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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驚氣 일으키는 사회
[만파식적] 驚氣 일으키는 사회
  • 교수신문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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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9 15:09:06
윤형숙/목포대·역사문화학부

장상 씨에 이어 장대환 씨가 총리서리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낙마했다. 교육계와 언론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도덕성 문제로 낙마했으니 교육계와 언론계 지도자의 도덕성이 행정부 수장보다 못하다는 한숨 섞인 소리가 들린다. 한편으로는 그만한 흠도 없는 사람을 우리 나라 지도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체념 섞인 말도 들린다. 나아가 ‘능력’이 있는데 그만한 수완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들린다.
두 장씨의 낙마를 주도한 정당은 이러한 불행이 ‘DJ의 깜짝 인사’에서 나왔으며 더 이상 깜짝 인사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총리서리 임명을 도덕성과 행정능력이 없는 깜짝 인사라는 동일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나는 매우 불편한 심정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언론사 사장이 총리로 전격 발탁된 사례를 본 적이 없으니 장대환 씨의 이야기는 그만 두고 장상 씨의 이야기만 해보자.
대학교수나 총장 등 ‘행정능력’이 많지 않은 학자출신들이 장관이나 총리에 임명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드물지 않은 관행이다. 학자를 기용할 때마다 정부는 학식과 경륜이 높은 ‘때묻지 않은 참신한 인재’를 등용했음을 홍보했다. 체제의 정당성이 의심될 때 특히 대학교수나 총장 출신의 등용이 갖는 정치적 ‘선전효과’는 컸다. 정부의 이런 의도 때문에 관료로 발탁된 학자에게 ‘드디어 경륜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 것’을 축하해주면서도 동료들은 정부의 ‘얼굴마담‘이나 해주다가 ‘참신성’이라는 약발이 떨어지면 하릴없이 내침 당할 것을 안타까워하곤 했다.
그동안 장관과 총리로 발탁된 학자들이 ‘때’가 묻지 않고 참신하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정부의 책임 있는 일을 수행할 만큼 행정능력을 충분히 검증받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국정수행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임명하였으니 그야말로 우리 나라에는 오랫동안 ‘깜짝 놀랄 인사’가 관행화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교수나 대학총장이 장관이나 총리에 임명되었을 때 ‘깜짝 인사’라는 말이 사용된 예를 알지 못한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이지만 행정경험이 없는 것이 약점”이라는 정도의 온건한 평이 나왔을 뿐이다. 그 이유를 대부분의 학자들이 남성이었다는 사실 외에 찾을 수 없다.
21세기는 여성의 세기 운운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을 ‘짱(長)으로 모시는’ 데에 거부반응이 크다. 여성장관을 한 두 명 임명하는 것까지는 구색용으로 보아줄 수 있지만 여성총리라면 놀란 가슴을 진정할 길이 없다. 여성총리의 지명을 우선 반기는 듯 하지만 어색한 반김이다. 그리고 그가 물러 날 때는 더 이상 ‘깜짝 인사가 없어야’ 함을 강조한다.
지난 7월 22일부터 26일 사이에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에서 공식 개회사를 한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여성부통령을 임명했는데 이는 “남성지배에 대한 의도적인 심리적 공격(a deliberate psychological assault on male domination)”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가 사용한 ‘assault’란 말은 갑작스런 공격이라는 말이니 여성의 부통령직 임명에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된 우간다 남성들이 깜짝 놀라 경기할 것을 예상했다는 뜻이다.
나는 도덕성, 신뢰성 등으로 낙마한 장상 씨의 일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그만한 흠이 없는 유능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식으로 변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나 여성의 총리직 임명을 ‘깜짝 인사’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아울러 ‘행정경험과 직무수행 능력의 부족’이라는 이유로 대학을 비롯한 각종 조직 내에서 여성의 주요 보직 발탁에 ‘驚氣’하는 풍토도 사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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