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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동독 출신 소설가 …“우리는 우리 삶에 관한 소설이 필요하다”
舊동독 출신 소설가 …“우리는 우리 삶에 관한 소설이 필요하다”
  • 서장원 고려대·독일문화학과
  • 승인 2013.08.20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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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만해대상 수상작가 잉고 슐체의 문학세계

“통일 후 독일의 작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지난 11일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2013 만해대상 시상식에서 독일 소설가 잉고 슐체(52세, Ingo Schulze·사진)가 문예부분 만해대상을 수상했다. 만해대상은 승려이자 시인이고 독립 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평화 평등사상을 기리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올해부터 동국대와 공동주최)가 매년 국내외의 저명인사들에게 수여하는 국제적인 상이다.

동서독 통일과 새로운 인간상 주목

잉고 슐체는 동독과 서독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통일 과정과 통일 후에 발생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가장 적절히 파악하고 진단한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양철북』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잉고 슐체야 말로 이 시대의‘대단한 이야기꾼’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또 독일의 어느 비평가는 잉고 슐체야 말로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도 학수고대했던 독일통일을 드디어 소설화했다고 감격해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증명하듯 잉고 슐체는 알프레트 되블린 창작 지원상, 페테-봐이스 상등을 수상했고, 올해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잉고 슐체의 문학은 대부분 동서독 통일과정과 통일 후의 변화모습을 주제로 삼고 있다. 잉고 슐체는 통일로 인한 전환기, 통일 후의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소설화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분단으로 인해 숙명적으로 제약 받을 수밖에 없었던 서독이나 동독의 어느 한편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과거 동독이나 서독의 체제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나 통일로 재구성된 새로운 사회와 인간들을 주목하고 있다.

전환기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 그에 속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물론 그들의 환경 및 시각이 변한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독일 통일 후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과거 공산주의 체제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졌던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지위를 잃었다. 과거 동독 사회를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다면 이제 더 이상 이데올로기는 설자리가 없어졌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자리에는‘돈’,‘ 성장’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채웠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숫자, 즉 돈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것이다. 과거에는 공산당 서기장인 에리히 호네커에 대해 입도 뻥끗 못했다면, 통일로 재구성된 새로운 사회에서는 수상인 앙겔라 메르켈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욕을 해도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하지만 직장 상사나 사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새로운 구조가 탄생했다. 사회가 변했다기보다는 주인이, 즉 종속관계가 변한 것이다. 이제는 이데올로기가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 되고 인간은 그것의 노예가 됐다.

잉고 슐체는 독일이 근본적으로 통일이 성취됐다고 보지 않는다. 통일이 아니라 동독이 서독에 편입됐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됐을 때 서독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동독인들에게는 모든 것의 마지막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음식도, 옷도, 돈도, 거리 이름도, 공기도 사랑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쪽은 아무 변화가 없는데 다른 한 쪽은 공기와 사랑까지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A와 B가 있을 때 A와 B가 서로 합해서 C가 되는 것이 통일인데 A는 여전히 존재하고 B가 사라진 것을 보고 어찌 통일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잉고 슐체의 견해다.

잉고 슐체는 통일을 대표하는 작가다. 하지만 잉고 슐체의 고귀한 문학성은 분단국가에서의 일상사, 분단 상태, 동독붕괴 및 통일과정, 통일 후에 발생한 새로운 사회문제들 및 이에 따른 인간심리 변화 등을 소설화함에 있어서 주제가 태생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무거움에 억눌리지 않고‘물방울 속에서 세상을 보는 행위’처럼 자기만의 독특하고도 새로운 예술성을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만해대상 수상을 위해 이번 한국을 찾았을 때 어느 기자가 ‘당신의 작품은 통일에 관련 된 것만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심플 스토리』, 『아담과 에블린』등 몇 편만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과연 통일이 없었다면?’이라고 기자가 질문하자 ‘그러면 평범하게 사랑과 죽음 등’에 관한 것만을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만해대상 수상연설에서 “우리는 우리 삶에 관한 소설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잉고 슐체에게 통일은 그가 삶에 있어 커다란 사건이었고, 그것은 물방울 속에 투영된 우리가 사는 모습이었다.

새롭고 독특한 예술성 창조

잉고 슐체에게 2013 만해대상이 수여된 것은 정당한 것 같다. 그의 깊은 문학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33 행복한 순간들』, 에세이들, 『 오렌지와 천사 - 이탈리아 스케치』,『 아우구스토 재판관』, 아동물인『아우그스틴 씨』등이 서둘러 번역돼야 할 것 같다.

이번 만해대상 추천은‘독일문학 디알로그 학회(DeLiDi, http://delidi.de)’가 했고, 주한 독일 문화원에서는 안문영 충남대 교수의 사회로 토론회도 가졌고, 잉고 슐체의 만해대상 수상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자비로‘독일문학 디알로그 학회’공동 설립자인 자비네 오버마이어 구텐베르크-마인츠대 교수 부부가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의 몫은—독일 문학읽기가 항상 그러하듯이—잉고 슐체의 작품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을 차례다. 그러면 우리에게 잉고 슐체 문학만의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감히 예감해 보고 싶다.


서장원 고려대·독일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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