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만을 말한다. 이것은 실화다. -박정대-
술 참 많이도 마셨다. 말술을 배운 곳은 고교 아이스하키부 합숙훈련이었는데, 운동부 선배들과 막걸리를 죽을 만큼 마셨다. 훈련하고 먹고, 시합하고 먹고… 게임에 지면 스틱으로 허벅지 맞고, 또 먹고, 심심할 때 먹고, 추울 때는 몸을 덥히기 위해 먹었다.
대학시절에도 무교동, 명동, 피카디리를 휘저으며 매일같이 마셨다. 안주를 먹지 않는 습관이 생긴 건 그 무렵이었는데, 그룹친구들, 도상 놈들, 쎄씨봉 딴따라 놈들… 술이 늘고 술친구도 늘었다. 대학원 시절에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버드와이저 여섯 캔과 함께 머릿속으로 그 날 공부한 것을 정리했다. 그 당시 버드와이저 6캔들이 한 팩에 단돈 0.99달러. 그리고 지도교수님들과 근처의 개경주장에 가서 마시거나, 맥주 들고 낚시도 할 겸 바닷가도 자주 나갔다.
그곳 멕시코만 연안에는 악어과인 앨리게이터가 득실대며 누워 있었다. 한번은 나를 방문한 경림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아침식사 맥주 점심식사 맥주 저녁식사 맥주 이렇게 대접받고 왔다고 했다나…. 젊은 혈기와 술기운에 진상짓도 많이 했다. 깨진 재떨이로 인중을 내리찍어 검찰에 불려간 일. 술값을 내지 않았던 트윈폴리오 형주를 코스모스 3층 계단 밑으로 걷어찬 일(미안했네). 10대 10 미팅을 이끌고 내려간 송추의 마을잔치에서 시비가 일어 나머지 일행을 무사히 기차에 태워 보내느라, 낫을 들고 쫓아온 마을청년들에게 친구 한 명과 같이 붙잡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신촌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가 귀가하니 내 몰골을 보시고 아버님이 “정대야”하고 크게 놀라신 일. 음주운전으로 경찰을 대동한 여기자가 집까지 쫓아와서 ‘후레시’를 비추기에 숨죽이고 있었던 일.
이 밖에도 여전히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한(죄송합니다)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학교생활에도 술이 빠지지 않았다. 특히 제자들과 술자리를 많이 가졌고, 회식 전에 한 스무 명으로부터 일단 한 잔씩 받고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내 왈, 평생 지불한 술값이 웬만한 강남아파트 한 채 될 거라니 내 술 얻어먹지 않은 이 아마 드물 것이다. 13년 타지 생활의 고독을 청산하고 돌아온 그때 한양대 상대 84학번 꼴통반이 있었고, 80년대 학생들 참 꿈도 크고 기운이 넘쳐 술을 좋아했지만 가난하기까지 했으니, 내가 어찌 하겠는가? 그 후로도 술 덕분인지 제자들 인복이 참 많았는데, 각종 모임들, 만남들, 친구들….
소주 한잔으로 우리들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생각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몇 년 전에는 술로 인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한 바로 그해, ‘頂上酒’를 하고 산을 내려오다 굴러서 바위에 두개골이 함몰되는 사고였다. 그때 운 좋게 뇌출혈의 위험에서 목숨을 건진 건, 산행을 함께 했던 검단산우회 친구들과 세브란스 이종화 교수의 적절한 대응, 수술을 맡아준 한양대 의대 신경외과 고용교수팀의 인술 덕분일 것이다.
병실에 찾아와준 고마운 이들의 성원도 있었다. 건강을 회복한 후, 나의 애주가 생활은 변함이 없었지만, 사고 후 4년째인 작년 말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짐을 감지했다. 알코올성 만성 영양실조의 영향으로 손 떨림의 시작과 다리의 힘 빠짐에서 오는 보행장애가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화장실 앞에서 검정색 옛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그 여학생이 바로 ‘幻影’이라면서 알코올 말기의 개념을 잡아준 법대의 애주가 모 교수님. 그렇다.
난 결국 환영을 보고야 만 것이다. “……돌이켜보니 술… 학교에서 학생들과 농구 한판 하고 맥주 마시고 왕십리 나가서 소주 마시고… 연구실에서 교수님들과 술 먹고 노래 부르던 기억… 놀라운 것은 내가 도운 것이 없는데도 신경영관 건물로 이전을 했고… 여러분이 최고입니다….” 퇴임사를 읽고 3부까지 이어지는 정년기념 만찬에서, 소맥을 타려는 나에게 제자들이 “교수님 부디 오늘만”이라며 수시로 간청해주어 “오케이”하고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오늘까지 200일간 단 한 번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100일간 담배를 한대도 피지 않았다. 미련 없이 단번에 금주, 금연을 실행하게 된 것. 그다지 참기 힘들 만큼의 금단현상도 없었다. 사실, 술이라는 것이 의지를 가지고 ‘안’ 마시면 그만인 것이다. 단순하게 접근하시라. 금주계획표도 단주모임도 필요 없다.
‘이미 너와는 끝이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안마시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 무엇도 애주가의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난 의지를 대신할 수 없는데, 뒤에서 옛 연인이 울고 있다 하더라도 뒤를 ‘안’ 돌아보면 된다. 돌아선 후 처음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나겠지만 말이다. 이미 한번 결론을 내렸으므로 갈 데까지 가볼 뿐이다. 고민하지 마시고 애시 당초 술잔을 사양하시라.
한 잔의 술이 두잔 석잔을 부르는 게 술의 속성이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 자신도 모르게, 하루 이틀 술이랑 멀어져갈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술을 내려놓는 이치이며 지극히 단순한 메커니즘인 것이다(라고 폼나게 말하지만 초반 몇 개월을 주변의 도움 없이 꾸준하게 금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참고하시라).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 박 교수 다시 봤어”라며 격려해 준다. 도대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해왔던 것일까? “지금 이 나이에 무슨 금주냐”, “술 먹는 낙도 없으면 무슨 재미냐” 등등.
각자 나름대로 생각해주고 관심 가져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고맙다. 여하튼 좋은 건, 술이 없는데도 마음이 어느 때보다 ‘후레쉬하다’는 것. 정년퇴임한 명예교수가 하루에 6시간 연강을 하고도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까. 가족들이 좋아하고 마음속에서 손중녀(할머니)가 기뻐하신다. 집에서 인기가 오르니 살맛이 나고, 하루하루가 새롭다. 남는 시간에 가평에 가서 과실수와 텃밭을 가꾸며 지내야지. 여러 가지 인생 후반기 계획을 궁리해 본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술자리의 일로 서먹해진 자들, 옛 술친구들, 내게 한번 연락을 달라. 우리들, 지난날에 맨 정신으로 사귀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교수 주당들이여. 나를 따르라.
□ 다음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 필자는 김우영 동덕여대 교수입니다.
박정대 한양대 명예교수·회계학
필자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다시 회계학을 공부했다. 하와이주립대 부교수, 한국회계학회 총무이사, 한국회계학연구회 창립멤버, 한국스쿼시볼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