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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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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3.09.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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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24) 감기

유례없는 감기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한 도시가 폐쇄된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이 질병은 감염속도 초당 3.4명이고, 치사율은 100%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감기」의 내용이다.

사랑과 감기는 감출 수 없다.『감기의 과학』(21세기북스, 2012, 이하 내용 참조) 저자인 제니퍼 애커맨에 따르면, 인간은 평생 동안 약 5년간 감기로 고생한다. 1년 정도는 끙끙 앓으며 누워 지낸다. 미국인들은 매해 10억 건 감기에 걸린다고 한다.

감기는 최소 200여 가지의 각기 다른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바이러스에 두 번 감염되는 일은 없는데 이로 인해 백신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 우리가 대부분 걸리는 감기의 40%는 리노바이러스(rhinovirus)로부터 비롯된다. 리노(rhino)는 ‘코’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복제는 세포질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핵이 없는 세포에서도 감염이 일어난다고 한다.

감기 바이러스에는 피코르나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5개 科가 있다. 이들 때문에 감기가 발생한다. 리노바이러스 과는 다양한 항체에 대해 반응하는 100여 개의 유전자적으로 구별되는 종을 가졌다. 이들 과는 선호하는 서식지도 다르다. 리노바이러스는 비인강, 파라인 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후두와 기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폐에 서식한다.

감기 증상은 바이러스의 공격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의 반응 때문에 나타난다.『 감기의 과학』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오면 인체 세포는 사이토카인(cytokine)을 분비한다. 사이토카인은 백혈구를 움직여 병원체를 물리친다. 또 다른 사이토카인은 세포와 조직에 염증을 일으켜 콧물과 기침을 유발한다. 바이러스가 인두로 들어오면 인두 세포는 키닌을 생산한다. 키닌은 신경 섬유를 자극해 목이 건조해지고 따끔거리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 코로 확장돼 콧물이 흐른다. 이러한 인체의 반응은 질병의 증상이 된다.

평생 1년간 앓고, 5년간 감기로 고생

사람은 보통 하루에 수십, 수백 차례 이상 얼굴을 만진다. 그 사이 손과 눈과 코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된다. 바이러스는 코 속의 끈끈한 장벽을 통과해 목구멍 뒤쪽에서 아데노이드라는 림프선을 타고 이동한다. 그 후 숙주에 침입해 유전물질인 RNA를 분비하여 증식한다. 이때 인체 세포는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해 주변 세포들까지 감염시킨다. 이 단계는 목이 간질거리는 증상이다.

숨 쉬기 힘든 느낌은 과다 분비된 점액 때문이 아니라 부어오른 비개골 때문이다. 비개골 혈관은 하나씩 교대로 붓는다. 그래서 콧구멍 한쪽은 늘 다른 쪽에 비해 유통량이 적다. 따라서 코를 아무리 풀어도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감염 후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콧물과 재채기가 시작된다. 감염 2~3일 사이가 전염력이 가장 강하다. 하버드메디컬스쿨은 감기에 대한 10가지 잘못된 상식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백신 주사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 백신은 비활성화된 바이러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감염을 시키지 않는다. 백신 주사를 맞고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은 어쨌든 감기에 걸릴 사람들이었다. 현재 가이드라인은 6개월에서 19세 사이 아이들, 임산부, 49세 이상의 사람들은 예방접종 받기를 권고한다. △감기 증상이 없으면 바이러스를 전염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유행성 감기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몸에 있는 사람들 중 20∼30%는 아무런 감기 증상이 없었다. △찬바람을 쐬거나 젖은 머리채로 돌아다니면 감기에 걸린다? 감기 시즌과 차가운 날씨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일 뿐 차가운 날씨는 상관이 없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노출됨으로써만 감기에 걸린다.

증상 없어도 바이러스 전염 가능해

리노바이러스와 같이 독성이 약한 바이러스도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기 바이러스 감염 시 아포토시스(apoptosis, 괴사나 병으로 세포가 죽는 necrosis와 다른 개념)의 메커니즘으로 기도 아래쪽으로 몰아낸다.

이는 바이러스가 증식하거나 염증을 촉진하는 화학물질이 분비되기 전에 일어나며 죽은 세포들은 백혈구의 먹이가 된다. 하지만 천식환자 중 일부는 감염된 폐 세포가 아포토시스의 작용을 받지 못해 바이러스가 세포 내에서 맹렬히 증식한다. 이는 천식을 유발하는 백혈구를 더 많이 모으고 염증을 촉진하는 화학물질을 대량 생산해 심한 천식 발작을 일으킨다.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는 바이러스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박테리아조차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모든 생명체는 공생하며 한쪽이 우세 시 한쪽은 도태한다. 오늘날 지구를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이러한 도태의 결과물들이다. 그들이 환경에 적응한 것은 경쟁에서의 진화였다.

어린 시절 가벼운 리노바이러스에 자주 감염되면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력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2009년 H1N1이 대유행할 때 감기가 H1N1을 지연시켜 목숨을 구했다. 리노바이러스가 유행해 플루가 잦아든 ‘바이러스 간섭’이다. 지금 걸린 감기 바이러스가 미래에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한 적응을 줄지 모른다. 감기와 함께 진화하는 인간의 역설 아닌가.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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