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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문가’ 남편이 떠난 자리 그리고 家訓
‘에너지 전문가’ 남편이 떠난 자리 그리고 家訓
  • 교수신문
  • 승인 2013.08.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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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남편이 가족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먼 길을 떠난 지도 어느 새 4년이 지났다. 남편은 직업공무원으로서 2009년 1월 이명박 정권의 에너지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맡은 지 열흘 만에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그 때의 슬픔과 당황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평소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날리는 성격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동안 남편은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는 타고난 건강체질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터라 그렇게 갑자기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날 줄은 정말 몰랐다.

구정 연휴의 끝자락이었지만 새롭게 중책을 맡은 남편은 오전에 직장에 출근했다가 저녁을 먹고 내가 다림질을 하는 동안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피곤하다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5분 뒤에 하던 일을 마치고 안방에 들어가 보니 남편의 몸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편은 입에 거품을 물고 의식을 잃은 채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급하게 119를 불러 집에서 가까운 삼성의료원에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이미 늦었던 것이다.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나름대로 믿음 좋은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던 나도 “하나님! 왜 하필이면 27년 동안 에너지 정책 전문가로서 수고했던 그 사람이 나라를 위해 더 큰 포부를 펼쳐보려는 이 시기에 그를 데려갔습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터져 나오는 원망을 막기 위해 내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난다. 조금 전까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의 몸에서 어느새 온기가 빠져 싸늘하게 식어가는 육체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던 기가 막힌 현실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하며, 죽음은 우리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틈만 나면 소리 없이 다가와 어느 새 우리의 육체를 점령해 버리는 유령과 같은 존재임을 실감하게 됐다.

Memento Mori! 죽음이 우리를 부를 때에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며, 다 놓고 떠나야 하는데 왜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그리고 아무리 건강을 타고났더라도 자신의 몸을 돌보고 보호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왜 그리 무시했는지? 남에게는 너그러웠지만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성향을 가진 남편은 완벽주의자이자 워커홀릭으로서 휴식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처 내에서 ‘마당발’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남편은 다른 부처나 국회 등 외부 기관과의 갈등이 있을 때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쉴 수가 없어서 계속 앞으로 질주하던 차의 브레이크처럼 파열해 버렸던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나의 늦은 공부로 인해 40대 중반에 낳은 아들 주영이가 이제 10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새벽에 출근해 밤에 퇴근했기 때문에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울리면서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던 남편이었지만 부처내 사자모(40대에 자식을 가진 부모의 모임) 회장 역할을 맡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 ‘유태인의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아쉬워하던 많은 사람들은 남편이 열정, 배려, 겸손의 사람이라며 우리 가족을 위로해 주었지만 정작 아들 주영이의 아빠에 대한 추억이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슴 아팠다. 특히 자라나는 아들에게 롤 모델로서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주영이가 자랄수록 아빠의 빈자리가 더욱 커질 것이 안타까웠다.

주영이에게 훌륭한 아빠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생각하다가 남편은 경제부처에서 27년간 공무원으로서 성실히 일했고 사회 친구, 학교 친구들도 많으니 남편에 대한 추억과 에피소드를 가진 친구, 동료, 선후배 등의 글을 받아 문집으로 만들면 주영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그 문집에 나타난 남편의 모습은 우리 가족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모습의 남편과 아빠가 아닐까 기대됐다. 기념문집 제작을 위해 도대체 누구에게 남편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해야 할 지 고민이 됐지만 남편과 절친했던 직장 후배의 도움을 받아 기념문집 간행 취지에 대한 장문의 편지를 친지들에게 보냈다.

다행이 남편 사망 2년 만에 남편을 알던 80명의 지인들로부터 글을 받아 『열정의 에너지가 영원한 사랑으로』란 제목의 기념문집을 만들 수 있었다. 처음 계획과 달리 남편의 일생을 사망 시점부터 거꾸로 구분해 영결식 장면, 선배, 동료, 후배, 사회친구, 대학친구, 고향친구, 가족들의 순서로 목차를 정했다. 책의 내용에서 우리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치밀한 업무계획, 미래를 보는 통찰력, 애국심, 약자를 위한 배려와 포용력, 겸손한 성품, 굳은 의지 등이 글 도처에 숨어 있다가 책을 읽는 도중에 슬그머니 빠져나와 때로는 웃음과 감탄과 탄식과 자부심 등으로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남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돼 기뻤고, 아빠의 성품과 꿈과 비전을 아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어 보람 있었다. 살아생전에 남편은 자신을 ‘잡초’에 비유했다. 충청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까 생각해 보니 그 말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남편이 말하는 ‘잡초’의 의미는 땅바닥에 짓밟히는 보잘 것 없고 무가치한 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도 잘 적응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의미하고 있다. 남편은 어떤 상황에서도 탁월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정을 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아갈 것과, 사소한 일이라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후에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 스트레스를 풀 수가 없었으며, 일의 우선순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나는 남편의 생각을 정리한 후 성경적인 관점에서 우리집 가훈을 재창조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섬기며, 그 후에 꿈을 크게 가지고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이 너를 높이시리라.’

□ 지난호에 예고해드렸던 정철웅 교수는 踏査가 겹쳐 이명희 교수로 필자가 변경됐습니다. 다음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 필자는 이종화 연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입니다.

 


이명희 상명대·문헌정보학과
필자는 위스콘신대(메디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명대 도서관장을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문헌정보학 연구방법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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