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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만난 괴짜 한의사의 발랄한 상상력
“허준 선생의 의학·애민사상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과학과 만난 괴짜 한의사의 발랄한 상상력
“허준 선생의 의학·애민사상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10.1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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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源流를 지키는 사람들_ 14. 동의보감 탕액 DB화 앞장선 양승엽 원장

 

『동의보감』은 정말 소중한 우리의 의학서다. 그 속에는 16세기까지 조선의 모든 문화, 동양의학과 철학이 담겨있다. 또 사람의 정신과 육체가 天地間의 運氣에 따라 움직인다는 천지운기의 법칙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생활과 과학과 문화의 집합총체다.
우리나라 사람들, 보약 좋아한다. 좀 보태 말해 몸에 좋다하면 양잿물이라도 마실 정도로 좋아한다는데, 알려진 보약 가운데 가장 흔하게 와 닿는 게 있다. ‘十全大補湯’이다. 이 건 드링크류로도 나와 음료처럼 간단히 약국에서도 사 꿀꺽꿀꺽 마셔댄다. 사람들은 이름 그대로 몸에 좋은 우리 전통의 보약처럼 느껴지니까 사서 마시지만, 정작 그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이 십전대보탕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어떤 종편 TV에서 십전대보탕에 관한 방송을 하면서 원래 보약의 의미와 처방을 토대로 재현한 것이다. 사람들은 놀랐다. 센세이션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반응은 컸다. 십전대보탕 재현은 우리의 전통 의학서인 『동의보감』 원방을 바탕으로 했다. 그 책에 적혀있는 그대로 재현을 한 십전대보탕은 우리가 흔히 알고 마시는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것이었다.
이 십전대보탕 재현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이 양승엽 씨(52)다.

▲ 동의보감 원방대로 재현해 만든 십전대보탕.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양 원장으로 호칭해야겠다. 그는 십전대보탕을 동의보감 원방을 바탕으로 재현했으나, 그것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이 운위되는 걸 별로 탐탁치않게 여긴다. 말하자면 손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만 본다는 의미로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동의보감』이다. 그동안 우리가 도외시해왔던 동의보감의 뜻과 내용, 우수성에 대한 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보다 더 큰 뜻이 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목숨을 건 ‘외톨이’ 한의사
“『동의보감』 4천 가지 처방 중 하나 재현한 게 십전대보탕입니다. 대한민국이 안타까운 게 큰 그릇은 안 보고 그 안에 담긴 한 가지 만든 이게 뉴스가 되니 참 황당합니다.”

결국 그는 십전대보탕 얘기를 덧붙인다. 양 원장은 십전대보탕을 재현하면서 철저히 『동의보감』의 원방에 따랐다. 소요되는 12가지 약재를 한의학적인 정제과정인 ‘수치법제’를 거쳐 사용했다. 예컨대 숙지황의 경우 9번 찌고, 9번 말리는 과정을 거쳤으며, 대추도 씨를 바르고 대추 살을 잘라 사용했다. 계피도 껍질을 깎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재현한 십전대보탕에 대한 성분 분석이 아직 진행 중이지만 숙지황에서 새로운 물질이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와 함께 십전대보탕에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약성 3가지도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다.

양 원장은 “그렇게 만들어서 달여져 그릇에 담겨진 십전대보탕은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몸
이 건강해지는 느낌들이라고들 난리입니다. 『동의보감』도 동의보감이지만 방송의 힘이 크기는 큰 것 같습니다”라면서 웃는다.

▲ 9번 찌고 9번 말린 수치법제 과정을 거친 숙지황.

양 원장은 이번 십전대보탕 재현을 계기로 꽤나 유명(?)해 졌다. 그러나 그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따라 다니는 ‘괴짜 한의사’ ‘외톨이 한의사’라는 타이틀이 이를 대변한다. 왜 괴짜이고 외톨이 인가.
“『동의보감』에 목숨을 걸었고 그 길을 따라 한의사 생활을 해왔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요. 『동의보감』이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 책 하나를 제대로 잡아놓은 한의사 한 명이 없습니다. 한의사로서 참 부끄러운 얘기 아닙니까. 나는 한의사로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동의보감』으로 국민들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는데 목숨을 걸고 살아왔습니다.”

양 원장이 『동의보감』을 목숨처럼 중시한 계기가 있다. 지난 1993년 이른바 한약파동이 그것이다. 한의원을 개업한지 얼마 안 됐던 그 때, 한약파동은 그에게 큰 충격을 던져준다. 한약파동의 결과로 우리나라의 신약이나 한약의 관리는 일본의 약물학을 따른 ‘대한약전’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더구나 2010년부터는 한의학적 병명이 삭제되면서 서양의학식 병명으로 의료보험 청구를 해야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한약파동을 겪으면서도 무사안일로 일관했던 한의사협회나 일부 한의대 교수가 한의학에 대한 학문적 근거나 자료를 뚜렷이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동의보감』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한의학은 ‘대한약전’의 구속을 받고 있는 상황 아닌가요.”

