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1:15 (금)
“누구에게나 있지만 외면하는, 내 안의 괴물을 말하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나 있지만 외면하는, 내 안의 괴물을 말하고 싶었어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10.07 11:58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로 10년 공백 깬 장준환 감독

10년만의 복귀다. 2003년 데뷔작「지구를 지켜라」를 통해 한국영화에서 결핍된 SF 장르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장준환 감독(43세)이 복귀작으로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화이」)를 들고 돌아온 것이다. 방귀로 세상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부터 두 편의 영화가‘엎어’지는 그 10년 동안 그는 여배우(문소리)와 결혼도 했고, 막 두 돌을 지난 예쁜 딸도 얻었다. 영문학도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우연히 가입했던 영화동아리(영상촌)를 통해 영화에 빠져든 장 감독. 영화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그의 졸업작품 「2001 이매진」은 클레르몽페랑 영화제에 초청됐다.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했던 그가 선택한 복귀작은 액션 영화다. 그런데「화이」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신화의 원형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전적인 액션영화다. 저주받은 ‘父子관계’를, ‘폭력’이란 방식으로 구현해 낸「화이」의 장준환 감독을 따뜻한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구를 지켜라」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장준환 감독은 ‘소년’의 이미지 그대로다. 하지만 그는 2년 6개월 동안 깊숙이 녹아들었던 「화이」에서 한 동안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사진=윤상민 기자)

평단만큼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 지구를 지켜라」로 대중에게 ‘SF, 외계인=장준환’이란 인식만큼은 확실히 남겼던 장 감독은 정작 스스로는 이런 인식이 불편했다. 반작용이었을까. 「 타짜 2」같은 상업 영화에도 착수했지만, 제작사의 사정으로 접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만난 「화이」의 초고는 그래서 더 각별했다.

그는 「화이」의 각색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고를 보고 참 ‘장르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던 그는 이 소재를 그냥 흥행용으로 쓰기보다는 땅 다지기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왜 석태(김윤석 분)는 이렇게 행동하는지부터 파 들어가며 캐릭터들의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는 설정과 플롯을 중심으로 각색했다. 그런 고민의 흔적들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초고의 스피디하고 세련된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자신의 지점을 점유한다. 그런 연유로 때론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액션 시퀀스에 진정성이 부여된다.

뚜렷한 캐릭터가 액션의 진정성 부여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지만, 장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캐릭터는 두말할 것 없이 석태와 화이다. 화이가 영화의 전면에 나서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지만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은 석태다. 전형적인 악인의 캐릭터와 석태는 어떤 차별성을 가질까. 장 감독은 “일반적인 악인은 외부의 적과 싸우며 이겨내고 무너지는 캐릭터인데, 석태는 자기 안에 있는 괴물, 그런 화두를 갖고 능동적으로 갈등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란 것이 독특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석태는 자신의 괴물을 끌고 와서 화이에게까지 그 이야기를 넘긴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영화에서는 두 개의 괴물이 나온다. 석태의 괴물과 화이의 괴물이다. 석태가 임형택(이경영 분)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괴물화 시키고, 네 명의 아빠들을 만나게 되며 화이를 납치하게 되는 지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프리퀄을 만들 수 있었다며 웃는 장감독은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란 말로 두 괴물을 스크린에 그려낸 방식을 설명한다. “두 괴물이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해서는 석태와 화이는 많이 달라요. 석태의 트라우마로 인한 괴물의 탄생은 영화에서 밀도 있게 보여 집니다. 화이의 괴물은 석태로 인해 탄생되죠. 영화의 프롤로그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인데요. 어린 소년이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손발이 묶인 채 화분 아래 갇혔던 그 몇 시간 동안, 괴물이 탄생한 겁니다. 괴물의 발을 나무 뿌리처럼 묘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장 감독다운 디테일함이다.

화이와 다섯 아버지가 함께 사는 배경인 분재원에도 그의 독특한 설정이 숨겨져 있다. “분재라는 게 정상적인 나무를 기형으로 철사를 묶고 꼬아서 이상하게 만들어놓고는 아름답다고 하는 거죠. 그런 행위나 느낌 자체가 화이를 대하는 석태의 이미지와도 비슷한 거 같아요.” 그는 영화 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인물이 행동하려면 그에 응당한 내면적인 베이스가 필요하단 생각에서다.

