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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의 기초의과학자
멸종위기의 기초의과학자
  • 홍장원 한림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연구교수

  • 승인 2013.09.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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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홍장원 한림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연구교수

홍장원 한림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연구교수
최근 <라포르시안> 기사에 따르면, 한 해 의대 졸업생의 99%가 임상의사로 진출한다고 한다. 임상으로 진출하지 않는 1%, 그 중에서도 한 절반 정도인 약 0.5% 곧 20명 남짓의 졸업생이 기초의학의 길로 진출하는 셈인데, 실제 박사학위까지 마치는 인원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을 보면, 상당수가 기초의학을 포기하고 임상으로 진출하거나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매해 ‘기초의학의 고사’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종종 나오고는 한다.

정부에서는 기초의학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해마다 이야기를 하고, 의대 졸업생들을 기초의학으로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기초의학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고충, 특히,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충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요즘, 젊은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은(편의상 M.D. 기초의과학자라는 표현을 쓴다) 예전 세대에 비해 약간은 애매한 포지셔닝을 지니고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특히, M.D. 기초의과학자가 설 자리가 많았던 데에 비해서, 지금의 M.D. 기초의과학자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임상의 길을 가지 않고, 기초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연구를 한다거나,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일 텐데, 실상은 연구에 있어서는 연구역량이 높은 Ph.D.과의 경쟁에 허덕이고, 교육에 있어서도 최근의 기초-임상 통합강의 추세에서 다양한 임상경험을 가진 임상교수님들의 강의를 따라 잡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즉, 연구도 교육도 애매한 포지셔닝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보면, “M.D.기초의과학자들은 Ph.D.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되기 쉽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예전에는 확실히 그런 면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서 대학의 연구 경쟁력 강화 추세 아래에서는 큰 메리트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질환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추고, 좋은 연구논문들을 많이 생산해내는 Ph.D.들이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들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정년트랙을 향해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즉, 좋은 연구나 좋은 교육을 떠나서, 지금의 젊은 M.D.기초의과학자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나 자신의 생사가 돼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M.D.기초의과학자들이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는 현실이 이들이 군복무 이후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임상으로 향하게 만들고, 이는 기초의학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함께 작금의 기초의학의 고사 현상을 만들어낸  원인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렇다고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보호하듯, M.D.기초의과학자들을 박제로 만들거나 보호인종(?)으로 분류해서 애지중지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답은 돈, 아니, 더 정확히는 연구비다. 다행히도, 현재 젊은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비는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그렇게 기초의학의 고사가 문제가 된다면서 정작 M.D.기초의과학자에 대한 연구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 실정이다. 연구비 선정기준이 성과/실적위주로 가게 되면서, 순수 기초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많이 줄어들었고, 팀 단위의 과제들이 늘어나면서 개인 단위의 과제들 역시 많이 줄어들게 됐다. 이러한 연구비의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 속에서 이제 막 자립을 하려는 젊은 M.D.기초의과학자들은 설 자리를 더욱 잃어버리고 있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젊은 M.D.기초의과학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연구역량의 강화일 것이다. 최근 들어서 대두되는 중개의학은 젊은 M.D.기초의과학자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중개의학은 그 개념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고, 많은 수의 임상의들에게 “impact factor를 높이기 위해, 환자 샘플로 실험하는 것”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 실정에서, 젊은 M.D.기초의과학자들은 특유의 그 애매한 포지셔닝을 십분 발휘해, 연구의 퀼리티를 높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친구나 선후배인 임상의들과 함께, 연구 계획을 디자인하고, 그 실험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환자 샘플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는 분야에 있어서 M.D.기초의과학자들이 가지는 장점은 사실 꽤 크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러한 연구역량의 강화와 함께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두레 정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7월 19일, 대구에 위치한 계명대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신진 기초의과학자 연합 심포지엄’이라는 제목의 이 행사는 전국에 있는 한 줌도 되지 않는 젊은 M.D. 기초의학자들이 모여서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기초의과학자들이 모여서,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이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아주 뜻 깊은 자리였다.

사실 이 모임의 시작은 제목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군복무를 같이 했었던 기초의학자들이 전역 이후에도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나 나누려는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모임은 향후 각 학교별로 돌아가면서 개최를 할 예정인데, 이런 자리를 비롯한 여러 연구회 등을 통해서 힘든 일은 같이 나누고, 좋은 일은 같이 즐거워하고, 공동 연구과제를 만들어내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젊은 M.D.기초의과학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비정규 계약직 연구노동자 주제에 주제넘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기초의학의 고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이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관심이 있었는지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 관심에서 소외된 비정규 계약직 연구노동자들인   M.D.기초의과학자들의 삶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홍장원 한림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연구교수

한림대에서 약리학 박사를 했다. 2012년 대통령Post-Doc. Fellow로 선정돼 한림대에서 ‘항암 면역치료 개발을 위한 종양내 호중구의 기능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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