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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재판관·정치가들이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변호사·재판관·정치가들이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10.15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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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시적 정의―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 박용준 옮김 | 궁리 | 284쪽 | 15,000원



책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매우 정밀하고 매력적인 텍스트 읽기로 가득 차 있다. 저자인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라는 수식이 붙어 있다. 아마도 여기에 빼어난 문학비평가라는 이름표도 붙여줘야 할 것 같다. 그가 서구의 문학 텍스트들 특히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 E.M.포스터의 『모리스』, 월트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 등을 분석하며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 추론의 상관관계를 깊이 논했기 때문이다. 1995년에 쓴 책이지만 한국에는 이제야 번역됐으니 한참 늦은 감이 있다. 2009년에 나온 마이클 셸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0년 국내에 번역된 것과 비교해보면 말이다.'


사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은 고전적인 물음인 동시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물음표’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 이어져왔으니 수천 년 된 물음인 셈이다. 누스바움은 자칫 공허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이 질문을 ‘컨텍스트’화 함으로써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을 제시했다. 시카고대 법학과 학생들과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의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미연방대법원 판례들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누스바움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공적 논쟁’의 영역에서 소화했다.

로스쿨 학생들과 함께 읽은 소설들
물론 로스쿨 학생들을 위한 ‘법과 문학’ 강의(1994년 봄)가 이 책의 배경이 됐다. 저자는 장차 변호사나 재판관, 정치가가 될 학생들과 함께 문학 작품들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동정과 자비, 공적 판단에서 감정의 역할, 그리고 나와 다른 타자인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것 등에 대해 토론했다. '

누스바움이 이런 판단과 행동에 이른 데는 이유가 있다.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간 삶에 대한 복합적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점점 더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하는 그는 이러한 변화들에 의문을 품고, 이를 자신의 직업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심사숙고해 나갔다. 찰스 디킨슨이 말한 ‘비슷한 남녀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방식과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았는지 혹은 보다 다르게 살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책의 목적도 명확하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의 목적은 휘트먼이 바라보았던 미국이 상실했다고 여겨지는 공적 담론의 구성 요소들을 설명하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몇몇 역할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의 다른 한 기둥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과 함께 유엔대학 부설 세계개발경제연구소에서 한 국가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방법에 관해 공동연구를 진행한 데 있다. 센과 누스바움은 1인당 국민총생산량(GNP)와 같은 소득 수준에 초점을 둔 주류 경제학자의 모델에 반대해 ‘건강, 교육, 정치적 권리, 민족·인종·젠더의 관계’ 등을 포괄하는 다층적 측정법으로 삶의 짊을 평가하는 새로운 모델을 창시했으며, 이러한 접근법은 훗날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의 토대가 됐다.


누스바움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은 주류 개발 경제학이나 공공영역에서 규범적인 것으로 옹호돼 온 ‘경제적 공리주의’이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효율성이 제1의 가치이자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하는, 차가운 계산의 세계에서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시민이 생겨나기 어렵다. 이를테면 경제성장률 4%, 1인당 국민총생산(GNP) 2만 달러와 같은 숫자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그런 대로 살 만해 보인다. 총합이나 평균수치가 사회의 분배 문제나 불평등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바가 없어도 그렇다. 문제는 숫자 이전의 생생한 현실에 대해 둔감해진다는 것. 그러나 눈앞에 구체적인 이름과 이야기를 가진 인물이 있다면,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고통에 쉽게 반응을 보이게 된다. 누스바움이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믿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학적 상상력은 공적 합리성의 한 부분이지만, 그 전체는 아니다. 감정을 이입하는 상상력이 원칙을 따르는 도덕적 추론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극도로 위험한 것이며, 나 역시 그러한 제안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문학적 상상력을 옹호하는 정확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윤리적 태도의 필수적인 요소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사 누스바움 (Martha C. Nussbaum, 1947~)