극중 화이는 다섯 명의 아버지들로부터 각기 다른 ‘범죄의 기술’을 배운다. 이는 화려하며 세련된 액션 시퀀

스로 구현돼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장 감독은 괴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최소한의 수위에서 ‘폭력’이 영화 안에 보여야 한다는 구조적 필연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 폭력을 넘어서기 위해서 점점 더 강하게 폭력을 쓰는 것은, 화이가 괴물이 돼 가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얼개가 되는 구조적으로 필수부가결한 큰 기둥일 수밖에 없어요.”

석회 창고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은 그런 의미에서 백미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석회 창고 시퀀스는 햇볕의 느낌도 ‘재미있’는 독특하고 공들인 장면이라고 장 감독은 말한다. 그래도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총이 이렇게 많이 사용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총기 직접 제작’이라는 설정을 집어넣었다. 그 다운 계산법이다.

저주받은 부자관계, 폭력이란 두 기둥으로 얽혀진 「화이」는 아비상실의 시대가 된 지금 시대와 관객에게 어떤 메타포로 읽힐 수 있을까. “결국 우리 내면에 있는 괴물들을 한 번쯤은 바라보자는 생각이에요. 내가 자라온 시대의 아버지들도 그 사회에서 가부장적이어야 했고, 그런 아버지를 본 우리 안에도 그런 괴물이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아닌 척 하지만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그 괴물은 우리가 약해질 때는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거니까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는 ‘괴물’

125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서너 명의 단역들은 생각지 못한 웃음 포인트로 긴 호흡 중에 청량제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편집증적으로 손톱관리를 하는 조합 여직원이나 돌발 행동을 하는 형사가 석태에게는 오히려 ‘괴물’이라고 장 감독은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법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괴물’을 읽어내고 싶었던 그는 영화 곳곳에 이런 장치를 숨겨뒀다.

모든 비극의 현실적인 시작은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욕망에서 비롯됐다. 「 화이」는 그 욕망을 둘러싼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폭력이란 장치를 통해 우리 내면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괴물’을 들여다보길 요구하고 있다.


글·사진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상민 기자 2013-12-10 10:20:54
@김재호 기자님, 사실 저도 다섯 명의 아버지가 모이게 된 사연도 다른 한 편의 영화(외전 격으로)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영화쟁이님 지적대로 제한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이미 러닝타임이 꽤 되죠.. 여진구의 연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영화쟁이 2013-10-30 14:45:35
석태와 아비들의 백그라운드는 오히려 지금처럼 제한적으로 보여준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화이가 이미 충분히 피동적인 캐릭터로 보였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석태와 아비들의 정보를 더 처리했다면 주인공 선별에 대한 의문이 왔을 것 같습니다. 러닝타임에도 문제가 생겼을 것 같구요^^ 그것보다 오히려, 의외로 김윤석과 장현성, 여진구의 연기가 아쉬웠습니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만큼에 비해서요^^ 이번 영화에서 캐릭터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아주 조금 살짝 부족해보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ㅠㅜ 그런 면에서 백그라운드가 나오지 않았던 조진웅, 김성균의 연기는 가장 안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문성근 아저씨의 연기는 어마어마하더군요, 세 씬만 나오는데도 그 존재감이 놀라웠습니다. 장준환 감독님, 다음 차기작이 기다려집니다^^ 이번처럼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 말아주세요^^!!

김재호 2013-10-17 11:04:21
영화의 모티브는 매우 충격적이고 신선하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흐름이 조금은 어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부연 설명을 위해 프리퀄을 하나 만들 정도라고 장 감독이 언급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입니다. <설국열차>에서도 왜 열차에 타게 되었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략돼 아쉬웠습니다. <화이>에서는 다섯 명의 아비들이 왜 모이게 되었는지, 고아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적 설정 이외에 필연성이 요구됩니다. 영화는 그래도 꽤 흥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