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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기성회비에 대한 불편한 진실
국립대 기성회비에 대한 불편한 진실
  • 반상진 전북대·교육학과
  • 승인 2013.08.2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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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에게 부담 떠넘겼던 정부 ‘정책적 의지’ 있는가

 

반상진 전북대·교육학과

2012년 1월에 이어 올해 8월 21일에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법적 근거가 없는 국립대 기성회비를 부당이득으로 판결했다. 동시에 교육부도 지난 7월 25일 열린 국공립대 총장 회의에서 국립대 교직원에 대한 ‘기성회계 급여보조성 경비’ 지급 관행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립대 교직원 기성회비 수당 지급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기성회비로 주던 국립대 직원들의 수당을 올해 9월부터 없애고, 교수들에게도 그동안 기성회비에서 정액수당으로 지급하던 것을 연구 성과에 따라 기성회비에서 차등 지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따르지 않는 국립대에는 행·재정적 제재를 내린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기성회비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이 소송의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 인건비 부분부터 손을 대기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적 근거 없이 교육부의 훈령에 따라 회비를 거두는 건 부당하다는 법리적 판단, 기성회비가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감사원의 지적, 기성회계가 국립대학 등록금 인상의 주범이라는 사회적 여론 등으로 국립대가 유사 이래로 최대의 재정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기성회비와 관해서는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설립주제인 국가가 손을 놓고 있으면 국립대 입장에서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첫째, 국립대는 정부 재정지원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1963년 예전의 문교부 훈령에 의해 후원회 성격의 민간단체인 기성회를 운영해 왔고, 이들을 통해 국립대는 입학금과 수업료 이외에 기성회비를 걷어왔다. 국립대는 싼 수업료를 보전하기 위해 주로 학부모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기성회비를 걷어 교수 연구비와 직원 수당에 충당해왔다. 기성회비는 정부가 부담해야 할 대학 지원금을 학부모에게 떠넘겼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실제로 설립주체인 정부가 국립대학에 최소한의 인건비와 시설비 및 운영비 등만을 지원한 결과, 국립대 총세입 중 등록금 수입(수업료와 기성회비)이 차지하는 비중은 41.2%이었고, 기성회비 수입은 35.5%이었다. 미국 공립대학의 총 세입 중 등록금이 차치하는 비중이 19% 내외임을 고려할 때, 우리의 국립대는 재정구조면에서 국립대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지난 50년 동안 정부의 부족한 재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기성회제도가 지금에 와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것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국립대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둘째, 기성회회계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기성회회계의 운영 개선은 필요하지만 내면을 보면 상황은 다르다. 기성회회계에서 기성회 직원(계약직 포함)의 인건비 비중은 약 15% 내외다. 국립대 운영인력은 국가공무원이어야 하지만 재정 부족으로 기성회계로 고용한 것이다. 실제로 2012년을 기준으로 기성회비로 지급한 급여 보조성 경비는 교원(1만4978명)이 2천301억 원, 공무원 신분의 직원(6천103명)이 559억 원이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교직원 1인당 연간 900만∼1천500만 원을 기성회비에서 준 셈이다.

국고급여와 기성회계 수당을 합친 국립대 교수 연봉이 수도권 사립대 교수 연봉의 60~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든 국립대가 이번 교육부 지침을 준수할 경우 학생 1인당 연간 10만2천 원 정도 등록금이 인하될 것으로 추산된다. 인하율로 따지면 2.5% 정도다. 기성회계에서 불요불급한 지출은 없애고 운영 개선은 필요하다. 필요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 70~80%의 기성회비는 고스란히 운영비로 들어간다. 따라서 현재의 재정구조에서 기성회계를 대책 없이 없앤다면 국립대는 파산한다. 국립대가 기성회비로 인건비 잔치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국립대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셋째, 교육부의 대응 전략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교육부는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 지표에 기성회회계 건전성 지수를 포함시켜 운영 개선을 유도하고 있고, 더 나아가 국고회계와 기성회회계를 교비회계로 통합하는 ‘국립대재정회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립대 기성회비 문제는 반값등록금 문제와 연동돼 있다. 일반회계와 기성회회계를 일원화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동일한 수준의 등록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립대 총장에게 지나친 재정 자율권을 부여하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립대 총장은 총액으로 지원받은 국고지원금을 자체 판단에 따라 관리·운용할 권한이 생기는 것이다. 즉 국립대도 사립대처럼 적립금 이월이 가능해지고 수익사업도 벌일 수 있다. 예산이 부족하면 외부차입도 할 수 있다. 사실상 국립대가 아닌 사립대 재정운용방식이 도입되는 것이다.

법적 근거 없이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던 기성회비 폐지는 합당하다. 하지만 국립대 재정회계법 제정은 근본적인 대안도 아니고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 국립대 기성회회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설립 주체인 정부 지원의 열악성에 있기 때문에 국고지원 확대를 위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나 ‘국립대학지원특별법’ 등과 같은 재원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본질이다. 9천억 원 정도 추가 지원하면 국립대 등록금 수준은 50% 정도 인하할 수 있음이 현실이다.

교육부가 지난 7월 31일에 ‘지방대학 육성 방안(시안)’을 발표함으로써 지방 소재 대학 육성 의지를 보인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지방에 소재하고 있는 국공립대학에 대한 별도의 방안이 없고, 오히려 기성회계 급여보조성 경비 지급을 금지하는 등 국공립대학에게는 가혹한 조치만이 제시되고 있다. 국립대학은 기초·보호학문분야는 물론 미래 성장동력인 첨단학문분야의 교육과 연구에 대한 교육적 책무가 있다. 그리고 경제적·사회적 소외계층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교육의 지역균형 발전을 선도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설립주체인 교육부가 기성회회계 문제를 기점으로 정책적 의지를 보여줄 때다.

반상진 전북대·교육학과
미국 위스콘신대(메디슨)에서 박사를 했다.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위원, 교육부 학부교육 선도대학사업 중간평가 위원장,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 편집위원장, (사)교육연구네트워크 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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