저자에 따르면, 문학은 나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우리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문학은 그의 상황과 내면세계를 생생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한다. 독자들은 텍스트 속의 인물과 감정적 교감을 쌓아가면서 그가 놓인 상황에 감정이입 한다. 기쁨과 고통, 슬픔과 좌절, 연민과 분노, 사랑과 증오 등을 공감하게 된다. 소설을 통해 ‘비통하고 억울한 자들, 배제된 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세상의 불의와 참상을 목격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평등보다는 평등에, 귀족적 이상보다는 민주적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여기서 저자는 단순히 문학의 힘을 옹호하기보다는 문학이 환기하고 보여주는 ‘공감’ 즉, 감정의 힘에 주목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감정은 오랫동안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됐기에 공적 추론 과정에서 배제돼 온 것이 사실이다. 누스바움은 고전학자답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로마의 스토아 학파, 스피노자, 칸트, 스미스, 벤담 등 역사 속의 다양한 철학자, 공리주의자, 경제학자의 사상을 넘나들며 공적 판단에서의 감정의 역할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저자도 고백했듯,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 책을 기획하는 데 많은 영감을 줬다는 것은 책 곳곳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 혹은 ‘합리적 감정’의 옹호
“나는 감정은 때로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려운 시절』과 같은 문학 작품을 통해 형성된 공감, 두려움 등의 감정은 합리적 감정(rational emotion)이 되기 위한 훌륭한 후보자들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후보자들’이 많아서 어느 것을 신뢰해야 할지 분별이 안 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분별 있는 관찰자’ 개념에 주목,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스미스가 주장했듯) 그러한 가상적인 관찰자의 입장을 정립할 수 있게 해준다”는 논지를 제시했다. 누스바움은 애덤 스미스가 특정한 감정의 방향 제시를 공적 합리성의 핵심적인 요소로 믿었다는 것에 착안, 윤리학자였던 애덤 스미스가 이상적인 합리성을 두고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작품에 녹아든 다양한 인간 감정과 관계망을 공적 합리성의 영역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는 논리는 이렇게 해서 성립했다.


어떤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왜 다른 문학 장르가 아닌 소설을 강조했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다른 예술 장르가 아니라 왜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저자의 이런 대답을 들려줘야 겠다. “소설은 살아 있는 형태를 지니며, 사실상 여전히 그 중심은 도덕적으로 심오하면서, 우리 문화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허구 형식이라는 것이다. (……) 현대의 공적인 삶에 대해,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이 인간의 감정과 염원을 형성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매우 생산적이면서 우리의 숙고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이 묘사돼 있는―장르에 주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책의 제목이 된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 대해 저자는 명쾌한 개념 풀이를 제시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시적 정의’는 “문학 안에서 사용되는 장치 중의 하나로, 선행은 보상을 받고 죄는 처벌받는다”로 요약된다. 저자가 책의 후반부에 휘트먼의 시를 가져오면서 ‘문학적 심판’, ‘시적 재판관’,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본다면, 저자 역시 이러한 일반적인 ‘시적 정의’를 좀 더 구체화한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

 

누스바움은 작품을 어떻게 읽었나

『어려운 시절』(찰스 디킨스)

이 소설은 과학적 정치경제학과 정치적 상상력에 대한 규범적 시각을 담고 있다. 소설은 분명 그러한 규범을 신랄한 풍자의 대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통찰력을 가지고 풍자의 대상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공공정책 결정, 사회학 및 정치과학, 복지 및 개발 경제학 등에서 규범적인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의 보다 깊은 의미를 보여준다.


『모리스』(E.M.포스터)

소설의 감정적 구조는 독자가 주인공 모리스를 평균적인 인물로 여기는 편안함에 의존하다가, 해가 갈수록 사회가 그의 욕망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어떻게 그를 극도로 비정상적인 존재로 다루며 또한 불평등하게 대하는지에 대한 독자의 판단에 근거한다.


「나 자신의 노래」(휘트먼)

휘트먼은 특히 시인의 외침이 성적 배제와 대중의 비난에 의해 침묵해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로부터 장막을 걷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갖는 다양한 자유권과 평등권의 중요성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이러한 권리들을 다루는 중요한 길을 제시한다. 또한 휘트먼은 시적 상상력의 빛이 이 모든 소외된 자들을 위한 민주적 평등의 결정적인 동인이라고 주장하는데, 오직 그러한 상상력만이 그들 삶의 사실들을 바로잡아줄 것이며, 그들에 대한 불평등한 대우 속에서 개인의 존엄에 대한 훼손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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