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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머리를 흔들 때
꼬리가 머리를 흔들 때
  • 교수신문
  • 승인 2013.09.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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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한 때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더스틴 호프만이 헐리우드의 연기파 배우를 대변하고, 이들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는 과연 어떤 것이 될까라는 질문이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사례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1995년 마이클 만의 「히트(Heat)」를 통해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함께 연기한 적이 있었고, 1997년 배리 래빈슨이 로버트 드 니로와 더스틴 호프만을 「왝 더 독(Wag The Dog)」이라는 영화를 빌어 한 자리에 모은 적이 있었다. 전자는 LA를 배경으로 하는 느와르 장르의 영화였고, 후자는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예언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사적이었던 정치 풍자 영화였다.

「히트」의 두 사람은 기대했던 대로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왝 더 독」의 경우는 대체로 밋밋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나마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가 더 나아 보였다는 어느 리뷰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소재라는 면에서 보자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을 「모두가 클린턴의 사람들」로 바꾼 듯한 내용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출마한 현직 대통령이 섹스 스캔들에 연루된다.

이너 서클의 관계자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실을 공개하는 대신에 정치 공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여론 조작의 전문가가 등장하고, 이제 이 전문가는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저명한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를 이 작업에 동참시킨다. 그리고 영화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모저모의 에피소드들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황당하게 진행되는 지를 가벼운 스케치 마냥 보여준다. 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약소국과의 가상적인 이미지 전쟁을 기획하고, 전쟁의 낙오자를 창조하며, 그를 구하려는 특수 작전을 언론에 선전하다가, 마침내는 존재하지도 않는 전쟁 영웅을 창조한다.


물론 개성적인 장면들도 있다. 있지도 않은 전쟁에 동원되는 선전 음악이 창조되고 전파되는 방식과 그 와중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의 파생 상품들의 생산과 판매에 관심을 보이는 관련자들의 회의 장면이 그런 것들이다. 그 반면에 개연성이 완전히 떨어져서 실소가 나오는 장면들도 있다. 가짜 전쟁이 전파되는 경로를 추적하던 CIA의 감시망에 포착된 로버트 드 니로 일행이 자신들을 추적하던 요원들과 한 카페에서 만난 후, 헤어질 때가 되자 그들에게 이미지 전쟁의 정당성을 완전히 설득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이 영화가 풍자 영화라는 점을 드러내준다.

개연성 정도야 무슨 문제이랴는 식이다.
사실 이 영화가 이렇게 개연성을 무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다. 즉 이 영화는 한 상투적인 구절의 시각적 주석이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막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왜 개가 꼬리를 흔들까? 그야 개가 꼬리보다 더 똑똑하니까 ! 꼬리가 더 똑똑했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었을 걸(The tale would wag the dog).” 그러니까 영화의 제목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에 대한 시각적 은유임을 가리키고 있다. 일단 이 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내러티브의 개연성이나 두 주연 배우의 연기 대결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대체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들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만이 주요한 이해의 모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러한 이해가 발생한 다음에 비로소 드러난다. 일단 이 영화를 통해 이 은유를 받아들이고 나서, 이것을 자신이 처한 현실과 혼성하려는 사람의 경우 영화는 더 이상 가벼운 심심파적의 대상으로 간주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왝 더 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태가 목격된다고 인식하는 순간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도 않고, 썩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었던 영화는 갑자기 그 가치가 고양된다. 이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관객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때로 영화는 외적인 이유 때문에 그 빛을 발하는 경우들이 있기도 한데, 이 영화가 그 대표격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이 영화 속의 스캔들과 맞물렸다. 반면에, 한국의 관객들이 2013년의 시점에서 16년이나 지난 이 영화를 볼 때 여전히 이 영화의 장점에 주목한다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 두 말할 나위 없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태를 목격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첫째, 몸통과 함께 흔들리는 머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렸는가? 둘째, 머리를 흔드는 꼬리를 쥐고 있는 손은 누구의 것인가

이향준 전남대 BK21박사후연구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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