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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소중한 벗’ 물리학
내겐 너무 ‘소중한 벗’ 물리학
  • 최낙렬 금오공대·교양교직과정부
  • 승인 2013.09.23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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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물리학이 신앙인 때가 있었다. 물리학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물리학이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가장 깊이 있고 분명한 학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물리학과에 진학했고 그 때의 그 벅찬 기쁨과 포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대학교 2학년에 비로소 물리학 전공과목을 배울 수 있었는데, 역학 과목을 배우면서 몹시 당황했다. 보편적 진리의 표본으로 여겼던 뉴턴 역학이 사실은 틀렸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을 소개하는 단원에서 배우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 하면 상대론’을 들어는 왔지만 그것이 곧 뉴턴 역학이 수정돼야다는 의미인지는 몰랐던 것이었다.

물리학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칭송해마지 않는 뉴턴 역학이 결국 틀린 것이라면, 그럼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상대론인들 무오류의 진리일 수 있겠는가. 그럼 결국 물리학이란 참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 자연을 근사적으로 이해하는 그저 그런 학문이 아닌가. 내가 믿어왔던 물리학은 신기루였다는 낙담에 젖어 물리학과 진학을 후회하고 1년 가까운 시간을 방황했다.

철학 책 몇 권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물리학 수업을 건성으로 대하고 술집에 자주 드나들며 지내던 어느 날 내가 물리학을 절대적인 무오류의 학문으로 기대했던 것이 너무도 관념적인 태도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없이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실제적인 자연현상을 어떻게 인간이 한 줌 오류도 없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신의 영역일 것이다.

차라리 인간은, 적어도 나는, 삼라만상을 근사적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다는 그런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문제와 맞닥뜨려서 힘닿는 데까지 근사적으로라도 설명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진리에 더 가까운 모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걸어갈 진정으로 멋진 길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물리학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학문이며 내가 아직 물리학도로 남아있었던 것이 참으로 다행이며 축복이라는 느낌으로 무척 행복했다.

다시 물리학과 벗이 됐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창의적인 연구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다. 우선 창의는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고 싶었는데, 결국 훌륭한 선배들의 성공 사례를 통해 그 비결을 찾을 수 있었다.

갈릴레이가 ‘관성의 법칙’을 발견했다. 뉴턴은  “그래. 그 법칙 당연히 맞는 것 같다”하며 그냥 넘어가는 대신 그 자리에 머물며 곰곰이 생각하다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각각의 물체가 갖는 관성의 크기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관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등속도 운동으로 가득 차 있지 않는 것일까?”이렇게 해서 관성질량과 운동법칙이 생겨났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맥스웰 방정식을 대하고 나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이 갈릴레이 상대론과 부합되는가를 차분히 검산한 것이 바로 특수상대론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천재들도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는데, 나와 같은 둔재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예전 선비들이 팔자걸음을 하며 사색에 잠겨 천천히 걸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교육부는 국립대 교수들에게 ‘성과가 누적되는 서열식 연봉제’시행을 강요함으로써 동료 교수들보다 빨리 많은 결과물을 만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리학 입문 시절 내 미숙함으로 고민했던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비합리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에 다시 심하게 당황했고,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고민을 끝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을 내렸다. 내게 물리학은 소중한 벗이기에 함부로 대강대강 대할 수 없다. 불이익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리석은 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까지처럼 물리학을 예찬하며 창의적인 연구에로의 길을 의연히 걷겠다.

기실 물리학을 전공하는 나뿐 아니라 어느 분야의 교수인들 이런 마음이 아니겠는가. 정책 입안자들이 부디 교수들의 학문에 대한 충정을 십분 헤아려 후배 교수들에게는 이와 같은 고민 없이 창의적인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해주기를 희망한다.


최낙렬 금오공대·교양교직과정부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박사를 했다. 금오공대 초대교수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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