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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畵·刻으로 빚어낸 불교적 메타포 … ‘시간의 연속성’잡아낸 古拙美 가득
書·畵·刻으로 빚어낸 불교적 메타포 … ‘시간의 연속성’잡아낸 古拙美 가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9.23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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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 김양동의 새로운 접근 「법어 서화전」

 

▲ 「死中得活」-죽은 자리에서 살아나다, 41×62cm, 조선고지, 먹, 토채서, 화, 각이 혼융돼 하나의 깊은 목소리를 웅혼하게 만들어내는 이들 작품 배경에는 그의 독창적 주장인 ‘빛살문’이 도각돼 있다.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전시관에서 열렸던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의 「법어 서화전」은 세 가지 점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첫째는 성철스님 열반 20주기 추모 특별 전시회라는 형식. 둘째는 이 전시에서 근원은 자신이 추구해왔던 서예, 전각, 회화를 하나로 융합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 셋째는 전시된 작품에 투영된 그의 미적 문제의식이 오랜 실증적 연구 결과에서 배태된 상징해석과 접목돼 있다는 것이다.
전시회의 형식은 비록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전시된 44점의 작품들은 한국 불교문화와 근원의 미의식이 새롭게 융합된 흥미로운 방식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점 때문에 실제 전시장을 둘러보면 종교적 성향을 떠나 자유롭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근원이 이 서화전을 준비한 것은 3년 6개월 전부터다. 원택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은 “큰스님의 행적과 사상을 예술혼으로 되살리는 일을 해주신다면 더 없는 영광”이라고 작업을 제의했다. 근원은 “성철 큰스님의 어록 가운데 「本地風光」이라는 상당법어집을 연구해서 작품으로 만들어 보겠다. 그러나 시간은 충분히 줘야 한다”라고 단서를 달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은 이 「본지풍광」을 “本來面目, 父母未生前, 法性 또는 實相과 같은 뜻으로, 心性의 본래모습이란 뜻의 禪門의 말. 다시 말해 ‘本地’는 모든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부처님의 마음자리, 그리고 ‘風光’은 이 마음자리에서 일어나는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라고 풀이하고 있다. 근원은 이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작품 구상을 시작했다.

44점의 전시 작품은 스님의 출가에서부터 면벽수행, 사부대중을 향한 법어 설교, 그리고 스님을 기리는 여러 목소리들을 형상화했다. 근원의 이번 전시를 다른 전시와 남다르게 구별해주는 점이 여기에 있다. 근원은 서예, 전각, 회화를 화면 하나에 모두 담아내고자 했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원래 書畵는 뿌리가 같다. 전각도 마찬가지다. 이들 장르를 분리하기보다 역량만 된다면 세 요소의 특질과 장점들을 서로 융합시킬 때, 그 효과가 훨씬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書 , 畵, 刻 혼융기업을 구사하게 됐던 것이다.” 오랫동안 서예에 매진하던 그의 생각이 ‘융합’에 이르러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평론가인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이번 전시와 관련, 근원의 작업 스타일로 ‘종이마애불’과 석굴, 암각화 등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입체적 풍격을 주의 깊게 읽어냈다. 최 교수는 이를 두고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작업은 흙으로 시작해 흙으로 귀결되는 재료에서도 비롯된다. 즉 입체적인 陶刻 작업을 하기위해 사용한 胎土와 그 위에 ‘떠냄기법’으로 사용된 조선시대 옛종이, 다시 그위에 사용된 흙안료[土彩] 등 ‘흙의 작업’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특성들은 古拙의 맛을 비롯해 고대와 당대를 넘나드는 ‘시간의 연속성’을 머금는다.”

 

 전통에 대한 입체적인 현대성의 구현, 문자와 그림, 조각의 일체, 불교미술의 창조적 재해석 등 노작들에서 당대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에 대응하는 그만의 독자성과 가능성이 제시됐다.

