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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던 발바닥만큼 內面에서도 성장통 겪었죠”
“아팠던 발바닥만큼 內面에서도 성장통 겪었죠”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3.07.08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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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 연재를 마치며

지난 2011년 8월29일부터 격주로 연재를 시작한 ‘최재목의 유랑ㆍ상상ㆍ인문학’. 지난 7월1일자로 총 40회 연재를 마쳤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52세, 철학과ㆍ사진)는 지난 2011년 연구년을 맞아 네덜란드 라이덴대로 떠났다. 최 교수는 유럽 등지를 유랑하며 시인이자, 철학자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그곳의 지리와 문화, 예술을 접하며 느낀 생각과 발상, 구상을 자유롭게 펼쳐내는 인문 에세이를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는 동안 집필을 시작했다. 1년의 연구년, 그리고 2년여에 걸쳐 ‘유랑’의 흔적을 풀어냈다. 이제 3년여의 유랑에 마침표를 찍는다. ‘유랑을 마치며’ 그의 소감을 들었다. 연재 글은 이르면 오는 가을에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2011년 3월, 스피노자 동상 앞에선 최재목 영남대 교수. 최 교수는 "유럽을 유랑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친절하며 생생한, 자극적이고 창의적인 지식과 정보였다"라고 말했다.
△ 2년에 걸쳐 40회 연재를 끝냈습니다.

“ 세월이 참 빠르군요. 벌써 2년이 지나가 버렸다니.(웃음) 글쎄요, 솔직히 기쁨 반 섭섭함 반입니다. 그러니까 1년여의 유랑 그리고 유랑의 흔적을 2년에 걸쳐 풀어냈으니, 모두 3년을 계속 떠돈 셈이지요.(웃음)
더군다나 제가 우리 대학의 독도연구소장과 도서관장이라는 보직을 맡고, 또 한국양명학회장 일까지 수행하느라 바쁜 시간 틈틈 원고를 쓰다 보니 솔직히 무언가를 계속적으로 쓴다는 부담과 생각과 글쓰기의 단절이 생겨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수첩에 적힌 일기 형식의 메모와 사진, 그리고 기억과 읽었던 책 갈피갈피에 적힌 낙서에 의존하면서 그 당시의 생각과 느낌의 파편들을 일관되게 꿰어 복원해낸다는 일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쉬운 게 아니었어요. 여하튼 시원섭섭합니다.”

△ 유럽 여러 곳을 다니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유럽에 머물면서 연구하는 틈틈이 16개국을 둘러보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지역들을, 지면의 제약 때문에, 연재 속에서는 아쉽게도 다 펼쳐내지 못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 대부분 기억에 남지만요, 스위스의 알프스 산록,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체코의 프라하, 벨기에의 브뤼헤, 오스트리아의 빈이랄까. 이 중에서도 영감을 많이 얻은 곳은 역시 스위스 알프스의 전원풍경,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흔들리는 물결, 꽃피는 봄날의 체코 프라하, 풍차와 초원이 있는 네덜란드의 풍경이었답니다. 모두 내 유년의 꿈이 살아나는 곳이었어요. 인문적 상상력, 시적인 구상들 말입니다. 이곳들을 모두 추천하고 싶어요. 특히 상상력이 고갈된 분들에게”

△ 2011년, 11년 만에 네덜란드로 연구년을 떠나셨지요. 유럽 곳곳을 다니셨는데, 이 경험은 지금 선생님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군요.
“예, 미국을 다녀온 뒤로는 계속 타이밍을 놓쳤고, 11년이 지나서야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네덜란드 라이덴으로 가게 됐지요. 참 잘한 일이라 자부합니다. 유럽을 유랑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제가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읽었던 모든 책들보다 훨씬 풍요롭고 친절하며 생생한, 자극적이고 창의적인 지식과 정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럽이 꼭 좋아서 라기 보다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동양학’, ‘한국학’의 권태감, 우울증을 달래주고, 타성에 젖은 제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을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을 유럽에서 찾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유랑과 상상이 결합하면서 저를 많이 성장시켜주었죠. 아팠던 발바닥이 바로 내 내면의 성장통이였던 셈이죠.(웃음)”

△ ‘잘 노는 게 공부’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것, 여행은 어떻게 공부와 이어질까요.
“어떻게 노는가, 그게 중요하죠. 삶은 노는 것이어야 하고, 또 노는 것은 바로 공부이어야 합니다. 노는 방법 중에 여행만큼 좋은 놀이가 없죠. 걷기는 사고의 근육을 키워주고, 영혼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 같아요. 지쳐 있는, 때론 무기력한 우리네 지식 노동자들에게, 걷기는 바깥의 수많은 사람과 물건과 풍경을 만나게 하면서 왜 내가 현재의 온갖 흔들림, 비틀거림을 넘고 넘어 당당하게 살아가야하는가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죠. 이렇게 삶의 의미와 전망을 열어주는 것으로는 여행만한 것이 없지요. 여행하는 동안 조금만 부지런히 하면, 생각한 것을 쓰고 그리고, 또 읽고 싶은 것을 느긋하게 마음대로 읽을 수 있죠. 여행이 재미있으려면 자기가 갈 곳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바지런히 찾아내고, 자신의 이야기로 연결해가는 노력도 필요하죠. 세상에 공짜가 없죠.”

