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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재난과 도덕성
[대학정론] 재난과 도덕성
  • 논설위원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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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9 14:40:31
재난의 연속이다. 태풍 ‘루사’가 지나간 곳은 폐허더미로 변했다. 강원, 경북의 무수한 마을과 시내가 침탈당했다. 대피령 경보가 내렸지만, 피해는 상상보다 훨씬 컸다. 신문과 방송에 난 것 이상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끊기고, 전기와 식수도 끊어졌다. 섬 아닌 섬에 갇힌 수재민들의 고난이 역력하다.

한동안 나라 안은 이른바 ‘주류’ 라고 자처하는 계층의 도덕성 문제로 시끄러웠다. 재산 증식과 병역 문제에서 유독 국민의 눈총을 샀던 이들의 부도덕성은 당사자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비극이 있다.

인사청문회 자리에 올라갔던 사람이나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던 ‘정치인’ 역시 도덕성 문제에서 깨끗하다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이 문제를 연일 신문지상에 올렸던 ‘무관의 제왕’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상층부 역시 누구를 탓할 만큼 그렇게 투명하지 않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부도덕성이 내면화되고, 이것이 구조화된 채로 한국근현대사는 빠른 속도로 전개됐다. ‘똥묻은 개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누가 누구를 탓하겠냐 하는 도저한 허무주의 혹은 책임 전가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고 있다. 이것이 정치 냉소주의에 닿고 있다는 사실은 경계해야 한다.

일상화된 부패의 재발견과 이것의 의미를 깊이 천착하기도 전에 재난이 덮쳤다.

재난은, 어느 시인의 깊은 성찰처럼, “한밤중에 마을을 덮치는”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언제나 마을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길가다가 도시가스가 터져서, 혹은 이른 아침 다리를 건너다가, 또는 지하철 공사장에서 그렇게 까닭모를 고통을 겪는다. 한밤중에 덮쳐 오는 산사태라니! 이들은 누구들처럼 그렇게 많은 재산을 증식하는 법도 모르며,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을 만큼 ‘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 사회는 스스로 주류입네 하는 계층에서 유독 富나 兵役과 관련된 ‘부패’가 많은 것일까. 한밤중에 닥친 급류에 모든 것을 앗긴 저 산간지방의 우리 이웃이나, 군대 갔다가 영문모를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온 아들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부모들은 또 누군가. 재난과 고통이 약자들에게만 찾아오는 끔찍한 비극이 아닐텐데 말이다.

지난 3일, 부패방지위원회가 부패척결을 위한 몇가지 안을 제시했다.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에 대해서도 인사청문회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권력의 요직 뿐만 아니라 점차 사회 곳곳에까지 투명한 검증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대학에서도 총장 인사청문회를 도입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도덕성은 힘과 지식으로 무장한 계층을 평가할 수 있는, 여전히 유효한 올바르고 합리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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