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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펠로우에서 대학 교수로 … 정책분석을 경제학 모델에 접목
KDI 펠로우에서 대학 교수로 … 정책분석을 경제학 모델에 접목
  • 이성섭 숭실대·글로벌통상학과
  • 승인 2013.09.09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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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년퇴임 교수의 마지막 강의 上

이 글은 지난달 숭실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이성섭 교수의 퇴임강연록이다. 경제학자로 일평생을 살면서 어떻게 그의 분야에서 연구방향을 설정했고, 또 정진해왔는지 시기별로 담담하게 회고하며 학자로서의 삶을 회고하고 있다. 교수신문은 2회로 나눠 그의 퇴임강연록을 싣는다.

경제학도로서 평생의 질문

경제학도로서 필자 평생의 질문은‘어떻게 정책을 분석적 구도에서 설명해낼 것인가?’였다. 필자는 이 질문을 KDI에서 펠로우로 있던 시기(1982~1986)에 얻었다. 필자의 경제학교육은 순수한 무역이론이었고 KDI는 정책연구를 하는 연구기관이었다. 필자는 경제학교육이 정책연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론경제학은 정책을 설명하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시장의 실패가 있는 경우 정부의 역할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시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버려두면 시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틀린 가설이다. 시장의 교환이란 인류역사에서 극히 최근세, 아무리 길게 잡아도 중상주의가 나타난 12~13 세기 이후의 현상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인류학적 연대를 대략 100만년으로 본다면,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로부터 이 시기(재산권의 법적-도덕적 제도기반이 확립된)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 100만년 전부를 소비하고 이 시기에 이른 것이다.

시장교환의 기초는 재산권이다. 재산권이 확립되지 못한 사회(재산권은 본유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점을 생각하면)를 시장교환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리가 있다.

필자는 KDI펠로우 시절 산업-무역정책 분야에 전문화 했다. 이론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정책연구는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을 요구하는 도전적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필자는 경제학도로서 평생 추구해야 할 주제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발표한 논문은 당시 연구 활동의 범위를 말해준다. 이 시기 연구는 후에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발간 SSCI 저널 The Developing Economies에 출판된다. 또 서울대 경제연구소 기획연구『고도성장기의 일본경제』에 무역정책 분야 집필자로 초청받아 연구하게 된다.

KDI에서 대학(숭실대)으로 직장을 옮김(1986년부터 현재까지)으로써 경제학 공부를 심화할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갖게 됐다. 강의(경제원론, 미시-거시 경제학, 국제무역론, 국제금융론, 산업정책, 무역정책, 계량경제학 등)를 준비한다는 것은 경제학 이론기반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뿐만 아니라 정책자문, 정책연구 및 미디어 및 시민운동을 통한 현실참여는 경제학 공부의 깊이와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이 시기는 대체로 3기간으로 구분된다.

대학으로 옮긴 뒤 제도연구 심화

우연하게 갖게 된 모스코바 이공대학에서 1992년 가을학기 기간 중의 교환교수 강의(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ial Policy)는 경제학 공부의 방향을 잡는 한 전기를 마련해줬다. 이 강의는 MIPT에서 소책자로 출판됐다. 당시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 중에 초기단계였다.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혼란한 상황이었다. 당시 제퍼리 삭스 교수에 의해서 주도되던 IMF는 러시아에 1992년 1월을 기해서 모든 국가재산을 최단기일에 사유화하는 Big Bang 접근방법을 주문했다. 그 결과는 참담해서 사유화가 시장교환을 활성화하기보다 소유권 갈등이 증폭돼 극도의 혼란을 초래한다. 이 혼란상황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 경제학 공부의 방향설정에 큰 도움이 된다.

필자는 적극적 현실참여 지식인이었다. 경실련의 국제위원장(1995~1996)을 하면서 당시 정부가 과시적 행정의 일환으로 추진하던 OECD 가입이 위험한 정책임을 주장한다. 당시 OECD가입조건을 자본시장 자유화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 산업은 관치금융의 저개발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는 멕시코 경제위기 사태를 소개하며 우리도 그 전철을 되풀이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OECD 가입을 강행했고, 정확히 1년 후 우리는 IMF경제위기를 맞게 된다.

경실련 정책위원장(1997~1998)을 하면서 고심한 문제는“외환위기가 어떻게 모든 부문의 부실로 나타나는 경제위기를 촉발하였는가?”였다. 문제의 원인은 관치체제이다. 사회 경제의 모든 부문의 운용이 정부 관련부서의 지도 감독에 의해서 움직이는 체제, 즉 관치주의체제에서 민간은 기회주의적(opportunistic) 행동을 하게 마련이고 이것이 사회 경제 각 부문에 부실을 쌓아가게 됐다. 금융기관, 공기업 등의 부실운용이 대표적 사례이다.

문제의 궁극적 해결방향은 관치주의의 극복이고 자유 법치(liberal system and rule of law)의 실현이다. 이것은 자율책임성의 원리를 구현하는 시스템을 사회 경제의 각 부문에 구축하는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한 인식은 경제학자에게 사회질서의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2003~2004년 두 학기 간의 조지 메이슨대 Public Choice Center 방문(senior visiting scholar)은 필자의 경제학 사고에 새로운 전기를 준다. 그것은 복수의 개인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여러 개인 간에 공동체적 의사결정을 하는 문제가 하나의 개인의 의사결정 문제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후에 필자의 제도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다. 즉, 제도는 복수 개인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공공선택적 의사결정(public choice)의 결과라는 깨달음이다.

Public Choice Center에 체류하는 기간 수행한 다음의 연구는 필자의 경제학 공부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헌재판례가 한국의 법치질서의 근간을 놓는다는 생각에서 헌재판례(1988~2002) 중에서 경제문제관계 120여개의 판례를 선별해서 분석을 시도했다.‘ 판례는 교환활동에 친화적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고심 끝에 정해졌다. 이것은 효용 비용으로 척도를 정하는 전통적 경제학 접근방법과 구분된다.

수수께끼 같은 질문 그리고 대답 연구개시 전에는 부정적 선입관이 있었다. 왜냐하면, 법관들은 경제적 또는 경제학적 식견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선입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석의 결과는 놀라웠다. 판례가 분명하게 교환활동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경제활동이나 경제학도 모르는 법관이 어떻게 교환활동 친화적 판결을 할 수 있는 것인가.

1년 여 고심 끝에 얻은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법치의 원리는 그 자체로 교환활동 친화적이라는 것으로 귀결됐다. 법치원리가 적용되는 교환활동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다분히 하이에크가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를 제시하면서 제기한 질문과 유사한 질문이다. 이것은 다수의 개인들로 이뤄진 공동체 생활에는 법치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필자의 경제학 공부가 공공선택의 문제를 거쳐서 뒤에 소개되는 관계교환경제학 또는 열린 경제학(OSE: open system of economics)에 이르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계속>

이성섭 숭실대·글로벌통상학과
뉴욕주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경제학회 부회장, 한국제도경제학회장, 경실련 정책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지난달 숭실대를 정년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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