 銅鏡과 銅鈴
7) 비파형 동검
8~9)고대 새 숭배사상의 원류와 한국의 고대문화(Ⅰ) (Ⅱ)
10)고구려 折風의 起源과 語源
11)신라 금관
12)삼국 冠飾의 비교
13)曲玉의 기원과 상징
14)신라 金製 銙帶
15)환두대도 三枝葉
16)神市, 蘇塗, 서라벌, 서울의 어원을 찾아서
17)한국 고대음악의 기원
18)한국 고대무용의 기원과 살풀이춤
19)한국 고대미술의 시원과 원형질
20)기와의 명칭과 와당 문양의 상징
21)당초문의 기원과 명칭의 상징성
22)흉노의 칸(干)과 선우(單于) 姓의 문자학적 검토
23)상투와 비녀
24)고대 복식의 형태적 시원
25)Y形器와 鳥翼形 冠飾 그리고 萬歲의 상징성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명품 백선』 도록 99번째 유물은 傳창녕출토 투조금동관[그림1]을 실어놓았다. 창녕 투조금동관의 뒷쪽 솟음대(金銅柱)가 유달리 눈길을 끌지만, 그것이 왜 그렇게 높이 솟아 있는지,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식인지 이런 부분에 대한 해설을 한국과 일본 어느 책에서도 아직 본 일이 없다. 한눈에 봐서도 그것은 고대관식의 어떤 중요한 상징성을 띤 장식구라는 것을 단박 느낄 수 있음에도 왜 상징적 의미를 연구한 글이 단 한 편도 없는 것일까.


이 문제는 해석고고학적 접근이 아니고선 양식의 상징성을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김종철 교수(전 계명대 박물관장)가 이양선 박사 기증문화재 도판해설에서 [그림1-3]에 대해 “길이 47.4cm나 되는 細長한 금동판을 길이로 접어 稜角을 세우고 측면관이 완만한 S자형이 되도록 휜 형태로 꿩의 꽁지털을 세운 모양이다. 길이 11cm 정도의 뿌리부분은 펜촉 모양으로 약간 넓게 돼 있어 물체에 부착하기에 편하게 돼 있으며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단까지 세 줄로 길게 46 개의 영락이 달려 있다. 일본 동경박물관소장의 이른바 ‘小倉콜렉션’ 가운데 傳경남 창녕출토품으로 돼 있는 金銅製透彫冠帽에 중앙입식으로 41.8cm나 되는 유사한 長尾形立飾이 꽂혀 있는데, 본품도 그러한 금동관모의 正面立飾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菊隱 李養璿 蒐集文化財』, 1987, 국립경주박물관)라고 해설한 글이 내가 본 유일한 이 분야의 글이다.


김 교수의 논급 중에서 ‘꿩의 꽁지털을 세운 모양’이란 표현과 동경박물관소장 창녕출토 금동제 투조관모의 ‘長尾形立飾’과 유사하다는 견해는 형태의 유사성에 의한 추론으로 생각되지만 아주 재미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연히 있어야 할 그렇게 본 까닭, 즉 상징의미에 대한 논리적 해석이 없어 설득력을 잃고 있는 점이 아쉽다.

