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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영혼을 잃은 대학
원로칼럼_ 영혼을 잃은 대학
  • 이필상 고려대 명예교수·경영학
  • 승인 2013.10.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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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고려대 명예교수·경영학

서울의 한 명문대학이 교수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는 교수들의 연구실을 회수할 방침이다. 학과 폐과, 업적기준 강화, 연구년 축소 등 대학개혁의 일환으로 내놓은 조치다. 해당 교수들에게 사실상 학교를 그만두라는 뜻이다. 이러한 정책으로 이 대학은 국제평가에서 순위가 오르는 등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교수들의 반발이 크다. 학교 발전에 필요한 의견수렴이 없어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형적 압박에 의한 대학운영은 일시적으로 실적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학문의 자유와 창의적 연구를 저해해 대학 발전에 한계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연구가 논문 숫자 늘리기 등 양적 실적에 치중해 질적인 학문 발전이 어렵고 교수들 사이에 누군가 퇴출돼야 하는 밀어내기 경쟁을 강요해 갈등과 분열을 유발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단기실적 위주의 기업경영방식이 호응을 받으며 다수의 대학들이 이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대학마다 교수들에게 채찍을 가하고 낙오자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나라 대학들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의 세계적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인가?

대학을 이렇게 만든 것은 교수들의 자업자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 교수들은 정치, 자본, 언론 등의 권력에 스스로 포로가 되는 우를 범했다. 따라서 대학이 영혼을 잃고 병이 들었다. 우선 교수들은 정치적으로 곡학아세의 길을 찾는 경우가 흔했다. 그리하여 많은 교수들이 고위공직을 차지했다. 그러나 정치적 용도가 끝나면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교수들은 독점자본을 옹호하고 그 대가로 사외이사를 하거나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교수들의 전문지식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가져오고 사회양극화를 초래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소신과 관계없이 일부 편향된 언론의 이념이나 주장에 동조해 지식부역을 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교수들이 사회정의에 등을 지고 편 가르기에 앞장선 셈이다. 더불어 아무 것도 제대로 안하고 대학을 정치판으로 만들고 분란만 일으키는 교수도 많았다. 이와 같은 교수들의 일탈로 인해 대학의 연구능력은 뒷걸음질치고 사회적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더욱이 교육은 낙후를 면치 못했다. 무의미한 지식 주입만 반복하며 입시지옥을 빠져나온 학생들을 다시 학점지옥에 밀어넣었다. 그 결과 대학의 권위가 사라지고 제 기능을 못하자 자본논리가 대학을 지배하면서 교수들이 연구실조차 지키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들은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권력이나 돈에 흔들리지 않고 헛된 명예욕에 소신을 버리는 거짓모습에서 벗어나 학문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는 참모습을 보여야 한다. 연구실은 밤새 불을 켜 논문이 끊임없이 나오는 학문 창조의 공간으로 만들고, 강의실은 새로운 지식을 놓고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감동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대학이 본연의 위상과 권위를 되찾아 부당한 비판과 자본의 횡포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가 재정난 해소다. 우리 사회는 대학입시에는 막대한 투자를 해도 대학에는 투자를 안 한다. 자연히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크다. 특히 기업들은 대학교육의 최대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대학보다 더 큰 연수원을 지을망정 자금 지원은 안 한다. 여기에 정부는 예산을 통제수단으로 해 대학행정을 좌지우지 한다. 정부와 기업들의 조건 없는 대학투자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더욱이 대학 발전을 위한 사회의 기부문화 확산이 절실하다. 대학과 사회는 한 몸으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필상 고려대 명예교수·경영학/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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