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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非世說_ ‘히틀러 와인’
是非世說_ ‘히틀러 와인’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09.23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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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잊어서는 안 될, 그러나 오래 전에 죽은 독일의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요즘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히틀러의 최후의 순간을 지켰던 경호원 로후스 미슈가 96세의 나이로 최근 사망하면서 새삼 히틀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게 그 하나다. 미슈의 죽음과 관련해 눈에 띄는 대목은 그가 생전에 남긴 히틀러에 대한 인물평이다.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광기의 전쟁광이자 학살자인 히틀러는, 그 자신이 보기에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야수도 괴물도 슈퍼맨도 아니었다. 그는 훌륭한 보스였고, 내게 친절했다”는 게 그의 히틀러에 대한 기억이다. 곁에서 신변을 보호하는 보디가드라는 최측근이었기에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 그런 평가를 할 수는 있고, 그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확인되고, ‘인류의 공적’으로 낙인찍힌 인물을 두고 어떻게 그렇게 천연덕스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참 의아스럽다.

또 하나는 와인과 관련된 것이다. 히틀러의 사진과 나치 선전 구호를 부착한 한 이탈리아 업체의 와인이 인기를 끌면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의 와인업체 ‘비니 루나르델리’가 1995년부터 생산한 이 와인은 매년 2만 병 정도 판매되는데, 이 업체 전체 판매량의 4분의 1에 해당될 만큼 인기품목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에 덩달아 이탈리아의 다른 와인업체도 히틀러를 상표로 하는 와인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와인업계에서는 이를 이른바 ‘독재자 마케팅’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에는 히틀러뿐 아니라 마오쩌둥, 스탈린, 레닌 등 악명 높은 세계적 독재자도 망라되고 있다. 아무리 상업술이라고 하지만, 인류가 이들로부터 입은 피해를 감안할 때 목도할 수만은 없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거세다.

특히 ‘히틀러 와인’을 둘러싸고는 더 그렇다. 미국에 본부를 둔 유대인 인권단체로 ‘나치 헌터’로 명성을 떨친 ‘사이먼비젠탈센터(SWC)’가 가만있을 리 없다. 이 센터를 창설한 사이먼 비젠탈은 그 자신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센터는 “대학살을 자행한 나치를 마케팅 도구로 이용한 사업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성명을 내고 ‘히틀러 와인’에 대한 전 세계적인 판매금지를 요청했다. 와인업체가 이런 제재의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궁금하다. 장사가 잘 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비니 루나르델리’의 사장 말이 재미있다. ‘히틀러 와인’비판 이메일이 한 통 들어올 때마다, 이 와인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문의하는 이메일은 100통 들어온다는 것이다.

나치 패망 당시 연합군은 히틀러의 은거지였던 바바리안 알프스 산록에 있는 베르그호프를 급습한다. 베르그호프 ‘켈스타인하우스’의 비밀창고에 나치가 약탈해 보관한 금은보화와 예술품 등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다. 연합군이 지하 비밀저장고의 문을 폭파해 진입했을 때,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었다. 거대한 규모의 저장고에는 수많은 고급와인들이 마루에서 천장까지 선반과 공간마다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 곳에는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 샤토 무통 로트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디켐, 로마네 콩티 등 극상품 와인으로만 50만 병이 보관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최상의 코냑도 다수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19세기에 생산된 진귀한 것들이었다. 최상급 고급와인에 대한 욕망에는 나치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정작 이 비밀저장고의 소유주였던 히틀러는 와인을 즐기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즐기지는 않았지만, 수장은 하고픈 욕망은 누구보다 강했던 모양이다.

그런 히틀러가 21세기 ‘독재자 마케팅’의 주역으로, 그의 이름을 붙인 와인의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시대의 아이러니 치고는 참 얄궂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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