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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설계자’ 鄭道傳의 사상, 불운한 시대를 살다
‘조선의 설계자’ 鄭道傳의 사상, 불운한 시대를 살다
  •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3.10.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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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교수신문 공동기획 ‘고전의 숲’ 9. 『국역 삼봉집』

 

▲ 『국역 삼봉집』정도전 지음, 김도련·김동주 등 6인 옮김, 2책(색인포함), 민족문화추진회, 1997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조시대의 궁궐은 왕권의 상징이자 위엄이다. 때문에 궁궐의 건설은 많은 재정이 드는 大役事임에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연속된 세도정치 속에 왕권이 유명무실했던 조선조 말, 고종이 등극한 이후 어린 고종을 대신해 攝政에 나섰던 흥선대원군이 수많은 반대와 재정적 어려움을 무릅쓰면서도 강력히 추진했던 景福宮의 복원도 바로 여기서부터 왕권을 세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태조의 조선 건국과 함께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의 전란 속에 불탔던 경복궁은 이렇게 다시 건립돼 현재까지 서울의 한복판에 과거 왕조의 최대 상징물로 남아있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왕권의 상징으로 건립된 궁궐인 경복궁. 그 이름은 왜 경복궁이었을까. 그리고 경복궁 내의 왕의 집무공간이었던 勤政殿과 침소였던 康寧殿은 또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을 우리는 조선 건국의 최대 공신이었던 鄭道傳(1342~1398)의 문집인 『三峯集』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왕조의 궁궐이 완성된 후 태조는 정도전에게 궁궐의 이름과 전각들의 이름을 짓기를 명했고, 정도전은 조선의 무궁함을 기원하며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 올렸다.


『시경』「旣醉」의 “군자께서 만년 장수하시고 큰 복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시구를 인용해 만세토록 영원한 왕업을 누리라는 뜻을 담아 궁궐을 ‘景福宮’이라 명명했으며(권4 「경복궁」), 순임금·우임금·문왕의 부지런함과 선현들의 경계의 말을 들어 설명하면서 정치에 부지런히 임하라는 뜻을 담아 정무 공간을 ‘勤政殿’이라 명명했고(권4 「근정전과 근정문」), 『서경』「洪範」에서 제시했던 五福(壽·富·康寧·攸好德 ·考終命) 중 가장 중심의 ‘康寧’이 전체를 포괄한다고 설명한 뒤에 “안일을 경계하고 경외를 가져서 大中至正의 무궁한 복을 누리소서. 그러면 성스러운 자손이 계승하고 계승해서 천만 대를 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침소를 ‘康寧殿’이라 지었다(권4 「강녕전」).

‘조선왕조의 지향성’ 상징화한 사상가
그의 문집에는 이 밖에도 경복궁의 또 다른 전각인 延生殿, 慶成殿, 思政殿, 隆文樓, 隆武樓 등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돼 있다(권4). 조선의 상징인 궁궐과 그 안의 전각에 대해 하나하나의 의미를 담아냄으로써 새로운 왕조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였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징의 의미만이 아니라 실제 제도적인 질서도 확립해 나갔다. 조선시대 법치의 완성을 우리는 흔히 성종 때 완성된 『經國大典』에서 찾고 있지만, 이 『경국대전』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정도전 저술의 『朝鮮經國典』(권13~14)이므로, 조선시대 법치의 기본을 세운 사람은 정도전이라 하겠다.


『조선경국전은』은 동양의 예의 질서의 기본인 『周禮』의 六典 체제를 따르면서도 현실에 맞게 조정해 治典, 賦典, 禮典, 政典, 憲典, 工典으로 구성하여 전반적인 관제를 서술했다. 그리고 『조선경국전』의 보유편 성격을 지닌 『經濟文鑑』(권9~10)과 『經濟文鑑別集』(권11~12)도 찬술해 역대 왕조의 변천과 득실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사상적인 면에서도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굳건히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이론을 정립하며 「心氣理篇」,「心問」,「天答」(권6)을 지었으며, 특히 불교를 배격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아 「佛氏雜辨」(권5)을 짓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인과, 심성, 자비, 지옥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또 그는 文德曲, 夢金尺, 靖東方曲(권2) 등의 樂章을 지어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 확립에도 크게 노력했다.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를 꿈꾼 미완의 혁명가
태조를 도와 조선의 건국에 누구보다 앞장섰으며, 건국과 동시에 조선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사상과 이론을 정립하는 등 조선의 내용을 채웠나갔기에 ‘조선의 설계자’라는 수식어를 얻은 정도전. 그가 설계했던 조선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던 것일까. “治典은 塚 宰가 관장하는 것이다. 司徒 이하가 모두 총재의 소속이니, 敎典 이하 또한 총재의 직책인 것이다. 총재에 그 훌륭한 사람을 얻으면 六典이 잘 거행되고 모든 직책이 잘 수행된다. 그러므로 ‘人主의 직책은 한 사람의 재상을 論定하는 데 있다’ 했으니, 바로 총재를 두고 한 말이다. 총재라는 것은 위로는 군부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큰 것이다.

또 인주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相’이라 하니, 즉 輔相한다는 뜻이다. 백관은 제각기 직책이 다르고 만민은 제각기 직업이 다르니, 재상은 공평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기 그 적의함을 잃지 않도록 하고, 고르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기 그 처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宰’라 하니, 즉 宰制한다는 뜻이다.”


조선을 제도적으로 설계한 『조선경국전』의 六典 중 가장 먼저 기술된 「治典」의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의 일부이다. 통치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핵심으로 ‘총재’라고도 불리는 宰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리는 일은 재상의 임무이며, 왕의 임무는 그저 훌륭한 재상을 잘 가려 등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를 설계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이 글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제문감』의 「재상의 직」에서는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는 백성을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하고 무마하는 것이니, 국가의 작록과 포상과 형벌이 이에 관련이 있고, 천하의 정치와 덕화, 가르침과 명령이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임금의 일로 여기고 있던 것들을 재상의 직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 속에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에서 많은 부분을 재상의 역할과 직무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했다.


그러나 왕조사회에서 왕권의 강화와 신권의 강화는 분명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왕권의 강화는 신권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신권의 강화는 마찬가지로 왕권의 약화를 의미한다. 태조를 도와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건국하고 새로운 세상을 설계했지만, 그의 설계 속에서 그는 결코 강력한 왕과 동시대를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 때문에 그는 강력한 왕권 확립이 목표였던 태종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선의 설계자’였지만 결국 그의 설계대로 나라를 만들지는 못했기에 ‘미완의 혁명가’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그에게 붙게 된 이유다.


그의 문집은 반 이상을 『조선경국전』 , 『경제문감』등 제도와 경세 관련한 저술이 차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두 권에 걸쳐 詩가 포함돼 있기에 혁명가의 문학적 감각과 감수성도 함께 엿볼 수 있다. 번역은 그 중요성에 걸맞게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꽤 이른 시기인 1977년에 완역했는데, 신호열, 김도련, 조준하, 홍찬유, 윤남한, 김동주 등 저명한 한학자 및 학자의 손에서 진행됐으며, 권두에 한영우 선생의 자세한 해제가 붙어있어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번역원에서는 최근 또 하나의 『삼봉집』 번역본을 간행했는데, 심경호 고려대 교수가 전체 내용 중 주요 저술 일부를 발췌해 현대적 감각에 맞게 새롭게 번역해 독자의 편의를 증진시켰으며 작품별로 배경 설명을 부기하여 해당 저술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필자는 성균관대 한문학과 석사와 같은 대학 한문고전번역 협동과정 석박사 통합과정을 마쳤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문집번역실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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