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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非世說_ 웰 다잉(well-dying)
是非世說_ 웰 다잉(well-dying)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09.02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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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죽음을 수락함으로써 더욱 풍부해진 삶에 대하여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됐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복지연구자로, 가족의 臨終심리학을 연구한 릴리 핑커스(Lily Pincus, 1898~1981)가 남편의 존엄사를 체험하며 쓴 기록의 한 대목이다. 근자에 ‘잘 죽는 것,’ 즉 웰 다잉(welldying)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으나, 이게 인간의 죽음과 관련해 갑자기 대두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이런 방편의 죽음이 권유되고 있었다.

인간이면 누구든 다 죽는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이기에 답답하다. 죽음은 생물학적으로는 숨이 멈추고 육신의 활동이 정지하는 것, 곧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단순히 생물학적으로만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인간역사 이래 지금껏 이어져 왔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관점만 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해 두려워 한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곳이 아닌가. 이런 처지에서 추구되는 것이 웰 다잉이다.

핑커스는 사랑했던 남편 죽음의 체험을 바탕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의 할 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그녀가 펴낸 『가족과 죽음(Death and the Family)』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남편 프리츠는 이미 많이 진행된 암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곧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고통스러운 수술과 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마지막 밤이 되자 그는 내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하자,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 이제됐어.’ 그는불과몇시간후에매우편안하게숨을거뒀다. 나는 평화로운 그 마지막 순간을 프리츠와 단둘이 보낼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늘 감사하게 될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잘 죽으면 죽음과 죽음 후 미지에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없어질 것이다. 편안하게 죽기 위해서는 우선 고통이 없어야 할 것이다. 병으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육신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웰 다잉에서 말하는 죽음에 직면한 육신의 고통은 생명연장을 위한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의한 것이다. 이 고통을 줄이든가 없애야 한다. 이런 고통이 안긴 죽음은 본인이나 주변이나 모두 비참하고 비극적이고, 또 한편으론 비경제적이다.

이런 고통을 없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 마지막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다. 최선의 의학치료를 다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의학적 치료가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 편안한 죽음을 위해서는 ‘마음의 빚’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인간이기에 어렵다. 이는 살아 있을 때 한 언행과도 연관이 있는 만큼 올바르게 잘 살아야 하는 전제와 함께 살면서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런 관점에서 웰 다잉은 죽음에 임박한 문제만은 아니다. 평소 살적에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는 ‘잘 사는 것’, 즉 웰 빙(well-being)에 연계된다. 말하자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둘은 살고 죽는다는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기에 웰다잉은 웰빙에 속하는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삶속에서 죽음을 준비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근자에 유서를 미리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데, 수긍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무엇이고,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를 깨닫게 될 것이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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