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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과 법학의 위기
법학전문대학원과 법학의 위기
  • 정병호 서울시립대·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13.10.0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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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국민적 기대를 안고 법학전문대학원이 출범한 지 벌써 5년째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지난해 1천451명, 올해 1천500명의 변호사를 배출했다. 겉으로는 순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은 제대로 착근할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은‘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이에 부응하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현행 변호사시험제도다.

먼저 합격률을 입학정원 대비 75%로 제한한 것이 큰 문제다. 응시자 대비 합격률이 지난해에는 87.1%, 올해는 73.3%였는데, 2017년에는 무려 37.1%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실패한 일본을 따라가는 모양새다. 이러니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원 입학 전의 다양한 경험을 살려 전문지식을 연마할 수 있는 과목보다는 변호사시험 합격에 도움이 되는 과목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변호사협회에서는 입학정원 대비 합격률을 75%로 선심 쓰는 대신 법학전문대학원 성적은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도록 강요했다. 상대평가 자체가 비교육적인 측면이 강한데다 합격, 불합격만 결정하는 변호사시험으로 인해 그 부작용은 증폭된다.

자연히 학생들은 취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점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외국어 강좌를 선호한다. D학점을 피하기 위해 수강변경과 취소를 통해 소규모 강좌를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이런 부작용 때문에 급기야 성적평가의 독립을 선언한 법학전문대학원도 생겼다.

다음으로 변호사시험의 출제 방식과 내용도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의 취지에 반한다. 주관식과 별도로 객관식 문제를 부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관식조차도 실무능력을 측정한다는 이유로 주로 판례 위주로 출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법리의 정확한 이해보다는 판례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강요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교수에게 판례 위주로 가르칠 것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시험제도가‘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형성을 저해함으로써 심각한‘司法不正義’를 야기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은 ‘하이’스쿨이 아니라 ‘로’스쿨, 법학전문대 ‘학원’이니만큼 사설학원처럼 강의하게 된다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생겼다. 이러니 敎學相長은 언감생심이다. 법학의 사명은 법원에 의한 법해석을 학문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정의 실현에 이바지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현행 변호사시험 체제 아래서 법학이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은 원시적 불능에 가깝다.

또한 법학전문대학원은 학문후속세대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학서적 전문출판사도 경영난에 빠졌다고 한다. 법학의 학문공동체가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변호사협회에서는 사법시험 존치 또는 예비시험 도입을 강력 주장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기류가 있어 걱정스럽다. 기존의 사법시험제도가‘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반성에 기초해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했는데, 행여 고시낭인을 양산시킨 과거로 회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변호사협회 등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 체제가 사회적 배려계층에게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의 엄격한 통제에 있다. 현재 법학전문대학원 운영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변호사 수를 최대한 억제해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데서 생긴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의 표류, 법학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합격자 수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지금의 사법정책이 변해야 한다. 또한 지나치게 과목 수가 많고 실무편향적인 현행 변호사시험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법학전문대학원
독일 괴팅겐대에서 박사를 했다. 국교련 정책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농수산식품의약법학회장, 서울시립대 교수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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