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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學相長이 거둔 열매 … 書簡 통해 학문적 성숙 꾀해
敎學相長이 거둔 열매 … 書簡 통해 학문적 성숙 꾀해
  • 교수신문
  • 승인 2013.09.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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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교수신문 공동기획 ‘고전의 숲’ 8. 『寒水齋集』


『寒水齋集』은 조선 후기 송시열의 학통을 이은 노론 계열 학자 權尙夏(1641~ 1721)의 문집이다. 저자의 본관은 안동, 자는 致道, 호는 遂菴·寒水齋이다. 송시열과 송준길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에 몰두했고, 이단하·박세채·김창협 등과 사귀었다. 慈懿大妃 服制 문제로 1674년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된 이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청풍에서 학문에 힘쓰면서 제자들을 길렀다. 지금의 충북 제천군 한수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문하의 제자 윤봉구, 한원진, 이간, 채지홍, 이이근, 현상벽, 최징후, 성만징 등 여덟 사람을 江門八學士라고 부르고, 이 학파를 黃江學派라 부른다.

▲ 『寒水齋集』권상하 지음, 성백효·송기채·양홍렬·임정기·장순범·정태현·조동영 옮김6책(색인 1), 저본 후손 권희종 소장본, 민족문화추진회, 1990~1996
산림에서 江門八學士를 길러내다
『한수재집』은 일반적인 문집 형태대로 韻文을 저작 시기별로 앞에 편차했고, 이어 上疏, 書, 雜著, 墓道文 순서로 편차했는데, 본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書簡이다. 모두 257편의 서간이 인물별로 수록돼 있는데, 그의 스승인 우암에게 올리는 편지를 시작으로 동문인 이단하, 이여, 정호, 이희조 등에게 보낸 것, 제자들에게 보낸 것, 권욱, 권섭 등 가족에게 보낸 것 순서로 수록돼 있다. 권상하가 17세기 이후 성리학의 이론을 심화시키고 강문팔학사로 불리는 제자들을 길러낸 데는 이와같은 편지를 통한 깊이 있는 학문 토론이 큰 역할을 했다.

湖洛論辨의 시작
호락논쟁이란 조선 후기 성리학에서 人性과 物性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해 벌어진 논쟁이다. 인간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학자 대부분이 서울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洛論이라 했고, 인간과 동식물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 대부분이 충청도 지방에 살아 이들의 주장을 湖論이라고 칭했다. 호락논쟁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巍巖 李柬(1677~1727)은 인간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제자였다. 1712년 7월 권상하가 이간에게 보낸「答李公擧」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율곡 선생이 ‘사람의 性이 物의 性이 아닌 것은 기가 국한되어서이고, 사람의 理가 物의 理인 것은 이가 통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으니, 이른바 理가 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이름인가? 바로 太極의 전체가 각각 一物 가운데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네. 이른바 氣가 국한돼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이름인가? 바로 사람과 物이 받은 性에 각각 온전하고 치우친 차이가 있다는 것이네. 오직 사람만이 五行(목·화·토·금·수)의 온전한 기운을 받기 때문에 五常(인·예·신·의·지)의 온전한 덕을 다 얻는 것이고, 物은 겨우 形氣의 치우친 한 면만을 얻기 때문에 전체를 관통할 수 없는 것이네. 이것이 『中庸或問』에 아주 분명하게 실려 있네.


그런데 지금 그대의 편지에서 치우치거나 온전하다는 글자를 언급한 것이 여러 군데인데도 도리어 物도 五常을 다 갖추고 있다고 말했으니, 나는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네. 혹시 치우치거나 온전하다는 글자를 다른 뜻으로 본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이에 대해 의견이 서로 합치된다면 많은 변론을 하지 않아도 될 걸세. 『孟子』 「生之謂性章」 주에 ‘物이 어찌 인의예지를 온전하게 품부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도 또한 이 뜻이네.”