 -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


실제 전시장에서 마주친 작품들은 모두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의 용광로를 거쳐 나온 ‘날것’과 같은 싱싱한 느낌을 주고 있다. 최 교수가 읽어낸 것처럼, 근원의 기본적인 마인드는 암각화와 같은 원시적 질박성과 민화와 같은 우의적인 拙美 표현에 주력하려고 한 데 있다. 그런 우의성이야말로 성철스님 법어의 현대적 함의를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냐는 제작상의 어려움이었다. 그는 문제를 이렇게 풀었다. “그래서 도판각의 도입과 朝鮮故紙를 이용한 떠냄기법이라는 제작기법을 동원했다. 우리의 한지가 지닌 뛰어난 물성과 먹의 사용을 극대화해 입체적 量感을 얻고자 했다. 기존 불화의 이미지와 색채감을 피하고 중국 석굴의 불상이나 고분벽화의 퇴색미를 나타내 차분한 사유의 미감을 유발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런 그의 의도는 이번 전시에서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관람객들의 눈길이 작품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 「出家詩」, 36×60cm, 조선고지, 먹, 토채

 


전시장에서 만난 김복영 서울예술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불교세계와 우리의 근원적 문화는 다를 수 있지만, 근원이 이 둘을 접목한 것은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대개 우리미술의 특징을 線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근원은 그런 선의 해석에서 탈피해, 독자적 해석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고승의 덕을 기리는 방법에 활용한 것도 무척 흥미롭다고 본다.” 근원이 <교수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내용(한국 고대문화의 원형과 상징해석)을 관심 있게 읽어 왔던 김 교수는 “우리 민족을 천손, 즉 태양숭배민족으로 이해하고, 이들이 빛살을 정신적으로 수용했던 것을 스님 어록에 접목한 것은 신선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불자의 세계가 갖는 특성을 자신의 근원적 세계와 접목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에 모두 근원의 미적 주장이 담겨 있다. 작품마다 좌우에 書를 배치하고, 가운데 畵를 놓고 있지만, 이 그림의 배경에는 어김없이 ‘빛살’이 도각돼 있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근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신석기시대 토기의 문양은 한국문화 여명기에 등장한 최초의 부호이자 문화의 시원이다. 그런데 그 시원적 문화의 원류에 대한 상징성을 아직까지 해독하지 못하고 日人이 命名한 櫛文(빗살무늬)이란 용어로서 통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나는 그것을 古東夷族인 天孫族으로 자처했던 고대 우리민족이 태양을 숭배했던 그들의 사유를 반영한 부호로 해석해 빗살무늬가 아닌 ‘빛살무늬’로 고쳐 불렀다. 그래서 광명과 생명의 기호인 빛살무늬를 나의 작품 속에 가져왔다. 그 까닭은 빛살무늬가 불상광배의 원형이기 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이 한국문화 모형의 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병식 교수 역시 그의 이러한 陶刻 접근을 중요하게 본다. “강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도법은 고대 한국문화의 유적들에서 만나게 되는 간결, 졸박한 조형적 특징들을 내포한다. 그 외 백미는 여백에도 있다. 상당부분의 여백에서는 그가 말하는 ‘빛살문’이 수직, 수평으로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다.” 최 교수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번 근원 김양동의 조형성은 상당부분 비움의 미학으로 이어지며, 그 점에서 많은 함의를 지닌다. 전통에 대한 입체적인 현대성의 구현, 문자와 그림, 조각의 일체, 불교미술의 창조적 재해석 등 노작들에서 당대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에 대응하는 그만의 독자성과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근원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불교적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라고 털어놓았다.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큰 스님의 가르침과 시적 메타포가 담긴 표현을 일관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냐고 묻자 근원은 ‘미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의 미술’로서 빛살무늬 이론을 실천한 작가로 독자성을 표현해 남기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지금의 화단이나 평단을 의식하지 않고 사후 50년 이후를 예비한 작품으로 묶어놓으려는 계획인데, 자연연령으로 봐서 앞으로 힘든 작품은 10년 정도밖에 못하니까 100편의 대작 계획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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