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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론의 한 조각
제자론의 한 조각
  • 이수정 창원대·철학
  • 승인 2013.09.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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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뉴욕에 있는 친구 H와 긴 통화를 했다. 이 친구의 여러 이야기들 중 하나가 가슴에 남아 마치 하나의 숙제처럼 나를 긴장시켰다. 그것은 “선생이란 자는 적어도 자기에게 혹한 제자 한둘은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평생을 강단에서 지내온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그냥 예사로 들리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에게도 하나같이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있어 그 스승도 비로소 스승인 그가 될 수 있었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

예컨대 예수에게는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가, 붓다에게는 초전법륜을 들은 다섯 제자를 시작으로 아난, 가섭, 사리불 등등 십대 제자가, 그리고 공자에게는 안회를 비롯, 유약, 자공, 증삼 등등 역시 무수한 제자가 뒤를 따랐고, 소크라테스 역시 플라톤을 위시해 크리톤, 크세노폰 등등 수많은 제자들이 그 주변에 있었다.

기묘하게도 그 스승들은 한결같이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이 남아서 2천 년 넘게 인류의 귀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다 그 제자들 덕분이었다. 예술의 말과 행적을 전하는 이른바 복음서들도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등 제자 그룹에 의한 것이고, 소크라테스의 그것은 전적으로 플라톤의 문재 덕분이며, 불경의 첫 구절 ‘如是我聞’과 『논어』의 첫 구절인 ‘子曰’ 또한 그것이 제자들에 의한 것임을 잘 알려준다.

나는 최근에 철학자 레비나스에 관한 저서 하나를 번역했는데, 이 책에서도 슈샤니와 레비나스, 그리고 레비나스와 저자 본인의 관계를 소재로 제법 긴 사제관계론이 전개돼 있었다. 이런 이야기에서 하나같이 공통된 것은 그 스승들에게 우선 ‘뭔가’가 있어서 그것이 제자들을 속된 말로 ‘뿅가게’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제자들이 그것을 부풀리든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지는 이 세상에 ‘퍼트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어 이것을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다.

경우의 수는 여러 가지다. 제자가 스승 못지않은 역량이 있으면 독립해서 일가를 이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러셀의 제자였던 비트게슈타인, 후설의 제자였던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가다머 등도 모두 그런 경우다. 또는 칸트나 헤겔 등처럼 뚜렷한 제자 없이도 그 저작을 통해 충분히 사표가 되는 경우 또한 무수히 많다.

 어쨌든 간에, 훌륭한 제자를 갖는다는 것은 무릇 ‘가르침’이라는 것을 인생의 일부로 영위한 자에게는 더할 수 없는 복이 아닐 수 없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가 군자삼락의 하나라는 맹자의 말도 그런 뜻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 역도 또한 마찬가지다. 배움의 과정을 겪는 자 중에 ‘스승’이라 할 만한 분을 단 한 명이라도 가졌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천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과연 어떤가. 나는 과연 스승이라 할 만한 분이 있었던가. 나는 과연 제자라고 할 만한 녀석이 있었던가. 아니 무엇보다도 나 자신은 스승이라고 할 만한 그 ‘뭔가’를 갖고 있는가.

생각은 꼬리를 물고 여기저기를 짚어보게 한다. 모두 다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급한 결론을 내지는 말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듯이 거대한 뭔가를 움직이는 힘은 항상 우리 인식의 저편에 있다. 스승과 제자, 가르침과 배움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다. 원인이 될 만한 뭔가만 정말 있다면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그 결과도 반드시 만들어진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생겨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니 기다려보자.

우선은 그 ‘뭔가’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모자란다면 다음의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어렵다. 우리 시대에 그 ‘뭔가’를 가진 누군가가 있는지도 기다려보자. 아직은 모른다. 그것이 전 산란한 전파들의 장난질 속에, 마치 심해의 조가비 속 진주알처럼 그 영롱한 빛을 간직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 이 글은 이수정 교수가 펴낸 『인생론 카페』(철학과현실사刊, 269쪽, 12,000원)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철학과 문학을 넘나들며 사유하는 그는 지금 보스턴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으며, 수록된 많은 글은 보스턴에서 영근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수정 창원대·철학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는 『하이데거-그의 생애와 사상』, 『본연의 현상학』 등이 있으며, 譯書로서는 『근대성의 구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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