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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의 외연 넓힐까? … 본질 놓칠 우려감도
종교학의 외연 넓힐까? … 본질 놓칠 우려감도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10.07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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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본 종교학』놓고 열린 이색 간담회

한국종교문화연구소(소장 윤승용, 이하 한종연)는 지난달 28일 최근 출간된『문화로 본 종교학』(맬러리 나이 지음, 유기쁨 번역, 논형 刊)에 대한 책 소개와 간담회를 열었다. 이 책을 번역한 유기쁨 한종연 연구원(한국종교)을 초청해 ‘『문화로 본 종교학』을 번역자가 다시 해부해 본다’라는 취지로 평가회를 가진 것이다. 낙성대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한종연의 간담회는 늦은 5시에 시작됐다. 참가한 인원은 10명 남짓이었지만 ‘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본 ‘종교’이야기로 간담회는 뜨거웠다.

책의 번역자인 유기쁨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윤상민 기자)

세계적 종교학자이자 종교학 저널 <문화와 종교>의 초대 편집자인 맬러리 나이가 쓴 이 책의 원제는『Religion: The Basics』이다. 2008년에 출간됐었고, 유 연구원이 당시 완역했었지만 출판사의 사정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 재판이 발행되며 논형 출판사를 통해 재번역 의뢰를 받은 그는 몇 군데만 손보면 될 거란 생각으로 번역에 착수했다가 지난 여름을 고스란히 번역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새로 첨가된 이론과 사례의 양이 만만치 않았고, 단어, 문장의 배열까지도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어려움도 책 자체가 가진 방대한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 요구에 비해서는 큰 수고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에서 8가지 측면에서 본 종교학을 기술하고 있다(△종교-몇 가지 기본 사항들 △문화 △권력 △젠더 △믿음 △의례 △텍스트 △현대종교, 현대문화). 기존 종교학 개론서, 입문서들이 주로 고전적 이론을 말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책은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는 고민들을 비욘세와 모차르트, 해리 포터 등의 현대적 사례를 버무려 새로운 세대의 종교학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로 본 종교학』을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종교, 문화, 권력’이다. 이 책의 가장 특징적인 면을 유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종교를 따로 뚝 떨어져 있는 것으로 분리시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일부로 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흔히 종교하면 뭔가 거룩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인간 세상으로 끌어내린 거다. 그러다보니 종교학의 외연이 확장돼서 종교학자의 연구 영역도 확장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종교학 담론은 세계종교사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는 입장의 윤승용 한종연 소장도 유 연구원의 의견에 동조했다. “종교를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혹은 문화와 더불어서 연구해야 종교가 가진 이전의 도그마틱한 담론을 벗어날 수 있다. 학계에 종교문화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가 조금 됐는데, 삶 속에서의 종교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종교가 세속과 분리돼 모든 것의 진리인 것처럼 얘기하는 맥락 속에서는 불가능했던 종교학의 외연이 확장될 수 있는 유의미한 책이란 진단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최정화 원광대 HK 연구교수는 이렇게 반박했다. “문화로서의 종교학 얘기는 많이 하지만, 종교학적 측면에서 볼 때 위험한 측면도 존재한다. 종교학자는 결국 종교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종교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문화처럼 실재가 없는 개념이 돼버리면 종교학자로서의 답을 낼 수 없다.” 유럽 대학의 종교학과들이 사라지면서 문화학과로 통합됐는데, 인간연구, 문화연구로서의 영역은 확장될 수 있지만, 근대 종교에 대한 담론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윤 소장은 “종교문화라는 말이 종교의 아이덴티티를 상쇄시킬 수 있다. 현재 학문 교류가 학제간 연구로 변화하고는 있지만, 종교학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혜란 한종연 연구원의 주장은 다소 강경했다. 그는 “학제간 연구는 이미 보편화 됐다. 종교와 정치, 종교와 경제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어디 있나. 정체성이나 자기 영역 지키는 부분에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런 서구 학문편제가 계속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라고 말하며 “사회학도 이미 문화사회학으로 넘어갔다. 종교학만 자신의 영역을 고집할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라고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저자의 논지 전개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규태 한양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부)는 ‘젠더’장에서 저자가 빌려온 라캉의 ‘상징계’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종교학 개설서는 젠더를 중립적 입장에서 다루지만 저자는 좀 더 마이너쪽인 페미니즘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박 교수는 저자의 젠더 분석에 대해 “라캉의 상징계는 남성의 영역이다. 상징계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주체성 통합된 자아가 된다는 것은 초보적인 단계의 라캉에 대한 이해인데, 저자는 최소한 라캉의 원저를 읽지 않았거나, 라캉을 인용했던 루스 이리가라이나 그레이스 얀첸의 인용을 재인용한 것 같다. 종교를 상상계에만 국한시켜 연결시키는 것도 층위적으로 문제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종교학의 외연 확장, 저자의 오류 지적 등 여러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간담회에 참여한 교수, 연구원들은 이 책이 종교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교재’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데는 동의했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던 시대에서,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된 오늘,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까.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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