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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13.07.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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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가끔씩 우리로 하여금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생각에 골몰한 표정을 짓지 않더라도, 나는 쉽게 문제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 삶의 긴장감, 바로 그것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자.” 나는 가끔 이러한 모토를 세워 놓고, 당장엔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마음껏 여유와 게으름을 피운다.

그러나 여유로운 시간이란 쏘아 놓은 화살처럼 달아나 버리고, 더 이상 받아 놓은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는 때가 오고야 만다. 우리가 잘 아는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거나, 그것도 모자라 그 불에 발등이 타기까지 하는 순간이 마침내 찾아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 최후의 순간이 되면, 데드라인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신문기자처럼 당연히 좌우명이 바뀐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비로소 내게는 무장을 단단히 한 긴장감이 찾아든다. 그리하여 전혀 수습이 어려울 것처럼 느슨하게 풀려 있던 생각의 덩어리들도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바짝 긴장을 하게 되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혼란스러웠던 의식의 줄기도 좀처럼 다른 데 곁눈질할 겨를이 없게 된다. 그야말로 강 같은 의식의 평화 시대. 그러한 평화 속에서 잡힐 듯 말 듯 정체가 분명하지 못했던 대상이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 그 순간의 희열이란 너무나 감동적인 것이다. 때로는 밤을 꼬박 새워야 할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밤을 새워서라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무슨 일인가를 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우리를 살맛나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 초췌한 모습으로 혼자서 중얼중얼하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되는 것도 기실은, ‘드디어 그것이 찾아온 모양이군’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꾼은 꾼을 알아보는 법, 아마도 학생들은 신이 내리듯 찾아온 기막힌 긴장감으로 시험지를 빽빽하게 채워나갈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지난 후, 보통 때라면 분명 엄두도 못 낼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시험지에 쏟아 부었음을 깨닫는 순간 찾아올 벅찬 감동도 모두 그 기막힌 긴장이 아니었다면 맛보기 어려운 것이었으리라. 강태공들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고기가 찌를 덥석 무는 순간에 전해져 오는 팽팽한 긴장감이 없다면, 그 탄탄한 푸른빛의 등과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물고기에게서 느낄 수 있는 힘찬 생명감이 없다면, 낚싯줄을 던져 넣고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은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마음에 두기 시작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도 긴장은 우리를 놓치지 않는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그 새로운 긴장감이 수많은 게으름뱅이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을 즐기던 사람도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새벽같이 일어나 약속 장소로 달려갈 것이다. 씻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라도 애인과 만날 때면 날마다 목욕재계를 마다하지 않을 터이고, 후줄근하던 바지에도 모처럼 빳빳한 풀기가 서리게 될 것이다. 애인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되는 것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온 황홀한 긴장감 때문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집안에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운 삶의 긴장감을 가져다주는가. 보통 때 같으면 세수조차 하지 않은 부스스한 얼굴과 헐렁한 몸빼 차림을 주저하지 않던 주부라도 그날만큼은 곱게 단장을 하고 아침부터 집안을 꾸미느라 분주할 것이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싱크대며 세면대의 오래 묵은 때도 벗겨져 반짝이는 얼굴을 드러낼 것이고, 빠져나온 지 오래돼 사방에 흩어져 있던 물건들도 오랜만에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제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라면 주방에도 오랜만에 윤기가 돌게 된다. 물 좋은 생선에 칼집을 넣으며, 토닥토닥 도마에 고기를 다지며 안주인은 흥겨운 콧노래까지 부르게 될 것이다. 애지중지 아끼느라 잘 사용하지 않던 접시에 색색으로 고명을 얹어가며 음식을 차려낼 때의 신중함, 그것은 흡사 하나의 예술 작품을 완성시키려 할 때의 예술가의 마지막 손길과 똑같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비유는 아니리라.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버린 후에 남는 것이라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와 하루 동안의 긴장이 가져온 피로뿐이라고 불평을 해야 할 때도 더러는 있겠지만, 누군가를 귀한 손님으로 섬기는 일은 분명, 우리들 보통 사람을 보다 존엄한 존재로 올려놓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삶에 대한 긴장이 남아 있는 시간은 우리가 꿈을 꾸는 시간이다. 삶에 대한 꿈. 우리에게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에만, 그 긴장감은 살아서 숨을 쉰다. 인생이란 그저 그런 것,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를 것 없는 시간의 연속이라고 본다면 우리에게 창조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 삶의 긴장감은 우리를 찾아들지 않는다. 그러한 정서들이 경우에 따라 순전히 타자지향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삶의 팽팽한 긴장감이 얼마나 삶을 생기롭게 해 주는 것인가를 생각할 때, 그러한 긴장의 순간이 길면 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답은 당연히 ‘삶의 긴장’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 추천 릴레이 에세이 다음 필자는 ‘연호택 관동대 교수(영어교육과)’입니다.

 

강희숙 조선대·국어국문학과
필자는 2007년 계간 <문학나무>로 데뷔, 수필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전남 방언 담화 표지 고찰」 등의 논문과 『언어 변이와 변화』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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