이 게 계기가 돼 양 원장은 자신만이라도 『동의보감』을 철저히 파고들자는 각오를 다진다. 그는 몇 달 동안 골방에 들어박혀 『동의보감』을 파고든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노력이었다. 『동의보감』의 뜻과 정신, 그리고 책에 적힌 대로 자연원리에 맞게 약초를 구하고 탕을 쓰는 법을 재해석한다.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은 무엇이고 그의 동의보감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정말 소중한 우리의 한의학서입니다. 그 속에는 16세기까지의 모든 문화, 동양의약,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또 사람의 정신과 육체가 천지간의 운기에 따라 움직인다는 천지운기의 법칙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생활과 과학과 문화의 집합총체로 봅니다." 양 원장은 이와 관련해 『동의보감』에 있는 서문과 집례를 예로 든다. “서문에는 『동의보감』을 편찬한 배경과 백성들 건강에 대한 배려를 담고 있는데, 『동의보감』은 궁극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의술서를 총괄했고 △많은 말들을 절충해 근본을 찾았으며 또 △질병의 연원(원인)을 깊게 탐구해 강령(기준)을 세우고 조목을 제시했고 △그 내용이 상세하나 번잡하지 않고 △의학을 요약했으나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 없다는 의학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허준 선생이 쓴 ‘집례’에는 양생을 중시한 그의 의학사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컨대 치료의학적인 면보다 예방의학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는 게 그 것이지요. 약 조제에 있어 약의 기준을 한 첩으로 삼은 것은 중국에 의존했던 방식을 깬 것입니다. 이와 함께 鄕藥을 애용하여 향명, 산지, 채취시월, 음양건정법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각 문의 끝에 단방요법을 붙이고 있습니다. 허준 선생은 중국과 조선 등 동북아 의학권을 중국의 북의. 남의와 자신, 즉 조선의 동의로 구분하고 있다. 조선의학의 자부심을 알리려는 것이었지요. 허준 선생은 ‘집례’의 끝부분에 ‘환자에게 생긴 병의 예후가 좋은가 나쁜가, 병의 상태가 경한가 중한가를 살펴보는 것이 마치 밝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환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으니…’라며 『동의보감』의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사람의 병을 다스리는 약물을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본초’라 하지 않고 병을 소탕하고 씻어 낸다는 뜻으로 ‘탕액’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또한 중국 의학서처럼 혼잡하고 번거로운 약재 대신 병을 잘 다스리고 구하기 쉬운 1400여 가지로 압축 정리한 게 『동의보감』의 돋보이는 점이라고 양 원장은 설명한다.

“오늘날 『동의보감』이 한의학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중국의 중의들조차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의학서적 중의 하나가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에 대한 철저한 공부를 바탕으로 양 원장이 이뤄낸 결실이 있다. 골방에 틀어박혀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동의보감』의 이론을 알기 쉽게 재정리한 책 ‘물고기 동의보감’이 그 것으로 2011년 2월의 일이다.

“한의사가 동의보감의 진정한 가치를 일반 분들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의무로 책을 낼 생각을 했지요. 개인적으로도 제대로 된 『동의보감』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사분오열된 우리의 한의학을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는데, 藥劑에 관해 한의사들 스스로 정리해 놓은 우리말로 제대로 된 책이 없었습니다.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썼지요.”

그가 펴낸 『물고기 동의보감』은 총 25권의 원전 『동의보감』 가운데 탕액편 3권과 한의학의 원리를 밝힌 ‘天地運氣門’을 현대의학에 맞게 우리말로 재해석한 뒤 원문(한문)을 달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가는 물론 한의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양 원장은 이 책을 통해 『동의보감』에 기록된 약제를 채취시기와 건조방법, 품질과 효능이 높은 약재의 선별법도 원전에 따라 꼼꼼히 정리해 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제의 가짓수는 1천400종류. 그러나 6개월에 걸쳐 책을 쓰면서 그는 물(水) 부분과 나물(菜)부분에 한 가지씩, 그리고 나무(木)부분에 두 가지 약제가 빠진 것을 밝혀내고 채워 넣었다. 그래서 가짓수는 정확히 1천403가지가 됐다. 이와 관련해 돋보이는 것은 1천403종 이 약제들을 한 가지씩 코드번호를 매겨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그 이유를 양 원장은 십전대보탕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동의보감』에 수록된 4천개의 기본처방 중의 하나가 십전대보탕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동의보감』을 오용한 결과 수 십 가지의 십전대보탕이 생겨나면서 약의 효능도 떨어지고 결국 싸구려 처방으로 전락한 게 아닙니까. 객관화된 데이터베이스가 없으면 한의학계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의 탕액편 목차표 총 번호에서 0001번은 탕액 중 제일 먼저 기록돼 있는 약제란 뜻이고, 그 옆에 쓰여진 HYC는 허준을 계승한 양승엽이 번호를 달아 정리했다는 이니셜의 의미로 붙인 용어이다. 송이버섯을 예로 들면 코드번호가 ‘0877-(HYC)채부(약으로 쓰이는 채소)-114 송이-버섯 7’이다. 이는 1천403가지 약제 중 877번째로 기록돼있고, 채부 123가지 중 114번째로 기록돼 있다는 의미이며 7은 버섯류 탕액 가운데 7번째라는 것이다.

