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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_ 대학개혁 제대로 가고 있나
교육단상_ 대학개혁 제대로 가고 있나
  • 김귀순 부산외국어대·영어학부
  • 승인 2013.10.21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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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순 부산외국어대·영어학부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일련의 대학개혁 과정을 바라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작금의 대학개혁 과정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 정년보장제도의 폐기, 교수연봉제 도입, 강의평가의 업적평가 연계 등 그릇된 교수평가 기준이라 할 것이다.

대학 정년보장제도는 근본 취지가 권력과 재단 등 어떠한 외압에도 창조적 학문연구 활동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으로, 교수들의 오랜 투쟁과 노력 끝에 얻어낸 결실이다. 정년제를 넘어 종신제를 관철한 미국 대학 교수들의 경쟁력이 유럽 대학보다 전반적으로 더 높은 것은 교수들에게 안정적 연구 활동을 평생 동안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도 종신제 교수의 강의와 연구 불성실을 재단에서 문제 삼아 종신제를 수정하려고 했으나 교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단이 퇴진한 적이 있다.

최근 임용되는 교수들은 거의 대다수가 비정년트랙 연봉제로 임용된다. 교원 지위의 불안정은 연구 및 교육의 전문성을 저해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한다. 재임용 등을 위해서 임용권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와 학문 등을 해야 한다면 대학 교수의 사회봉사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대학당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를 물갈이하기 위해 정년제도가 폐기된다면 과연 교육의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 대학의 자율성 등이 보장될 수 있겠는가.

연구업적 평가도 1~3년 이내의 비교적 단기간 성과를 갖고 결정하는데, 단기적 평가 시스템은 문제가 많다. 교수의 연구는 논문과 저서, 프로젝트 등으로 나타나는데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저서와 단편적 논문의 점수 차가 적어 저서가 나오기 어렵고, 전공논문 위주의 평가가 통섭적 학문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현재의 교수업적평가가 논문 외에도 정해진 수업시수와 무관한 근무일수, 학사관리능력까지 포함하는 등 연구 외적인 요소가 많은 점도 개선해 가야 할 부분이다.

강의평가가 대학 교수의 역량평가로 과잉인식되는 것도 문제다. 잘 이해가 안 되면서 과제를 던져주는 강의보다 요점 정리를 잘해주는 쉽고 편안한 강의를 요즘 대학생들은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에 대한 문제해결의식을 키워주지 못한다.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잘못을 많이 지적하는 교수, 시험을 어렵게 내거나 과제를 많이 부과하는 교수는 나쁜 점수를 받기 마련이다. 창의적 수업과 수업의 개별적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독일처럼 강의평가를 안 하는 나라도 있다.

또 하나, 교수업적평가와 관련된 사항은 교육부가 대학평가지표로 선정함으로써 발생한 학생 취업률 문제다. 교육부의 취업률 공시는 대학당국으로 하여금 교수의 연봉, 승진 및 재임용에 학생 취업률을 연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 학생 취업률이 대학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심층적 연구와 강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학생 취업 알선에 목매야 한다면 이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사학의 경우 재단이 총장과 보직교수의 임기를 보장하지 않으면 대학 자율성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 또한 재단 이사진의 총장 취임도 사학 발전을 위해 긍정적 역할로 자리매김하려면 교권 존중과 교수협의회와의 역동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학 내 장기 보직교수그룹의 존재는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고 교권 억압의 도구가 되기도 하므로 이의 개선도 필요하다.

기존정년보장제도 폐기나 연봉제 도입에 앞서 대학 교수업적평가의 공정성 확보, 대학경영의 투명성 확보, 교수노조 활성화, 억울한 교원을 구제할 옴부즈맨 제도 도입 등 대학의 본질적 개혁에도 노력해야 한다. 대학 전체 구성원의 합의 없이 기존 정년보장 교수를 포함해 업적평가 결과 하위 20%를 퇴출하겠다는 대학 교수 대학살(holocaust) 발상으로 대학개혁에 임한다면 이는 대학 발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대학의 상업주의, 물신주의, 지나친 성과주의가 대학 자율성을 파괴하고 장기적 국가 발전까지 저해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김귀순 부산외국어대·영어학부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대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으로 활동했고, 현재 (사)아시아환경정의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여성친화도시』(생태편/문명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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