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誤譯의 정치
誤譯의 정치
  • 교수신문
  • 승인 2013.09.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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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한 출판사에서 비싼 판권비를 지불하고 사서 번역한 추리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고 교열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대체로 무성의한 번역이었지만, 특히 한 대목은 이해가 어려워서 원문을 대조했다. 원문에서 앞 단락의 ‘horse’를 아래 단락에서 ‘he’로 받았는데, ‘그 말은’으로 번역해야 할 문장이 ‘그는’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무슨 문맥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키르히호프(Kirchhoff)’를 ‘교회마당’으로 옮긴 경우도 빛나는 誤譯의 한 예가 될 것이다. ‘키르히(Kirche)’는 독일어로 ‘교회’이고 ‘호프(hof)’는 ‘궁정’이나 ‘마당’을 의미한다. ‘호프(hoff)’에서 ‘f’가 하나 더 붙긴 했지만 물리학자 ‘키르히호프’가 ‘교회마당’으로 둔갑하는 것은 번역수업 초급반 학생수준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번역과 관련한 국내 여러 서적들 가운데 『번역은 반역인가』(2010)라는 책은 여러 가지 논란이 된 오역의 사례들을 들고 있다. 한 가지 사례를 옮기자면 “움직이지 마시오, 소름끼칠 정도로 가까이서 목소리가 들렸다(A voice spoke, chillingly close, “Do not move”.)를 “움직이지 마시오. 냉기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로 번역했다.


단순한 착오에 따른 오역은 가벼운 수준의 오역에 해당된다. 원문과 번역을 대조하면 사실 원문에 없는 문장이 번역본에 덧붙여진 경우도 많고, 거꾸로 원문에 있는 문장이나 단락도 번역본에서는 사라진 경우도 적지 않다. 단순한 실수의 수준의 오역은 번역자의 무성의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들 사이의 차이를 고려해서 ‘상황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번역자의 개입 여지가 있다고 할 때 그 범위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오역들에 대해 단순히 번역자를 질타할 일만은 아니다. 『번역은 반역인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4천500만 국민을 위한 지적 재산에 국가에서 투자하는 돈이 매년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한 실정에서 좋은 번역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번역이 나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것은 번역자들의 보수 없는 땀에서 비롯된다. 물론 오역의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오역도 상당하다. 어떻게 보면 번역은 기본적으로 오역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언어의 이해는 한 사회의 지적 문화적 전통에 의존하고 있고, 외국의 지적 산물들은 낯선 토양에 곧바로 이식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역을 통한 탈문맥화와 재문맥화는 불가피한 과정이고, 이러한 탈문맥화와 재문맥화를 수행하는 번역자의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Geschichte und Klassenbewusstsein)』이 과거 한 때 『역사와 학급의식』으로 번역돼 교육학 관련도서로 분류되면서 엄혹한 검열을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는데, 이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번역의 탈문맥화와 재문맥화의 아이러니를 희화적으로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에 따르면 번역은 한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어떤 사태를 언어화하는 과정은 곧 일종의 번역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모든 지적, 정치적 담론화는 ‘오역’의 위험을 늘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FTA 조약 체결 당시 오역들이 큰 문제가 됐듯이 특히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안들에 대한 오역은 심대한 사회적 국가적 문제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번역사업에 더 투자하는 것은 학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획이 될 것이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의 정상적 도덕과 정치 코드를 건드리며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혼외아들’, ‘내란’ 따위의 말들도 포괄적 의미에서는 번역의 문제다. 그럴 것이 그 말들은 그것이 지시하는 어떤 사태뿐만 아니라 그것이 위치하는 사회적 통념의 번역과도 관계하기 때문이다. 그 번역에는 합의가 없다. 하지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목판 인쇄 시절에는 오자 하나에도 곤장을 맞았다고 한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문제에 관한한 어떤 사태에 대한 오역은 심각한 반역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진실을 가리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마치 유포된 책들을 회수할 수 없듯이 한 번 손상된 진실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말[馬]’을 ‘그[人]’로 바꾸는 것과 같은 수준의 오역의 정치에 곤장칠 일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창남 서평위원/한양대·비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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