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9:45 (금)
생물학자가 IT를 만났을 때
생물학자가 IT를 만났을 때
  • 이성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 승인 2013.07.08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이성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장님과 앉은뱅이는 협동의 시너지즘을 강조하는 일화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 일화를 접했다면 달리 보였을지도 모른다. 장님은 바로 필자와 같았고, 앉은뱅이는 최근 필자를 도와주고 있는 조력자와 같았다. 필자는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으나 최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데이터 분석을 하게 되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컴퓨터를 전공하는 조력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통한 데이터의 결과는 매우 만족하고 있지만, 사실 일화 속의 장님과 같은 나는 어떠한 알고리즘을 통해 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앉은뱅이와 같이 컴퓨터 전공의 조력자는 내가 도출한 데이터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문인지 생물정보학을 대하는 BT와 IT의 만남에 있어서 어떠한 조화가 가장 효율적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됐다. 서로의 눈과 다리가 돼 주는 일화처럼 장점을 돋보일 수 있는 협력 관계로 가야 할까, 아니면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것과 같이 비록 힘들고 시간이 더디더라도 홀로 두 가지 이상의 분야를 다룰 수 있는 연구를 하는 방향이 더 큰 성과를 얻게 될까.

생물정보학은 컴퓨터를 이용해 오믹스(omics) 시대의 방대한 양의 생체 정보를 전산, 통계 처리하고 생체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지금까지 생물학자에게 생물학은 현상에 대한 규칙성 이외에도 예외성이 존재해 다소 유연한 학문으로 인식됐던 반면 컴퓨터, 전산학 및 수학은 답이 떨어지는 학문으로 이질적인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때문에 생물정보학이라는 학문을 정식으로 교육 받지 못한 대다수의 생물학자는 그들이 만들어 낸 대용량 데이터를 IT 전공자처럼 능숙하게 다루기가 어렵다.

필자 또한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쫓아다니고 일 년에 한 두 번씩 열리는 워크숍에도 문을 두드리며 독학의 길을 걸어 봤지만 연구의 속도가 더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은 필자가 생물학 전공자가 맞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될 때도 있을 정도로 적지 않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야 할 때가 많았다.

과연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해 가면서까지 생물학자들이 어려운 수식의 알고리즘과 컴퓨터 언어를 배우는 것이 연구의 효율성 측면에서 효과적일까.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이다.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최근에 생물정보학 분야의 인지도와 중요성이 수직상승 하면서 신진 생물정보학자들이 매년 배출되고는 있지만 넘쳐나는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할 전문 기술을 가진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부족한 IT인력을 생물학자가 직접 메워야만 한다.

둘째, 데이터의 본질을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는 생물학 기반의 연구자가 직접 대용량 데이터를 통제할 전문 기술을 갖는 것은 데이터의 결과가 왜곡되지 않고 정확한 생물학적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자가 기본적인 IT 지식을 갖는 것은 전통적인 IT 개발자들이 더 나은 프로그램 혹은 대용량 데이터 분석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를 제공한다. 이만큼 정통 생물학자에게 IT를 접목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필자가 2저자로 참여한 이번 ‘인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 HPV) 감염과 박테리아의 연관성’에 관한 논문도 전형적인 BT와 IT의 융합 산물이었다. 이 논문에 기여하면서 새삼 미생물 군집 다양성 연구가 이제 더 이상 방대하고 제한적인 연구가 아니라 IT분야와의 결합을 통해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적이고 구체화된 연구가 가능해진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생물정보학과, 시스템생물학과 등의 신설로 BT와 IT 모두에 능한 생물정보학자가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물정보학을 필요로 하는 정통 생물학자들이 대용량 데이터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생물학자들이 컴퓨터를 배우기 위한 좀 더 쉽고 다양한 콘텐츠 및 프로그램에 노출된다면 그들의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필자는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