양 원장은 약제의 코드화와 관련해 “한의학의 세계화가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에서 약재의 DB화는 4천 여 종류의 동의보감 기본 처방의 골격을 완성하는데 중요 열쇠로 쓰일 것이며 코드화된 약제는 유통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바람을 갖고 있다”며 자신의 작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의보감』 탕액 1천403개 藥劑 DB로 완성

▲ 『동의보감』 원본과, 이를 토대로 양 원장이 펴낸 『물고기 동의보감』.
『동의보감』 약제의 코드 검색은 온라인에서도 가능하게 했다. 그의 한의원 홈페이지(www.injec.co.kr)에 접속해 ‘채부-’로 검색하면 123가지를 모두 찾을 수 있고, 버섯류에 관한 약이지만 탕액명을 모른다면 ‘-버섯’만 입력해도 관련 약제가 모두 검색된다.
이와 함께 그의 작업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한의학의 기본원리’에 대한 접근이다. 그가 엮어 낸 『물고기 동의보감』에서 『동의보감』의 ‘천지운기문’을 재해석한 것은 한의학의 기본원리를 밝힌 것이라는 게 양 원장의 설명이다.

“『동의보감』은 400여 년 전 당시 지구의 자전과 태양둘레를 공전하는 운기현상을 토대로 집필됐습니다. 운기현상은 오늘날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에 해당하는 자연과학인 셈이지요. 의학이 이것을 도외시하면 안 되지요.” 더 구체적인 양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하늘, 땅, 사람의 삼재는 우리 동양사상의 핵심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그것의 절대적 영향을 받아가며 살아간다. 하늘과 땅의 운행질서에 순응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며 질병 역시, 거기에 맞춰 치료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의사는 반드시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치료해야 한다(醫當識天地間運氣)’는 것이다.

양 원장은 이런 차원에서 『동의보감』의 ‘천지운기문’을 중시하고 있다. 그는 거의 완벽하게 『동의보감』의 ‘천지운기문’을 이해해 약재의 수치법제나 진료에 적용하고 있다. ‘천지운기문’을 이해하면 일기나 기후, 재해 등 천기의 움직임이 파악되며 그에 따라 생겨나는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원장은 지금도 『동의보감』을 파고들고 있다. 그는 『동의보감』의 4천개 처방부분과 單方 2천500개, 탕액 부분 1천500개 도합 8천개의 자료를 DB화할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보기에 지난한 작업 같은데, 의외로 그는 자신 있어 한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려면 문렬 정리와 코드도 붙여야 하고, 또 의약적 해석도 해야 하지요.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 4~5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동의보감』 탕액 1천403개를 정리해보고 꼼꼼히 생각하니까 하늘이 도왔는지 묶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3천개 묶었습니다. 혼자서 하는데 나머지는 하드웨어적인 것만 남았어요. 3년 안에 끝낼 계획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다시 십전대보탕 얘기를 꺼낸다. 재현 후 재미있기도 하지만 복잡한 일도 생겨나고 있다는 얘기다. 재현을 양 원장 혼자 단독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친구이자 동의대학에서 한의학을 가르치는 신순식 교수, 그리고 산청한방약초연구소와의 협업으로 이뤄낸 것인데, 그 결과는 컸다. 우선 십전대보탕을 『동의보감』 원전대로 재현하면서 얻어낸 신물질이 그것인데, 양 원장과 신 교수, 산청한방약초연구소는 이를 공개해 학계의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분과 약효 등을 바탕으로 식약청에 한의학과 관련한 법 개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재현 공정과정을 토대로 기술관련 특허도 냈는데, 신물질을 포함해 10개 쯤 된다.

양 원장은 『동의보감』을 원전으로 한 이 같은 재현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시료를 의과대학이든 약학대학이든 한의과대학이든 원하는 곳이 있으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잘못 알려진 동의보감 한의학의 참뜻을 널리 알리겠다고 한다. 조건은 단 하나. 시료를 사용할 경우 그것이 『동의보감』에서 나왔다는 것만 밝혀달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양 원장으로 하여금 한의학의 참뜻을 깨닫게 하고 한의학기술의 이해와 지평을 넓혀준 존재이다. 『동의보감』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꿈이 있습니다. 허준 선생의 의학사상과 기술, 그리고 그의 철학과 애민사상을 널리 알리고 가르치는 동의보감 대학을 만들고 싶습니다.

대구=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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