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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발견? 마음의 작동을 모른다는 것뿐”
“인지과학의 발견? 마음의 작동을 모른다는 것뿐”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8.28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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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포더 러크거스대 교수, 스티븐 핑커의 인지과학 패러다임에 포문

“인지과학이 마음에 대해 발견한 것이라고는 대개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른다는 것뿐이다. 인지과학의 현 상황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부터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2007년 국내에 번역 소개돼 화제를 일으켰던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의『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동녘사이언스)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주인공은 제리 포더 러트거스대 교수. 1960년 프린스턴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제리 포더는 1993년 심리인지철학 분야에서 수여되는 제1회 장코니상, 2005년 이탈리아 토리노과학기술대 인지과학센터의 ‘마음과 뇌’상을 받은 인지과학자다. 계산주의 마음을 발전시키고, 모듈성 이론을 제안한 인지과학계의 살아있는 거장은 이번에 출간한『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알마 刊)를 통해 동료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마음은 연산체계가 아니다

제리 포더 교수는 매우 논쟁적인 태도로 기존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을 비판한다. 1960년대 앨런 튜링의 제안 이래 인지과학 연구의 기본 토대가 돼 온 ‘심적과정=계산’이라는 관점에 대한 근본적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계산주의 마음 이론이 가정하는 것처럼 인간의 인지가 통사론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 제한된 요소와 이를 관장하는 유한한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기계’라기 보다는 어떤 현상이 주어졌을 때 그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순한 가설을 전체적 맥락에 의존해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귀추 추론인 셈.

귀추 추론은 맥락 민감성을 명백히 드러내기 때문에 계산주의가 내세우는 국소적 계산 기계인 ‘모듈’과 근본적으로 부딪힌다고 저자는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역설계’(대상을 분해하고 구조를 분석한 설계로 거꾸로 파악해올라가는 기법)를 통해 마음이 진화됐다고 설명하는 핑커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핑커는 모듈체계에 대해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동녘사이언스, 2008)에서 이렇게 밝혔다.

“마음은 뇌의 활동인데,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사고는 일종의 연산이다.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인 마음 기관들로 구성돼 있으며, 모듈은 이 세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를 갖고 있다. 모듈의 기본 논리는 우리의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지정된다. 이러한 모듈들의 작용은 인간의 진화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시기에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다양한 문제들은 사실 그들의 유전자가 직면했던 하나의 큰 문제, 즉 사본의 수를 최대한 늘려 다음 세대에 남기는 문제의 부차적 과제들이다.”

마음을 연산 체계로 정의한 핑커 교수. 마음을 추상적인 심리 현상이 아닌 과학적인 방법, 추론, 실험을 통해 이해하기 위해 도입된 이론이 바로 계산주의 마음 이론이다. 지금까지의 인지과학의 입장으로는 마음의 작동 방식을 정보처리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컴퓨터처럼 인간의 마음도 입력장치, 기억장치, 중앙처리장치, 출력장치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이론이다.

계산주의 마음이론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데서 포더 교수의 반론이 학계에 일으킬 파장은 적지 않아 보인다. 튜링의 고전적 계산주의는 여러 차례 수정, 보완돼 초기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심적 과정이 곧 계산’이라는 핵심적 가정은 지금까지 국내 인지과학계에서도 가장 존중할만한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핑커 교수의 ‘신종합설’(계산주의, 대량 모듈성 논제, 적응주의를 세 축으로 하는 이론)을 활발히 연구하는 국내 인지과학계의 현실에서 증명된다. 신종합설은 계산주의가 가정하는 국소적 통사기계인 모듈 개념을 구조하기 위해 ‘다수의 모듈’을 상정하는 이론을 내놓고, 다시 이 다수의 모듈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것이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포더 교수는 계산주의 마음이론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이들 신종합설의 세 축을 하나씩 공박해나가고 있다.

저자는 핑커 교수의 신종합설은 촘스키가 제안한 합리주의적 인식론과 마음의 계산에 대한 통사론적 개념을 합친 결과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전통적인 합리주의처럼 선천적 내용물을 강조하면서도 마음의 설계구조는 계산적이라는 튜링의 개념을 합친 핑커의 신종합설은 적응주의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큰가시고기의 예를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인공지능의 실패를 고전적 계산주의 마음 이론의 실패로 인정하지 않는 인지과학계의 태도와 귀추추론을 증명해내지 못하는 현 인지과학 이론, ‘ 인지구조는 다윈론적 적응의 산물이어야 한다’는 가정 등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사고언어’

사실 포더 교수는 인지과학을 크게 두 번 혁신한 인물이다. 우선 그는 계산주의 마음이론을 발전시키고 옹호했다. 그는 사고과정을 계산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마음속에 본유적인 ‘사고언어’(language of thought)가 있다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했다. 또한『The Modularity of Mind』(1983, MIT press) 등의 저작을 통해 인지과학자들로 하여금 모듈성에 주목하게 했다. 인간의 많은 인지과정들이‘모듈’이라고 불리는 여러 개의 국소적인 단위로 나뉘어 있다는 흥미로운 제안은 인지과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역설적으로 과거에 저자 스스로가 옹호하고 제안했던 계산주의와 모듈성 이론을 모두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 이론적 배경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핑커 교수를 비판하고 있다. 인지과학계의 거장이 자기반성적 성찰로 현 인지과학계에 던진 대담한 논제에 핑커 교수와 인지과학자들이 어떤 대답을 보일까 궁금하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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