“새장식구는 절풍의 또 다른 표현방법”
이 장식구를 나는 절풍의 또 다른 표현방법이라고 해석하며, 그것은 새 숭배사상에서 유래된 冠飾의 표현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장식구의 용도와 재질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금속절풍’이라 부른다면 안성맞춤일 것으로 생각한다. 박선희 상명대 교수가 금동절풍이란 용어를 먼저 사용한 예가 있기도 하지만(『우리 금관의 역사를 밝힌다』, 2008, 지식산업사), 나는 본 연재 제10회에서 절풍을 솔개의 상징으로 해석한 바 있는데, 창녕 투조금동관의 금동절풍은 깃털로 상징한 절풍이 아니라, 새의 꼬리(長尾鳥)를 금속으로 조형화해 멋지게 높이 세움으로써 군왕의 권위와 기운을 상징한 금속절풍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그림1-2,3,4]의 유물도 모두 冠의 본체에서 분리된 채 출토된 금속절풍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그리고 출토지의 분포를 살펴보면 이런 君長의 冠飾이 그 당시 백제, 신라, 가야 등 새 숭배의 원시신앙이 분포된 삼국에 형태는 약간씩 달라도 널리 유행된 관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솔개의 꼬리가 그렇게 긴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새 숭배사상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君長의 심볼이었던 솔개가 점차 봉황이나 꼬리가 긴 꿩 종류로 바뀌면서 그 원형이 흐려져 간 것을 감안한다면, 초기에 날개의 깃으로 장식됐던 절풍이 재질을 금동으로 대체한 문화의 진화현상은 자연스런 변이단계라 할 것이다. 박선희 교수가 이러한 양식을 절풍으로 서술한 것은 매우 훌륭한 판단이라 하겠는데(『우리 금관의 역사를 밝힌다』), 다만 그의 견해는 절풍이 무슨 뜻인지 그 상징 의미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전혀 밝혀놓지 않음으로써 확실한 근거를 세우지 못한 견해가 되고 만 것은 매우 아쉬운 바라 하겠다.


[그림2]에서 일본 천황의 즉위식 때의 冠飾을 보면, 천황은 昻尾形을 취하고 있는데 반해 신하들은 모두 굴건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은 천황만이 天命得意의 즉위식에서 擧尾할 자격을 가진 신분이고, 다른 신하들은 屈巾함으로써 복종의 예를 상징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새(鳥)가 득의의 시점에서 취하는 자세와 같은 모양이다. 새의 득의시점이란 교미할 때의 모습인데, 그 때 새의 모습은 꼬리를 바짝 치켜 올려 擧尾의 모양새를 갖춘다. 새의 형상을 통해 인간사유를 상징화하는 것은 동북아 고대민족의 공통된 문화인소다. 長尾鳥를 冠飾化했던 遺風을 현재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예는 喪服의 屈巾 모습이다. 상복의 굴건은 퇴화된 절풍의 희미한 흔적이라고 하겠다.


다시 [그림2]를 보자. 일본 천황관식의 독특한 솟음관식은 무엇을 상징한 것일까. 나는 그 상징해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려했으나 끝내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필자는 1998년 일본 쯔쿠바(筑波)대학에서 『金文 ‘唯’ 字 考』란 논문을 통해 “일본 천황의 수직관식은 長尾鳥의 擧尾形式이며 그 祖形은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傳 창녕출토 투조금동관’의 솟음대인 금속절풍에 있다”는 논지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슬라이드로 양자의 그림을 비교하며 설명했을 때, 많은 참석자들이 커다란 공감을 표해주던 장면이 생생하다.


이러한 관식의 기원은 태양숭배사상과 神鳥숭배사상이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신조는 곧 솔개라는 사실을 앞의 연재에서 누차 강조한 바 있지만, 태양숭배사상은 화염무늬나 빛살무늬로 나타나고 새 숭배사상은 神鳥 솔개 및 봉황으로 나타난다. 두 가지 형태가 서로 복합돼 군왕이나 지도자의 관식으로 상징된다. 알타이문화권과 동북아 지역에서 이러한 관식의 공통분모는 문화의 시원적 형태가 비슷했다는 사실을 출토유물을 통해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그림4]의 관식은 새의 긴 꼬리를 치켜세워 형상화함으로써 군왕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화한 것으로 본다. 새 숭배사상의 문화적 동질성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발현되는 형태가 비슷하다. 이 점은 문화의 전파와 접변에서 유의미한 일인데, 절풍의 솟음 관식이 백제시대의 관식에선 기법상 발전된 특이 형태로 나타난다.


[그림5]의 (5-1)익산 입점리 출토 금동관과 (5-3)공주 수촌리 고분출토 금동관 및 (5-4)고흥 안동고분 출토 금동관과 (5-2)일본 후노야마 고분 금동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금동관의 뒷쪽이나 정수리 부분에 긴 대롱을 붙이고 그 끝에 나팔모양의 작은 종지 같은 것을 붙여놓은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고고학계에선 그 명칭을 다음과 같이 제각각 부르고 있다.

