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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피고 지고
능소화 피고 지고
  • 정진농 부산대 명예교수· 수필가
  • 승인 2013.07.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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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능소화가 피는 걸 보니 여름이 왔음을 알겠다. 우리들 감성의 창이 흐려져서 계절의 변화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친 매화가 봄을 일깨우고,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리듯이, 능소화는 여름을 알려준다. 여름에 피는 꽃이 어디 능소화 뿐이랴 만 능소화만큼 우리의 시선을 살갑게 사로잡는 여름 꽃을 찾기도 쉽지 않다. 능소화는 보통 7~8월에 꽃이 핀다지만, 내가 사는 우리 국토의 이 동남단에서는 6월 하순이면 벌써 꽃을 피운다. 이미 여러 해 전 어느 이른 봄날 우연히 친구 집에 들렀다가 그 집 뜰에 심어져 있던 능소화 줄기에서 잔뿌리를 하나 떼어다가 우리 집 뜰에 옮겨 심었다. 그도 나도 아직 아파트나 빌라 같은 편리한 현대식 공동주택이 아닌 재래식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기에 주택에 딸린 작은 뜰이 있었다.

 

그 능소화 뿌리는 그 집 뜰에서 우리 집 뜰로 시집을 온 셈이다. 능소화 뿌리를 심은 옆에다 커다란 마른 나무 둥치를 하나 박아 두었다. 어느 시인이 능소화를 두고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 등을 내거는 꽃”이라고 했던가. 능소화는 덩굴식물이라 담벼락이나 또는 다른 나무를 타고 기어올라 가지 끝에 등을 내걸듯 꽃을 피운다. 몇 년이 지나자 뿌리에서 나온 줄기가 그 나무 둥치를 타고 올라 무성한 가지와 잎을 펼쳤다. 그리고 여름이 되자 주황색 소담한 꽃을 피웠다. 그러기를 벌써 여러 해, 금년에는 더욱 풍성하게 꽃등을 내걸었다. 꽃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꽃말이란 게 있다.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 백합은 ‘순결’, 아네모네는 ‘사라져가는 희망’, 라일락은 ‘젊은 날의 추억’, 네잎 클로버는 ‘행운’이란다. 그럼 능소화의 꽃말은 무엇일까. 명예롭게도 ‘명예’와 ‘영광’이란다. 그래서일까. 그 꽃말에 어울리게도 조선시대에는 이를 ‘어사화’라 하여, 과거에 장원급제를 한 사람의 화관에 꽂아주었다고 한다. 또한 이 꽃을 ‘양반꽃’이라 해서 상민들이 집안에다 심으면 양반을 모욕했다는 죄로 관가에 붙잡혀 가서 곤장을 맡기도 했단다. 사실 이 꽃은 그 색상이 밝은 주황색으로서 유난히 시선을 끌면서도 그 모양새가 야단스럽지 않고 단아해 기품을 머금고 있다. 꽃잎 끄트머리가 다섯 개로 갈라져 있으나 한 개의 통꽃 구조를 하고 있어 질 때도 다른 꽃들처럼 추한 모습으로 시들거나, 꽃잎이 흩어지지 않고 본래의 생생한 모습 그대로 통째로 뚝 떨어진다. 이러한 낙화의 특성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결코 지조와 기품을 잃지 않았던 올곧은 양반가 선비의 기개를 닮은 것 같다.

또한 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고도 한다는데, 이와 관련되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즉 옛날 왕조시대 어느 궁궐에 잘 익은 복숭앗빛 뺨에 아름다운 자태와 착한 마음씨를 지닌 한 궁녀가 있었다. 그녀의 고운 자태가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임금님과 정분을 맺고 빈의 칭호까지 받게 됐다. 그러나 그 후로는 어찌된 영문인지 다시는 임금님이 그녀의 처소를 찾지 않았다. 하기야 그 시대 임금이 하룻밤을 같이하고 찾지 않은 궁녀가 어디 그녀뿐이었겠는가.

하지만 너무나 착하고 곡진한 성품의 이 여인은 언젠가 임금께서 다시 자기 처소를 찾아줄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었다. 그러다 어느 해 여름 기다림에 지친 이 여인은 상사병으로 탈진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는 평소 자기가 임금님을 기다리던 궁궐 담장 밑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대로 묻히게 됐다. 다음 해 그녀가 묻힌 그 구중궁궐 담장 밑에서 한 그루 나무줄기가 솟아올라 담장을 타고 오르더니, 여름이 되자 담장 밖으로 가지를 뻗고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 후 세월이 흐를수록 담장을 타고 오른 줄기가 더 많은 가지와 잎을 담장 밖으로 드리운 채 여름이 되면 꽃을 피웠다. 꽃의 색깔은 그 여인의 복숭앗빛 얼굴을 닮았고, 꽃 모양은 마치 사랑하는 임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는 듯 담장 밖으로 나팔처럼 활짝 귀를 펼친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과거의 양반문화, 선비문화, 그리고 궁중의 귀족문화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다.

그와 함께 그러한 문화의 속성이랄 수 있는 기품과 지조, 고매함과 단아함, 곡진함과 진중함 같은 성품도 사라져버렸다. 그러한 고급문화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난무하는 것은 대중문화의 저속하고 경박한 태도와 물질적이고 상업적인 속성과 빠르고 편리한 기술문명의 홍수다. 현란한 액정화면 속 영상물이나 역사테마파크에 등장하는 옛 시대 풍속이나 인물의 시뮬라크르 역시 외형만의 흉내에 불과할 뿐 내면적 품격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능소화 역시 전 시대의 꽃인가 보다.

사실 과거에 도시에서도 올망졸망한 단독주택들과 골목길이 밀집해 있던 지역들이 현대화와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급속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름이면 흔히 골목길 담벼락 너머로 환하게 소담스런 꽃송이를 드리우고 있던 능소화도 요즘은 좀처럼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나도 우리 집 뜰의 능소화와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멀지않은 것 같다.

이제 다 자라 성인이 된 자식들이 각자 제갈 길로 떠나가고 난 이 노후한 집에서 노부부만이 살다보니, 집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 더구나 복층구조라서 평소 몸이 불편한 아내가 계단에서 자주 넘어져 사고를 일으킨다. 그러다 보니 불편한 이 집을 팔고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라고 하는 자식들의 성화와 압력을 나 혼자서 마냥 버텨내기도 어렵다. 그래 어쩌면 우리 집 뜰의 이 능소화를 보는 것도 올 여름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하는 예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피었다 지고 있는 능소화의 모습이 더 한층 애처롭다.

□ 추천 릴레이 에세이의 다음 필자는 정정호 중앙대 교수(영문학)입니다.

 


정진농 부산대 명예교수· 수필가
필자는 부산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며, 계간 <수필춘추>로 데뷔했다. 필명은 정약수다. 현 수필부산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부산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아카데미 주임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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