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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포옹을 이기는 것은 없다
열렬한 포옹을 이기는 것은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13.09.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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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사랑을 한 마디로 하면 뭐라고 생각해?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거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해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가 먼저 물었건 간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데, 두 사람은 사랑을 뭐라고 대답할까. 대부분 여자가 먼저 물을 확률이 크다. 여자가 그렇게 물었다. 남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음…. 사랑은 서로 기댈 수 있게 등을 내주는 것이야.
이런 대답을 들은 여자들은 대부분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조금은 뾰로통해져서 이렇게 대답하겠지. -무슨 사랑이 그렇게 심심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서로 꼭 안아주는 것이야.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사랑도 지칠 때가 있는 거야. 그럴 때 등을 대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지.
여자는 더욱 뾰로통해져서 저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는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은근히 불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여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언제나 힘이 나야지. 그래서 힘들 때 가슴에 품고 다독여줄 수 있어야 하는 거지.
남자는 이제 기운이 없다는 듯 가로젓는 고개의 힘이 약해진다.


-사람이 말이야, 그렇게 오랫동안 힘차게 사랑할 수는 없는 법이야. 화르르 타고 금세 꺼지는 휘발유보다 은근하지만 오래 타는 등유같은 사랑이 좋은 법이야. 그러니 은근히 오래가게 힘을 조절해야 한다고.
여자는 그렇게 금세 힘이 달리는 남자와 오랫동안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더욱 의심을 하게 된다. 무슨 사랑이 그래. 그래서 여자는 쐐기를 박는다. -나는 매장량이 아주 풍부한 유전이야.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활활 타오를 수 있다구.
힘들 때 기대도록 등을 내어주는 것,

힘들 때 따뜻한 품을 열어 안아주는 것. 어떤 게 더 깊고 진한 사랑일까.
천만인이 사는 대도시 파리에서 비단뱀을 기르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기가 가진 두 팔만으로는 자기를 안는 것이 너무 부족해서, 가슴을 끌어안으면 옆구리가 비고 옆구리를 끌어안으면 가슴이 비어서, 그 허전함을 메우려고 이 미터 이십 센티의 길고 긴 팔을 가진 비단뱀을 기른다. 비단뱀은 천성적으로 붙임성이 좋단다. 사람을 보기만 해도 칭칭 감도록 타고났으니 말이다. 천만인이 살고 있지만 자신을 거들떠보는 여자가 한 명도 없는 외로운 도시에서 비단뱀이야말로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외롭다며 안아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스르르 다가와 빈틈없이 칭칭 안아준단다.


그래서 그 비단뱀의 이름은 ‘그로칼랭’이다.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이란다. 로맹가리의 소설이다. 황금색과 초록색과 갈색이 황홀하게 뒤섞인 길디 긴 몸으로 카펫에서 뒹굴다가 눈을 들어 자기 눈을 쳐다볼 때면 어쩜 그렇게도 자기 맘을 잘 아는 것 같은지 모르겠단다. 그리고 비단뱀이 자기 몸을 칭칭 감고 꼭 조여주면 그렇게도 마음이 편안하게 놓인단다. 열렬한 포옹은 사람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행복감에 젖게 해준다니, 비단뱀의 포옹도 그런가보다. 그렇게 해줄 여자가 너무나도 필요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그에게 관심을 두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주변 동료들은 그에게 말한다. 비단뱀에게 관심을 두느니 사람들과의 대화법을 익히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물론 그는 사람들과 대화한다. 다만,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너무 바빠서 제대로 듣지 못할 뿐이다. 말을 더듬고 자기 표현을 능란하게 하지 못하는 그에게 귀를 기울여줄 시간이 없다. 그러니 대화법을 굳이 익히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친밀함을 본능적으로 따르는 비단뱀이 그에게는 마침 맞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갖지 말란 법이 있나. 그리고 얼마 전, 이런 기사를 보았다.


“1995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한 병원에서 있었
던 일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미숙아 쌍둥이가 있었다. 한 아이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인큐베이터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긴 한 간호사가 병원 수칙을 어기고 다른 쌍둥이 형제를 한 인큐베이터에 넣었다. 그러자 건강한 아이가 자신의 팔을 뻗어 아픈 아이를 포옹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놀랍게도 아픈 아이의 심장 박동도, 체온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고 얼마 뒤에는 건강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제목이 「포옹의 힘」인 이 기사에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포옹을 하고 있는 아주 작은 아기들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한 아기가 팔을 둘러 다른 아기를 안고 있었다. 눈시울이 금세 시큰해지고 명치끝에서 뜨거움이 울컥 올라오게 만드는 기사였다.


그래, 이쯤하면 품에 안아주는 것이 더 깊고 더 진한 사랑 맞는 것 같다.
세월이 조금 더 흘러 사람을 깊이 믿게 되면 그의 등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깊이 믿는다는 것은, 오래 겪어오면서 이런 저런 변덕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그대로라는 것, 그 인간 자체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숨차게 달리던 경기의 중간에 등에 기대어 한숨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깊이 믿는다는 것은 깊고 진한 사랑 다음에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게 더 사랑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어쩌면 깊고 진하고 격렬한 사랑 없이도 어떤 사람들은 깊이 믿는 단계에 이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깊고 진하고 격렬한 사랑이라고 해도 깊은 믿음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격렬한 사랑을 훌쩍 건너뛰어 곰삭은 믿음으로 직행할까봐 막 사랑을 시작한 애송이들은 싫다고 화를 내는 것일 게다. 든든한 등을 바라기만 하는 사람에게 지칠 때만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냐고, 사랑의 애송이들은 화를 내는 것일 게다.

포옹의 힘을 믿는 사랑의 애송이들은 포옹의 힘을 역설하다 못해 심지어 만인에게 내 품을 벌려주겠다며 Free Hug까지 하는 판이다. 이토록 포옹을 필요로 하는 시대. 이토록 사랑의 애송이들의 열렬한 힘이 필요한 시대. 더 오래 살아보면 등을 기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깨닫게 되겠지만, 아직 포옹이 더 필요한 그대들은, 사랑의 애송이들은 실컷 애송이의 시절을 즐겨라. 그래, 무엇보다 열렬한 포옹을 이기는 것은 없다고, 나는 결론을 내린다.

□ 다음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는 소설가 이평재 씨가 집필합니다.

 


방현희 소설가
필자는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뒤 장편소설 『달항아리속 금동물고기』, 『달을 쫓는 스파이』등과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 산문집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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