△ 양명학을 전공한 동양철학자이지만, 동양은 동양에만 있을 수 없다고 했고, 유럽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겠다고 하셨어요. 서양에서 발견한 동양, 혹은 동양학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글쎄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이겠죠. 시간과 공간, 더구나 사람이 다르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관심’과 ‘방법’이 달라지죠. 그러면 같은 내용도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손바닥이지만 그것을 본다고 내 얼굴에 바짝 들이대면 내 것이면서도 그게 무언지 잘 알 수 없잖아요. 동양-한국이란 것도 내게 너무 딱 붙어있으면, 객관화되지 않아 그게 뭔지 잘 모를 수밖에 없지요. 그처럼 유럽인들이 그들 방식대로 말하고, 보고, 듣고, 먹고, 입고, 걷고,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을 눈여겨보면,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른 것은 나한테 있으면서도 내 눈에는 잘 안 보이는, 그래서 남의 눈으로 봐야 잘 보이는 것이지요. 서양의 동양학이란 것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바라보고 그려낸 그들 자신의 이야기이고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점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를 이해해가는 방식으로 자신 있게 서양을 연구하게 되면 종전과 다른 색다른 서양학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 이번 유랑을 통해 얻은 인문적 아이디어와 상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유랑-여행-대화를 통해 발견된, 나 자신 속에 묻힌, ‘걷기’가 갖는 인문학적 철학적 의의와 가치를 재음미하고 있는 중입니다. 걷기는 평소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것은 시적이면서도 산문적이고, 느리면서도 빠른 지성입니다. 걸음에 의해, 생각에 속도가 붙고, 꽁꽁 숨은 생각이 튀게 되고, 다채롭게 만개합니다. 인문학도 철학도 걸음 속에서 길 위에서 풍경 속에서 만물과 호흡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음미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창한 것도 아니고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탐구랄까요.”

△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 지금 전 세계가 실업대란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데요. 유럽 여행을 통해 발견한 '유럽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한국사회가 참고할만한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아, 답하기 좀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솔직히 말씀 드리면, 유럽은 이미 한물 간 부분도 있고, 아직 빛을 내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유럽의 현실적 어려움이 아니라 그들의 오랜 역사에서 만들어낸 튼튼한 지성과 문화입니다. 에라스무스가 얘기하는 “나의 조국은 세계다”라는 EU 통합의 철학적 비전은 아시아에서도 본받아야 할 점이지요. 먹고 사는 어려움, 고난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있는 법이니,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고 극복하는 ‘정신’과 ‘눈(관점)’입니다.

유럽 사회는 자유로운 개인이 그 어떤 것보다 주요한 가치입니다만 우리 사회는 사람 사이에서 함께 사는 인륜 공동체를 지향해왔지요. 물론 개인과 자유를 외쳐온 유럽사회에서도 과거에 인간을 찾고 덕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었지만요. 어쨌든 누구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그 철저한 유럽적 정신은 여전히 우리가 음미할 가치가 있습니다.”

△ 선생님은 줄곧 지성에 대한 성찰을 해오셨더군요. 지성의 의미, 지성의 자리가 궁금합니다.
“현재 대학의 교수들은, 지성인에서 전문가로, 지식인에서 기능인으로, 전망보다는 사회구조적 닦달에 총동원되어 응전에 급급한 땜빵식 기술자로 전락해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전망을 가진 훌륭한 지성인-지식인을 많이 갖는다는 것은 개인의 축복 이전에 사회와 국가의 축복이지요.”   

△ ‘잘 노는 게 공부’라고 하셨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놀 계획인지도 궁금한데요.

“현재 참 많이 바쁩니다. 유랑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 그래서 추억이 된 시절들을 돌이켜보며 회상도 하곤 합니다만, 가능하다면 조만간 북유럽, 지중해 등으로 주제를 정해서 떠돌 계획입니다. 약칭 ‘유랑인문학’을 계속 만들어가야죠. 이게 제가 노는 방식입니다.(웃음) 또 하나, 내 유년을 회상하는 자전적 소설을 준비 중입니다.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나 할까요.”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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