스승 권상하의 편지를 받은 후에 이간이 다시 올린 편지가 『巍巖遺稿』「上遂菴先生」에 실려 있다. 이간은 天命과 五常, 太極과 本然은 명목은 많지만 理가 지목하는 바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 것이라 하며, 애초에 彼此, 本末, 偏全, 大小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참되고 지극한 것으로 말할 때 태극이라 하고, 근원을 구명할 때 본연이라 하니, 본연과 태극 외에 따로 五常과 天命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논함으로써 사람과 동식물이 본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편다.


인간과 동식물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제자가 韓元震(1682~1751)이었다. 그는 1725년 2월 이간이 찾아왔을 때 논의한 내용 가운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스승에게 질정해 주기를 청했다. 이 편지는 한원진의 문집인『南塘集』 7卷 書 「上師門」에 실려 있다.
이에 대해 이해 12월 권상하는 한원진에게 답장「答韓德昭」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濂溪 선생은 사람의 氣稟을 剛善,剛惡,柔善,柔惡으로 나누었고, 明道(程顥의 호) 선생은 ‘사람은 氣稟을 타고나는데, 그 가운데는 理가 갖춰져 있다. 기품에 선악이 있으므로 理에도 선악이 있다[人生氣稟 理有善惡]’고 말했네. 그러나 朱子가 『大學或問』에서 기질이 아름다운 자는 어질고, 기질이 악한 자는 不肖하다고 한 말이 더욱 적절하네.

짐승도 五臟을 갖췄고 物도 五行의 氣를 온전히 품부받았다는 것은 맞네. 그러나 五常으로 말할 것 같으면 禽獸는 온전히 품부받지 못했네. 이로써 말하면 금수의 마음이 오행의 精秀한 氣를 온전히 품부받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네. 栗谷이 말한 ‘물은 그릇 모양이 네모난지 둥근지에 따른다.[水逐方圓器]’는 것으로 헤아려 보면 더욱 믿을 수 있네.

보내온 글을 대략 보니 뜻이 잘 통하여 막히는 데가 없네. 그런데도 公擧(李柬의 字)는 지금까지 소견을 바꾸지 않고 있으니 애석할 뿐이네. 程子ㆍ朱子ㆍ栗谷의 설을 믿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생각을 돌리지 않으니 각각 소견을 지켜 그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네. 그러니 부디 많은 말을 하지 말게나.” 이 편지에서 권상하는 한원진에게 이간이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논쟁하지 말고 기다릴 것을 권한다. 한원진과 이간 사이에 전개된 인물성동이론에서 권상하는 한원진과 견해를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

湖洛論辨의 발전과 과제
인물성동이론은 이간과 한원진 간의 논쟁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 윤봉구, 최징후, 채지홍 등 한원진의 설에 찬동한 호서 학자와 이재, 박필주 등 이간의 설에 찬동한 경기 학자들로 나뉘어 이어진다. 조선 성리학의 주요 주제로서 심도를 더해 가면서 생명의 보편성과 인간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심화시켜 나갔다.


스승과 제자 간에 편지를 통해 학문을 연마하는 전통이 우리시대에도 아직 남아 있을까. 『한수재집』에 실린 편지와 한수재의 제자들 문집에 실린 편지를 대조해 가며 읽어 보면 조선 시대에 스승과 제자가 배운 것을 점검하고 깊이를 더해 가는 일에 얼마나 치열하게 매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전을 읽으면서 겉뜻 훑기에도 벅찬 요즘의 공부와는 그 깊이를 견줄 수 없다.


인물성동론과 인물성이론 가운데 어떤 견해가 옳은지에 대한 논쟁은 조선 시대에 이미 차고 넘치게 했다고 본다. 오늘날 치열하게 힘써야 할 학문의 방향은 인물성동론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이 뿌리를 함께한다는 융화적 세계관을 이끌어내고, 인물성이론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갖춰야 할 책임 의식을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국역 『한수새집』은 색인을 포함해 총 6책으로 구성돼 있다. 書簡 부분은 한국고전번역원 명예한학교수인 鄭太鉉 교수가 맡아 번역했다.



하승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필자는 한국고전번역원 역사문헌번역실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승정원일기』 등의 번역과 집필에 참여했다. 중국 상해고적출판사에서『花潭集校注』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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