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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국립대 수의대학 교수들은 왜 ‘기금’을 모았는가
[진단] 국립대 수의대학 교수들은 왜 ‘기금’을 모았는가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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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9 14:34:19
국립 수의대 문제는 일부 수의대 교수들이 학내갈등을 제기하면서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해당 교수들은 대학에서 ‘교육부 로비’를 위해 기금을 모았다고 증언했다. 대학별로 금액을 할당해서 기금을 모집했다는 사실이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는 아직까지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제기되는 의혹과 이에 대한 당사자들의 답변을 들었다.

돈을 어떻게 썼는가

국립 수의대에서 기금을 모은 것이 로비용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사자로 지목된 서울대 ‘L’교수는 “자발적으로 모은 것이며, (6년제 전환에 따른)커리큘럼 개발, 교수충원과 관련해서 정책연구를 수행하는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L’교수는 “학장협의회 회장을 맡을 당시까지 6개 대학이 냈으며 1천4백50만원을 사용하고 3백50만원을 남겼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돈의 사용처가 어디냐는 것이다.

‘L’교수는 2001년 6월에 대한수의학회와 서울대 수의대가 공동으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또 농수산부 과장급 직원들과 교육부 관계자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정한 돈을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제학술대회는 중국, 일본 등 동남아 7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대 삼성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됐으며, 한국과학기술재단, 학술진흥재단, 한국수의학교육협의회, 수의대학협의회에서 후원했다. 학술진흥재단은 당시 학술대회 추진비로 7백만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학술대회나 커리큘럼개발 등 공식적인 사업은 대학이나 관련단체 등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데 굳이 교수들이 특별기금을 거뒀다는 것은 학계의 관례로 볼 때 이례적이라는 점, 또 정책결정을 앞두고 관련부처 직원에게 식사를 ‘대접’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남는다.

교육부 직원의 말바꾸기

한편,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자 교육인적자원부는 자체조사를 통해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이 명확치 않다.

‘시민의 소리’는 ‘자금’운용과 관련해서 교수증원 배정을 담당하는 교육부 직원과 ‘L’교수가 만난적이 있다고 교육부 직원을 통해 확인했다. 그러나 각종 정책과 관련해서 교수나 보직자들이 교육인적자원부를 찾는 것은 예삿일이다. 식사를 대접하는 경우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수신문이 교육인적자원부에 이러한 확인을 요청하자 자체조사결과 “실무자 차원에서 식사를 하자는 제안이 와서 거절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담당 직원이 ‘L’교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번복한 것이다. 또 당시 관련업무를 총괄했던 ‘J’과장은 전화통화에서 “L’교수를 본적도 없다”고 했다가 “‘L’교수가 저녁을 샀다고 확인하자 “기억이 잘 안난다”고 한발 물러섰다. 교육부는 자세한 진상조사보다는 내사람 감싸기 식으로, 담당직원은 일단 부인하는 식으로 대처한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해마다 각 대학들은 교육부에 교수증원 신청을 한다. 교육부가 이를 취합,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와 협의를 하고 확정된 정원으로 법령을 개정하면 이를 각 대학에 다시 배정한다. 여기서 어느 대학에 몇 명을 배정하느냐는 전적으로 교육부의 권한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 2002년 교수증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당시 교육여건 개선, 박사 처우개선 차원에서 1천명이 우선 확보됐고, 이를 교육부가 각 대학에 배정한 것이다. ‘시민의 소리’는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수의대에 인원을 지정해서 나눠준 것이 로비의 결과가 아니겠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 국립대 수의학과 문제의 경우 대학설립이나 학과 신설, 학생 증원 등의 문제에 비해 교수증원은 적극적으로 로비할 항목이 아니라는 점에서 억울한 의혹을 사고 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학생을 증원할 경우 등록금 수입으로 이어지지만 교수증원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대학으로서는 ‘돈써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문제는 교육부에 대한 대학사회의 불신이 크다는 점이다. 지원보다는 통제를, 대학 자율을 허용하기보다는, ‘권한’을 움켜쥐고 있어서 이러한 문제가 야기된다는 지적이다. 특수대학원 설립을 추진했던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 설립, 학과 신설, 특수대학원 설립에도 항상 로비가 이뤄지며, 술대접은 예사다”라고 말했다. 또 ‘돈’봉투 의혹도 강하게 제기했다.

교육부가 각종 지원, 행정처리과정에서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대학현장에서는 로비창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1천명의 교수배정 기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길 꺼려하고 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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