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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대회] 한양대 국제문화센터 등 공동 주최 ‘젠더 연구국제 심포지엄 2002’
[학술 대회] 한양대 국제문화센터 등 공동 주최 ‘젠더 연구국제 심포지엄 2002’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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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9 14:45:46
‘여성성은 가면극’이라는 라캉의 정의는 자신의 언어, 자신의 기표를 가지지 못하는 여성을 함축한다. 언어는 근본적으로 ‘남성적인’ 것이기에 여성에게 남는 것은 ‘침묵’과 ‘신체’ 그리고 ‘위장’이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그런데 잉에 슈테판 독일 훔볼트대 교수는 묻는다. ‘남성성은 가면극인가?’ 전도된 질문 사이에서 여성성 뿐만 아니라 남성성에도 강요되고 있는 폭력적 현실을 읽어내는 시도를 감지할 수 있다. 이처럼 여성만을 억압된 제도의 피해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차 구분 자체가 가지는 구조적 억압을 분석해내려는 시도가 준비되고 있다.

젠더 연구 메카 훔볼트대 교수들 참여

9일부터 나흘동안 서울대와 이화여대를 비롯한 4개 대학에서 열리는 ‘젠더 연구 국제 심포지엄 2002’는 이런 젠더(Gender) 연구의 면면들을 보이기 위해 기획됐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여성학이 어느 정도 한국 학계에 자리를 잡았다면, 젠더 연구는 이제 수면위로 떠오르는 학문분야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탁선미 한양대 교수(독문학)는 “여성학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연구를 한다면, 젠더 연구는 성으로 규정된 모든 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 다르다”라고 설명한다. 즉 젠더 연구는 여성성 뿐만 남성성 또한 연구 대상이 되며, 성차 구분 이전에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연구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우연한 기회에 준비됐다. ‘젠더 연구’를 번역하던 4명의 번역자들이 필진들과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던 중, 잉에 슈테판 독일 훔볼트대 교수와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훔볼트대 교수가 한국에서 젠더 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해 논의를 확장시켜보자는 안을 냈던 것. 슈테판 교수와 폰 브라운 교수는 독일어권 젠더 연구의 메카로 알려진 베를린 훔볼트 대학 ‘젠더 연구’ 전공 주임교수이다. 이에 서울대 독일문화권연구소와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독어독문학과,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중앙대 사회학과, 숙명여대 독일어권센터, 성신여대 독어독문학과·여성학과가 합류했다. 젠더 연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논의의 장을 만나자 그야말로 봇물을 이룬 것이다.

이번 행사는 크게 두 개의 심포지엄과 대학별 세미나로 나눠진다. 9일에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형상, 언어, 젠더, 정체성’을 주제로, 12일에는 이화여대 LG 컨벤션홀에서 ‘지구화 시대의 젠더, 민족국가 그리고 재현의 정치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진행된다. 전자가 젠더 형성의 역사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성적 이미지의 재현 방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또한 10일과 11일에는 한양대, 중앙대, 숙명여대에서 대학별 세미나가 준비돼 있다.

인식론적 딜레마 극복하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우선은 문화연구적 성격을 가진 젠더 연구가 미시역사적 상황을 분석해 내는 방법. 폰 브라운 교수의 기조 강연 ‘젠더, 성, 역사’에서는 남성, 여성 구분의 성차가 어떻게 인위적인 방식을 통해 강압적으로 진행됐는 지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분석할 예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해체가 가지는 인식론적 딜레마를 극복하는 현실적 방법이다. ‘중심을 해체하자’는 이론 역시 중심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딜레마를 벗어나려는 시도도 함께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영나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의 ‘모던하기: 한국 근대시각미술에 재현된 신여성’과 오누키 아츠코 일본 카큐슈인대 교수(독문학·젠더 연구)의 ‘젠더와 역사서술: 일본의 교과서 논쟁을 예로’에서는 중심부의 논의를 자신의 토대에서 다시 점검하는 글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여성학)의 ‘지구화 시대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비롯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여성성의 재현 방식에 대한 논문도 준비돼 있다.

이처럼 젠더 연구를 통해 그것의 허구성을 밝혀 낸다면, 그 이후 인식의 기준을 새로이 설정하는 것이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탁선미 교수의 말을 빌어보자면 “지금의 젠더 연구의 단계는 강압성, 억압성, 인위성을 밝히고 와해시키는 과정”이다. “성급히 새로운 이미지를 찾기보다는 한 인간이 자유롭게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각 학문분야, 문화양식, 담론의 하부텍스트로 내재된 ‘성범주’의 이해방식과 양성관계의 질서에 관한 논리·코드 분석을 목표로 하는 젠더 연구가 한국학계에서 확장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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