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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이룩된 그의 업적을 넘어서러면
60년 전 이룩된 그의 업적을 넘어서러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8.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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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_ ‘석주명’과 ‘濟州學’ 고민한 어떤 글

근대서지학회가 펴내는 반년간지 <근대서지> 제7호 특집은 ‘한국전쟁과 1950년대’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은 ‘石宙明’의 학문을 끈질기게 탐색해온 인류학자 전경수 서울대 교수의 글 「石宙明의 非命橫死와 學界 損失―‘육이오’ 정전협정 60주년의 회고」이다. 전 교수는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학자 석주명(1908~1950)의 비명횡사가 학계의 크나큰 손실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석주명의 학문세계를 짚어가면서 그를 ‘곤충학자’에서 ‘제주도학’의 시발점으로 자리매김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 학자의 생애를 조감하면서 그의 학문세계를 읽어낸 그의 안목, 그리고 그 시선의 대상이 된 선배 학자의 학문적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그의 글을 발췌했다.

110편의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석주명은 우리나라 지도 250장 및 세계지도 250장을 제작했고, 그에 준하는 나비분포도도 작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9·28수복 당시 인천으로부터의 함포사격으로 인해 남산의 국립과학박물관이 직격탄을 받았고, 그로 인해 석주명의 자료는 소산돼 버렸던 것 같다. 그로부터 일주일여 뒤, 그도 불귀의 객이 돼 버렸다. 석주명과 석주명이 남긴 자료들의 손실은 한국전쟁이 남긴 최대의 학계비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석주명의 학문은 나비에서 시작해 나비에서 끝이 난다.

그의 나비들은 두 번이나 불 맛을 보고 사라졌다. 한번은 석 선생이 스스로 화장했고, 다른 한번은 전쟁 중에 소실됐다. 에스페란토는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학회를 구성해 현재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스로 ‘나비박사’라고 자칭한 곤충학자 석주명 학문의 역정 과정에서 ‘濟州道學’은 자생적으로 태생됐다. 에스페란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외국어 그것도 만국 공용어로서의 외국어를 배움으로써 식민지 시대 일제의 질곡을 벗어나 보려는 의지의 발로와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비학과 에스페란토는 그가 남들로부터 내용과 방법론을 배워서 전개한 것이지만, 제주도학은 석주명이 스스로 개척했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그의 제주도학은 ‘방언’과 ‘민속’을 주축으로 하고, 제주도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제주도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지역연구라는 개념이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에 그는 이미 특정 지역에 대한 학문의 틀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용어에 걸맞는 작업을 부지런히 함으로써 후학들이 가야 할 길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제주도학이 제대로 과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후학들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의 제주도학은 자연과 인문을 두루 섭렵하는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민속학에서부터 언어학과 비교언어학적 관심 그리고 인구학과 여성학에 관한 관점도 제시됐다. 물론 그의 전공분야인 곤충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자료를 축적했으며, 제주도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광범위한 문헌자료들을 수집한 것은 제주도학의 기초를 닦으려는 의지였다고 생각된다. 요즈음 학문활동의 범위와 비교한다면, 불과 2년 동안에 그가 전개했던 제주도학은 그야말로 제주도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2년 동안에 수집한 제주도학의 자료들은 양에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질에 있어서도 수작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제주도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분야가 망라된 석주명의 제주도학은 學際的인 자질을 충분하게 구비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제 나에게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제주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의 열정과 축적된 자료들을 어떻게 하면 횡적으로 연결해 통합과학의 모습으로 濟州學을 전개할 것인가의 문제에 걸려있다. 石宙明式의 濟州道學에서 綜合科學的인 濟州學으로 이전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의 과정은 모두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육십 년 전에 이룩된 석주명식 제주도학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작업에서 맴돌게 될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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