-수발(垂鉢)장식 : 『百濟의 冠』 도록, 국립공주박물관, 2011
-水盤形 장식 : 노중국(「百濟 冠 裝飾의 象徵性」『百濟의 冠』논고,국립공주박물관, 2011) -半球形 장식 : 이영호, 신광섭(『고분미술』, 솔, 2005)
-세움장식 : 박선희(『우리 금관의 역사를 밝힌다』, 지식산업사, 2008)

이렇게 명칭이 연구자들마다 다른 것은 이런 관식의 상징성을 해독해내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까지도 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할 때 쓰는 모자 정상에 흰 새의 깃털을 꽂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림5-7]처럼 내몽골 무사의 투구 꼭대기에 꽂힌 깃털은 용맹한 무사나 우두머리 수리급의 고대관식이다. 새 중의 왕자인 솔개를 깃털로 표상한 관식이 절풍이다.


[그림6] 공주 수촌리 금동관의 디자인적 구성을 살펴보면 비상하는 솔개의 좌우 양날개를 조형하고 뒷부분엔 길이 15cm 내외의 대롱을 붙여 그 끝엔 내경3cm의 발(鉢)을 만들어 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발에 깃털을 빽빽이 심어 아교로 단단히 고착시킨 다음, 긴 대롱은 청홍의 비단으로 겉을 감싸 아름답게 장식하고 높이 세움으로써 넘치는 기상의 솔개 꼬리를 상징한 절풍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런 양식이 일본에 전파된 것이 후노야마 금동관이다. 대롱과 수발의 용도는 이런 해석 말고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고 말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삼국의 관식에 나타난 새 숭배사상은 태양숭배사상에서 배태된 것이다. 새의 상징은 태양과 등가물로서 디자인돼 전개된다. 화염문의 불꽃봉오리 속에 새가 자리잡은 조형도 모두 그런 이유이다.


고구려금동관 관식은 한반도 불꽃무늬 祖形
[그림7]은 삼국의 고깔(弁)이다. 고깔은 한국 고대 관모의 표준인데, 천마총 출토의 금관모를 납작 접은 형태로 보면,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어 양손을 합한 형상이다. 새 머리의 정면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의 기거동작까지 새를 닮고자 했다는 고대인들의 의식이 관에 반영된 예다.


삼국관식을 비교할 때 공통점은 태양과 새 숭배사상이다. 태양숭배사상을 기본원리로 삼아 화염문과 새(솔개)를 군왕의 심볼로 조형화한 것이 고대관식의 원리다. [그림8]에서 평양 청암리 출토 고구려금동관(8-1)의 관식은 한반도 불꽃무늬 관식의 祖形이 된다. 그 양식이 아직 簡化되지 않은 불꽃형 그대로인 것은 고구려의 신앙의 반영이다. 불꽃무늬를 관식화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문제를 해석해야 고대문화의 원리가 풀린다. 부산 복천동 출토 가야금동관(8-2)과 경주 교동출토 신라금관(8-4)의 입식을 고고학계에선 나뭇가지형(樹枝形)으로 부르고, 나주출토 백제 금동관(8-3)의 장식은 草花形이라 부른다. 수지형, 초화형의 조형원리가 무엇인가. 그런 명칭은 빗살무늬와 같이 즉물적 명칭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런 즉물적 명칭에 견강부회한 이론을 자꾸 갖다대다보니 원리 해석은 점점 꼬여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림8]의 네 종류 관식의 공통성인 불꽃무늬는 천손족이었던 고대한반도의 거주민들이 태양숭배의 고대사유를 불꽃무늬로 도상화해 관식으로 반영한 공통점만은 확실하다. 논의의 포인트는 여기에 두어진다.
冠은 전회(11회)에서 말했듯이 사용집단의 사유원형을 상징적으로 디자인해 지도자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낸 조형물이다. 그러므로 고대관식은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의 특성을 압축한 대표적 상징물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관식의 상징을 해독하는 길은 수수께끼와 같은 고대문화의 정보를 풀어내는 첩경이 된다. 삼국과 가야 및 일본의 고대관식에 대한 비교연구는 그런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문화원형의 공유 여부와 고대민족간의 교류 및 이동을 체크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거기에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ydk629@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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