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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교수 채용률 집착 … ‘인문학 위기 본질’ 외면하고 있다
HK교수 채용률 집착 … ‘인문학 위기 본질’ 외면하고 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9.09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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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한국 기획시리즈 1. 인문한국 사업, 전임한국 사업으로 전락하나

2006년 80여개 대학의 인문학위기선언에 대한 활로로 시작한 인문한국(HK)사업은 연간 약 432억(2013년 9월 기준)이 집행되는 대규모 인문학 지원 프로그램이다. 10년 장기 사업으로 총 소요예산은 4천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사업시행 6년을 넘어서며 평가기준의 핵심인‘HK교수 채용률’로 인해 연구소 전임 경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인문한국사업이 단순히 전임으로 가는 우회로 사업으로 전락할 경우, 인문학 위기 선언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교수신문은 현 인문한국사업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외사례를 참고해 한국인문학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는 인문한국 기획시리즈를 준비했다.

인문한국사업 6년차 2단계평가가 끝난 현재 HK교수 수는 43개 인문한국 연구소 기준 183명, HK연구교수 수는 257명이다(2013년 7월 기준). 3단계가 완료되는 2017년이면 전임교원인 HK교수의 최종 수는 200명 내외가 될 전망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인문한국사업 시행 초기부터 연구소 안정을 목적으로 HK전임교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고 대학 연구소에 지원금 1억5천만 원 당 HK교수 1명 수준을 확보하도록 요구했다. 2010년 1단계평가에서 HK교수 채용률은 100점(1200점 만점)에 불과했지만 지난달 이뤄진 2단계평가에서는 400점(2000점 만점)으로 대폭 강화됐다. 2단계평가에서 새로운 핵심 평가지표였던‘특성화’배점이 400점이었던 것으로 볼 때, HK교수 채용률의 비중이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다. 단계평가 외에도 매년 행해지는 연차평가에서도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연구소와 연구자의 성과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사업이 완료되는 3단계 즈음에 HK교수 확보를 한다는 초기 기획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HK교수는 연구소별로 2~3년 마다 채용되고 있다.

예산의 대부분이 인건비… 연구 불가능해져

한국연구재단이 HK교수 채용률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백민정 한국연구재단 연구과제관리관은“인문한국사업이 대학 내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엄격히 보기 위해서는 HK교수 확보가 시급하다. 연구소들 중에서도 초기에 HK교수를 임용한 곳은 어젠다 설정과 후속 연구가 안정적으로 진행된 사례가 많다. 1단계는 인프라 구축 단계였으므로 평가 비중이 낮았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0년 사업이 종료되는 2017년부터는 국고지원이 끊긴다. 불투명한 인문한국 연구단의 미래 속에서 연구재단의 HK교수 채용 요구는 각 연구단장에게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산의 상당부분이 인건비로 책정된 연구소의 경우 더 많은 연구교수를 채용하지 못하게 됐다. 연구단장의 고민은 어젠다로 내세운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채용된 연구자들 가운데 누구를 전임교원을 선택 것인가로 바뀌었다. 학과의 채용 구조가 연구소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연구자 나름대로 고충이다. 서로 다른 전공자들이 모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느꼈던 연구의

인문학의 고른 토양을 만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인문한국사업이 전임확보에 집착하며 또 다른 하나의 '학과' 체제로 가고 있다는 우려감이 연구소에서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돈기성)
희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임교원이 된 동료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해 퇴색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HK연구교수는 “해외학술대회 참가나 답사는 고사하고 연구자료 구입에도 눈치가 보인다. 월급을 줄이더라도 순수하게 연구는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학과에서나 일어날법한 ‘정치’도 작용한다. 연구는 뒷전이고 자리를 위해 보이지 않는 ‘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HK연구교수는 “동료였던 연구자들이 전임싸움을 벌이고 있다. 전임이 되면 비전임 중에 자기와 뜻이 비슷한 사람의 연구주제를 지원해준다. 분과체제의 안 좋은 모습이 인문한국연구소에서도 복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고자 시작한 인문한국사업에 대해 의문점이 제기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4천억 원이 넘는 국고를 지원해 200명의 전임교원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과연 본질적인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임교원 확보가 인문학의 고른 토양 조성과 등질의 것이라는 명제는 결코 증명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기봉 한국연구재단 연구단장은 “인문한국사업은 연구전임교원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학과 소속 교수들은 강의를 하지만 HK교수들은 연구만 한다. 그래서 HK교수에 비중이 갈 수밖에 없다. 연구교수들이 많은 일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은 것은 파악하고 있다. 대학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1, 2, 3단계를 거치면서 성장을 하는 건데, 지금은 씨를 많이 뿌리는 단계지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는 인문한국의 사업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대학 내 ‘연구소’ 중심의 연구체제를 확립해 인문학 연구 인프라 구축 및 세계수준의 연구역량 확보(연구소 소속의 전임교원인 HK교수 제도 확립으로 연구소 내 연구주체 양성). 둘째, 연구소의 연구기능을 강화해 연구 성과의 학문적·사회적 확산 도모 및 세계적 담론의 생산·소통 주도한다는 것이다.

‘교수’ 직함과 ‘정년’ 집착 버려야

이 두 가지 목표가 달성될지는 시간만이 답해줄 것이다. 하지만 HK교수 채용률이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는 인문학연구자들 사이의 건전한 연구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HK연구교수는 “인문한국연구소는 ‘교수’라는 직함과 ‘정년’이라는 유혹을 없애야 한다. 정년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긴 호흡으로 연구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돼야 한다. 동등한 연구원으로 공동 연구를 해야 진정한 인문한국의 의미가 살아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HK교수는 일반 학과의 전임교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전임교원이 된다. 이로 인해 HK교수의 신분을 바라보는 두 가지 미묘한 시각이 파생된다. 기존 학과 전임교수들에게 HK교수는 같은 전임교원이지만 한 등급 아래로 인식되고, 함께 연구를 하던 HK연구교수들에게는 학과의 전임교수 같은 존재로 변이되는 것이다. 학과 전임교수의 시각이야 시간이 지나 연구 성과가 드러나면 해결될 수 있지만, HK연구교수와 생겨나는 갈등의 골은 건전한 인문학 연구풍토를 조성하는데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임제도가 있는 학과 내에서는 창의적 연구가 어렵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인문한국사업이 6년차 반환점을 돌았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이 사업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포스트 인문한국사업에 대한 구상을 하기 위해서, 사업의 큰 틀을 재점검해봐야 할 시기이다. 또 다른 인문학위기 선언이 나오기 전에.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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